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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밑에선 봉선화야

by 김규성

키 작고 동글동글하니 재주꾼인 필리핀댁 입이 빼쪽하다. 아니 출입문을 들어서는 모습부터가 눈길을 피하느라 바닥을 보며 들어온다. 요 며칠 마음고생이 심한듯하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살림에 보태 쓰려고 전자상거래로 옷을 핀매하고 소포로 부친 것이 증발해버리고 만 것이다. 나는 나대로 집배원에게 다시 한번 확인을 부탁하고 결과를 기다려 보자고 얘기를 했는데 여기까지는 일의 수순이고 필리핀댁과 서로 통하는 마음이 같았다. 문제는 한 개는 강원도로 갔어야 했는데 그게 왜 대구로 같이 갔냐는 이유를 묻는 것이었다. 가슴이 뜨끔하다. 동명이동, 동명이인, 아파트 동 호수 오기, 건물번호 오기 등으로 잘못되는 일이 종종 발생하여 낭패를 당하는 수가 있어 주소를 확인해 보니 이상이 없었다.

사람마다 필체가 다르고 같은 글씨도 특이한 경우가 많아 육필 주소는 판독이 의외로 어려워 오독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이런 이유로 요즘은 전산 출력물로 물류와 정보 전달에 오류가 없도록 하고 있다. 외국인들이 쓰는 한글주소는 지리적 개념도 없고 한글도 잘 모르니 그려 쓰는 경우가 많아 부정확하다. 또 도로명 주소 자체가 행정동이나 법정동 이름이 주소에 생략되거나 새로이 지어져 자연부락 명칭 연계가 쉽지 않아 접수에 어려움이 있다. 00번 길, 00길과 같이 정확게 써 줘야 그나마 검색에 혼란이 적어지는데 이를 구분하지 않고 임의 작명 주소를 주는 경우도 많아 여간 신경이 쓰이질 않게 된다.


필리핀 댁의 원인은 쓰기가 어려운 한글 주소를 메신저로 받아 대필을 부탁했는데 같은 주소를 보여준 게 화근이었다. 그나마도 수취인에게 잘 전달이 되었으면 회수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겠는데 며칠이 지나도 소포가 나오질 않으니 문 앞에 놓아둔 물건을 누가 가져간 게 틀림없다. 배달국에서는 이런 일이 다반사인양 발송인이나 수취인이 경찰에 도난 신고를 안내한다.


가을비답지 않게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필리핀댁이 또 출입문을 밀고 들어온다. 농촌의 외국인중 많은 수가 불법체류인이라 이 사건으로 경찰이 왔다 갔다 하고 탐문 수사를 벌이면 또 다른 문제가 커질 거라는 하소연이다.


비에 떨어진 채송화가 바닥에 소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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