능소화, 목백일홍을 보며

누구나 불꽃이다.

by 김규성

여름꽃을 보자 하면 난 누가 뭐래도 능소화와 목백일홍 보기가 제일 즐겁다.

미운 꽃이 있으랴만 이 꽃들은 한여름 뙤약볕 아래 오래도록 피고 지며 한 여름 내내 한 꽃이 피어 있는가 싶을 정도로 살이가 길다. 이 꽃들의 아름다움은 강한 생명력에 있다.


지글거리는 태양! 한여름이라면 누구나 거부하는 열기를 꽃은 이를 기꺼이 맞이하고 품어 대지의 정수를 뽑아 하늘땅 사이에 호루라기 같은 긴장을 던져준다. 이 매력 덩어리가 '불꽃'이라서 좋다. 담장 넘어 골목을 바라보는 이 꽃들 손에는 지나는 이웃에게 건네줄 상추나 애호박이 들려 있을 법한 상상은 덤이다.


어제는 영업일 기준으로 7월 말일이라 한 달간의 사업 실적을 뽑아보니 소포가 상반기 평균보다 20% 정도 늘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호칭에 실례될 줄 모르지만 < 베트남 새댁>들 덕택이다. 이들은 적은 수량이나마 그간 꾸준하게 인터넷 상거래 물품을 부쳐 왔다. 사업이 본 궤도에 들어섰는지 7월 물량이 전보다 훨씬 많아져 통계로 읽게 된 것이다. 인터넷 상거래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이다. 대부분 사업 초기에는 우체국을 자주 이용하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못하는 편이다. 이들은 반대로 어쩌다 한번 방문하는 정도로 시작하였으나 그 기간은 꽤 길어 마침내 한 여름 발화(發花)한 꽃이 되었다.


베트남 새댁들은 유모차에 돌이 지나지 않은 어린아이를 태우고 이제 말문이 트이기 시작하는 서너 살 정도의 아이를 걸려 오는데 둘 다 비슷한 또래에 한국에 온지도 오륙 년 정도 된다. 한참 좋을 시기이기도 하고 때에 따라선 삶이 약간 버겁다고 느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어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으나 낯선 땅에 와서 살아가기가 쉽지 않을 듯한데 이들의 의지와 성장이 특별하게 대단하고 대견스럽다. 마치 능소화나 목백일홍을 닮은 듯하다.


뒷감당은 누가 할래?

인상 깊게 읽은 소설이 두 개 있다. 박정요의 장편소설 <어른도 길을 잃는다>와 모파상의 소설 <쓸모없는 아름다움>이다. 박정요의 소설은 갑오 동학에서부터 6.25 전쟁, 질곡 같은 우리의 6, 70년대 아버지 어머니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등장인물 중 소설 속 주인공의 할머니가 나오는데 시대의 소용돌이가 일으킨 가족의 '삼재 팔난'을 할머니가 온전하게 뒷감당으로 받아냄을 묘사한다. 모파상의 소설은 미모의 젊은 백작 부인이 '힘센 주인' 남자에 속하여 애만 낳는 존재를 부정하며, 남성 중심 사회에 맞서 여성으로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싶어 하는 갈등으로 읽었다. 결혼생활 11년 만에 아이가 일곱인 여인이 말한다. "당신 아이들 중에 하나는 당신의 아이가 아니에요" 남자에게 이처럼 아프게 꽂히는 비수가 있을까.

때 아닌 '페미'논쟁이 뜨겁다. 우리나라에서의 페미니즘은 여성보다 남성 우위에서 남녀를 구분하는 의미로 쓰이는 감이 없지 않다. 자연 상태에서와 같이 여성과 남성의 존재에 차이를 두지 말자라고 이해한다. 인류 역사라는 게 실생활이었고 원시 수렵 문명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녀는 항상 같이 존재하며 공동의 생활을 이어왔다. 전쟁 같은 힘이 앞선 시기는 순간이었고, 위기 다음의 생활을 여성의 몫으로 인류의 생존을 이어왔다 여긴다. 보전 보호가 실제 생활이었으니 여기서 여성의 역할은 남성보다는 훨씬 우위에 있다. 베트남 새댁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보듯 환경이 달라졌다고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지지 않았고 어느 시대의 여성과 다름없이 가족을 위하여 자신을 아끼지 않는다.


소설은 주제가 확연히 달라 비교에 생뚱맞은 감이 들기도 하겠다. 여성이기에 못할 것 없고 남성이기에 안 해되도 되는 일이 없다. 살아간다 함에 남성에게 쉬운 일이고 여성이기에 어려운 일이 아니라 말 그대로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짊어진 삶의 무게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와 같이 그 무게에 누구 것이 무겁고 가벼우냐 따져야 소용없다. 부딪혀 유리 천장을 깨는 일은 공동의 목표이자 목적이다. 뭘 어째 할지 난감한 뒷감당하는 사람도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

날이 뜨거워도 능소화는 볼 빨간 말로 좋은 시절임을 알려주고 백일홍은 희고 붉은 숭어리로 우리를 응원한다. 진정한 페미니즘은 세작들이 말하는 여성은 여자다워야하고 남성은 남자다워야 하는 구분이 아닐 것이다.

남녀는 자연 속의 만물과 같이 그중의 한 종이 아니겠는가? 누구나 불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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