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나혼자 했어요>, <넉점 반>, <이슬이의 첫 심부름>
<표지>나 혼자 했어요/ 백은희 그림 본문.
내가 어릴 적 동화 신데렐라를 읽으며 '구박받는 느낌'을 치유했다면, 성인이 된 후 접한 심부름에 대한 작품은 웃음을 자아냈다.
'아, 우리 엄마가 내게 심부름을 시키며 답답했겠구나.' 그리고
'내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꽤 뒤치닥거리를 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요새는 집안일을 가르칠 필요가 없다. 많은 가전제품이 있고 필요하면 돈을 지불하고 일손을 구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부모들이 아이에게 도움을 청하느니 차라리 혼자서 해치우는 편이 훨씬 빠르고 편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나 혼자 할 거야!"와 "고맙다는 말을 들어서 기뻐요."의 시기는 반드시 찾아온다. 「머리좋은 아이로 키우는 심부름 습관/ 다쓰미 나기사 지음, 랜덤하우스, 12,13,15쪽.
부모님 입장에선 물론 아이에게 일손을 구한 일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과 살아가는 건, 사실 심부름 없이는 불가능하다.
심부름하기 전에 아이는 '혼자 하기 시도'를 한다. 비록 실수 투성이라도 말이다.
<나 혼자 했어요/ 최윤정 글, 백은희 그림,애플비>는 그런 아이의 일상을 담은 그림책이다.
책 표지에는 스스로 옷 입은 아이가 있다. 단추를 잘못 꿰어 입었지만 표정은 제법 당당하다.
동생과 엄마가 낮잠을 자자, 아이는 혼자 여러가지를 해본다. 장난감도 가지고 놀고 간식도 먹는 등 아이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
그렇지만 어느새 엄마가 아이가 흘린 것을 치우고 세면대 수도꼭지를 닫는다. 그리고 아이가 "나 혼자 했어요."했을 때 따스하게 안아준다. 아이가 한뼘 자란 행동을 하면 어머니들은 뿌듯함을 느낀다. 작품 속 엄마는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어린이는 '심부름 하다가 딴청 피우기' 도 한다.
<넉점 반/ 윤석중 시, 이영경 그림, 창비>에서 어머니는 아이에게 가겟집에 가서 현재 시간을 알아오라고 한다.
아기가 아기가 가겟집에 가서
"영감님 영감님 엄마가 시방 몇 시냐구요."
"넉 점 반이다."
하지만 아이는 닭도 보고, 개미도 보고, 잠자리를 잡으려다가 해가 꼴딱 져 돌아간다.
엄마는 이미 저녁 상을 차려두었다. 아이도 아무렇지도 않게 눈만 끔벅끔벅 한다.
그리고 드디어 '필요한 일 하기'단계이다.
<이슬이의 첫 심부름/쓰쓰이 요리코 글, 하야시 아키코 그림, 한림출판사>에서 어머니는 아이에게 동전을 주고 우유를 사오라고 한다.
이슬이는 엄마와 두 가지 약속을 한다.
차 조심 하기! 거스름돈 잊지 않기!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심부름을 시키지만, 걱정스런 표정이다.
아이는 집을 나선 그 순간부터 위험을 맞는다. 서두르다가 돌부리에 넘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얼른 일어난다.
좌충우돌 가게에 도착한 후, 아이는 어른들에게 몇 번이고 뒤처진다. 겨우 우유를 사고나선 눈물이 '똑'하고 한 방울 떨어질 정도이다.
그리고 어머니가 언덕 아래에서 손을 흔들며 기다리고 있다.
위의 작품들에서 꼬마들은 세상을 향해 한 발 다가간다. 아이가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은 물론, 어머니의 인내와 사랑이다.
잘못을 해도, 딴청을 부려도, 걱정을 끼쳐도 우리에겐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 그대로를 응원하며 우리가 자라는 모습을 사랑해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위안을 마주하니 힘을 얻을 수 밖에.
아직도 서투른 것 투성인 나에게, 수많은 실패는 가장 큰 스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