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시인 김우식>>을 읽고
일상에서 무수한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기는 쉬워도 어느 한 사람을 진정으로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한 길 깊이의 사람 가슴에 담긴 감정과 관계는 무척이나 많은 의미와 일들이 얽히고설켜 술자리 몇 번으로는 알 수 없고 오랜 시간을 같이 겪어 본 후에야 그나마 사람을 조금 알 수가 있다. 그러나 한 권의 시집을 통해서 저자 시인과의 만남은 서사적 감동과 속 깊은 떨림, 감정의 교감이 있어 경계를 허물어 한층 더 가까이 다가서 깊은 만남을 갖게 하는 기쁨이 있다. 내 눈에 <걷는 시인 김우식>>의 저자 김우식 시인은 자연인으로서 매우 잘 생겼다. 큰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며 균형 잡히고 다부진 체격으로 의류 모델을 하였어도 잘 어울릴 법하다. 그런 그가 시를 쓴다. 시인의 깊은 마음을 살펴보았고 동료로서 경계심 없는 동등한 교감을 나눌 수 있었다.
얼마를 더 걸어야 강물의
가슴 저 밑바닥에 닿을 수 있을 끼
강물의 푸른 심장에 샛별 하나 밝혀 놓고
청정하게 빛나는 당신의 별을 향해 걷는다
서두르지 않고 멈추지 않으며
죽은 듯 살아 있는
저 강물의 강력
침묵하는 갑천
긴 어둠 속에서 성숙한 저 강물을 따라
스미고 번져간다
- 시 '갑천 연가'의 일부 -
시집을 펼쳐 읽고 몇 개의 단어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걷는다' '스미다' '싶다' '얼마' '~에서'와 같은 시어였다. 여기저기 흩어 놓은 시인의 고민은 ‘얼마‘라는 시어를 써서 삶을 탐구하였고 ’~에서‘라는 장소에서 ’걷고 스미다‘라는 형태로 사유하여 ’싶다‘라는 시어로 자신을 투영시키고 동화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걷는 시인 김우식』은 시인의 성품을 그대로 담아냈다. 단순하고 명쾌한 시인의 말이다. 시편마다 시인의 마음에 내 마음을 얹을 수 있고 장소적 분위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인간사를 어지간하게 살아온 만큼 웬만큼 때도 묻고 능글거림이 있을 법한데 비틀림의 시어를 갖고 있지 않았다. "얼마"라는 양(量)이나 가치가 원만하게 강물에 잘 갈린 샛별 같다.
생활은 고통이라는 말이 있다. 고통의 표현이 보통은 욕이거나 한숨이고 이는 누구나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시인들은 욕이나 한숨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언어로 표현하여 읽는 이에게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사람들이라 여긴다. 평등함은 곧 '너도 그렇고 나 또한 그렇다'라는 동류의식을 갖게 한다.
얼마를 더 벗겨내야
내 모습이 보일 까만
얼마를 더 퍼내야 가슴속 슬픔의
깊이를 알 가마는 얼마를 더 기다려야
당신의 모습이 보일 까만
~ 중략 ~
어라
오죽이네
- 어라, 오죽이네- 일부
내 눈에 잘생긴 자연인 김우식은 스스로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라 자각하고 있다. 그 부족하고 못난 시인이 생각하는 '얼마'란 잘나기 위한 자기 절제이자 제모습 찾기였다. 잘나기 위한 방법은 시인도 잘 알고 있어서 자신의 껍질을 벗겨내고 퍼내는 것이나 이를 실천하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시인은 동명항, 강진, 유성장터, 함평만, ~에서 바람 속을 걷고 물가를 걸었으며, 스미며 젖는 방식의 탐구에서 알 것 같은 세상 '얼마'를 연초록의 대순(竹筍)이 아닌 "어라, 오죽이네"라고 겸손한 말을 빚어냈다. ’ 무수한 것 중의 하나‘라는 말이 생각난다. 우주과학자가 한 말인데, 하나의 의미는 특별함과 동시에 겸손이라는 중요한 뜻이 있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문장이 아니다. 어렵게 유추하고 흩어진 조각을 맞추어야 볼 수 있는 그림이 아니라 겸손을 아는 시인의 고운 목소리여서 눈은 밝아지고 가슴은 시원해진다. 대부분 사람들의 생각이 그렇듯 그도 못생기고 어줍은 범부이고 생활인이라는 말로 나와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낯선 고장의 한 조각을 만나는 일
바다가 햇볕을 사랑하는 고결한 방식
가만가만 빛나는 빛의 결정
낯선 곳에서 밀물처럼 흘러들어와
새벽녁 하얀 미소를 지으며
아린 가슴으로 소금꽃을 피운
티끌 없이 순한 사람들
느리게 느리게
소금꽃이 피어난다
태양을 벗 삼은 인내의 시간을
담아내는 결정체
코끝으로 찰~싹
푸른 파도가 친다
- 소금꽃 - 전문
시인은 들을 건 듣고, 볼 것은 보고 말할 것은 말하는 사람이다. 모든 게 차고 넘쳐서 가벼운 세상이 되어가지만 생명이 그 자리에 있음은 자연과 있게 된 연관을 가진다고 한다. 누구나 할 수 있으되 관심이 없으면 듣지도 보지도 말하지 못하는 자연이다. 김우식 시인은 새들의 노랫소리와 / 무심하게 지나는 바람/ 침묵으로 젖어드는 봄밤을 가질 수 있고 이로 일어나는 감흥을 소중하게 여기며 이를 사랑이라 이름하여 이걸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이유와 도구로서 ’ 충분하다 ‘라고 뜻을 내비친다. 무수한 생각과 공부의 목적이 여기에 있으며, 시집 『걷는 시인 김우식』은 기와지붕에 얹은 청기와 한 장 같아 앞으로 낮의 밝음과 밤의 어둠은 차이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