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진실로 사랑한다

내게로 온 뜻밖의 사랑, 난(蘭)에게 받치는 헌사

by 김규성

고운 목도리 두르고

때깔 좋게 축가 부르러 왔다가

하늘로 오르는 옷을 잃어버렸다


어울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운 적 없다


한 날 한 시라도 자리 비운적 없으나

아는 이 또한 없다


극약 같은

한 때의 칭찬 한 때의 사랑


쉬운 일 좋은 일 보다

이렇게 살아야 하냐고 되묻는 날이 많은

바랜 팔 들어 외칠 때

하늘은 벼락 장마

사람의 때는 끈적하다


호명하는 이 없이

경계를 삶에

은근히 꽃대 올리고 향기를 냈다


언제부터 그랬는지 정확히 때를 알지 못해

또 미련이다


우체국 업을 맡아한지 꼭 1년이 된다. 허둥대고 마음 졸인 시간이기도 하다. 더워야 여름이고 추워야 겨울이라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더욱 추워졌다고 느낀다. 실제 기후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연일 걱정하는 시대다. 작년 여름 장마는 짧았지만 비가 내리는 기간은 유독 길었다. 7월 13일은 우편업무 위탁사업을 개시하는 개업날이었다. 주위 분들의 축하와 함께 여러 종류의 화분을 받았고 그중 중국 난 하나를 선물 받았다. 살아 있는 것에 대해 기울여야 하는 의무가 부담스러워 1주일 정도의 전시기간을 두고 선물 받은 화분 대부분을 아는 꽃가게에 정리했다. 향기 좋고 잎이 무성한 난 분은 유일한 꽃이 있었기에 딱딱하고 삭막함을 가릴 겸 해서 소포 포장대에 두었다. 그러나 꽃이 지고 꽃대가 말라가자 난은 이내 정물이 되고 말았다.


식물계의 삶을 살았을 난이 인간세에 내려와 그럭저럭 살아가는 필부를 만나 지난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곳에서의 살림이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고 즐거움과 슬픔은 반반이고 기억과 망각은 빈번하며, 관심과 무신경은 누구에게 무엇 이거나 아무것도 아님의 가치를 가진다. 질서인가 하면 천방지축이고 밤샌 의지는 아침 햇살부터 바래 무뎌지며, 분간하기 어려운 수풀에 헤매다 보면 길이 되기도 한다. 정해 진다함은 변화를 약속하는 변곡점이라 다만 조심하고 정성을 다해야 하는 살이다.


새삼스러워 1년의 공간을 훑어보고 어제 어지럽혀진 작업대를 청소하다가 내게로 온 난을 보았다.


아, 꽃이여 향기여!


그는 세 개의 꽃망울을 이미 출산하고 꼼지락꼼지락 또다시 출산의 고통을 감내 중이었다.


물은 충분히 줬었나? 진작 햇살에 내놨어야 했나? 더위는 그렇다 치고 추위엔 집으로 들여야 했었나?

온통 후회뿐이다.


그에 대해 아는 게 하나 없고 제대로 보탬이 되는 행동 한번 해 주질 않았다. 봄 되면 꽃을 보고자 하는 도둑놈 같은 욕심만 있었다. 하루에 백수십여 명이 우체국을 다녀가도 난에 대하여 아는 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해가 드는 쪽으로나 냉기가 덜 한 곳으로 자리를 바꿔준 적 없어 그가 사람이라면 지독한 고독이나 안겨줬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이 숨 막히는 생활을 청산하려 했는지 아니면 제 본분이 그러한지 모르나 누렇게 잎을 띄워 생활을 표시한 적이 있었다. 보는 이에 따라 궁핍이었거나 지병 아니면 절제된 의지로 읽혔겠다. 나는 보기 싫어 그 바랜 팔을 가위로 잘랐다. 인정도 없고 사정은 무시한 경우가 많았다.


철저히 남남으로 함께한 시간이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살림이 그러하리라.

그의 사랑은 부지부식 간에 내게 문득 찾아왔다.

제 할 일 다 하는 그에게 향기가 있고 속속들이 퍼져 무심했던 이들이 오늘에야 '이게 뭔 향기야'라고 묻는다.

그는 진정 사랑할 줄 안다.


내게로 와 줘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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