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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Sep 14. 2015

신데렐라, 경쟁심리 극복기

구박받는 느낌은 성장의 발판

 <표지>디즈니 애니메이션 '신데렐라' , 1950 개봉.


 어릴 적 닳도록 보았던 동화책 중에 '신데렐라'가 있었다. 나는 삼 남매 중 첫째로, 성격이 활달하고 표현을 잘 하는 편이었다. 부모님께서는 우리 셋을 공평하게 대하려 노력하셨다. 어쨌든 나는 동생들에 비해 잔심부름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신데렐라를 읽으며 위로를 받곤 했다.

 어느 부자의 아내가 병이 들었다. 그녀는 죽음을 예감하고 외동딸을 불러 "착하고 신앙심 깊은 아이가 되어라. 그러면 하느님께서 너를 항상 도와주실 거다. 나도 하늘에서 너를 보살펴 주겠다."고 말하고는 세상을 떠났다. 소녀는 어머니의 당부대로 착하고 신앙심 깊은 아이가 되었다. 어느 해 아버지는 새엄마를 맞아들였다. 새엄마는 두 딸을 데리고 왔는데 새엄마와 두 딸 모두 마음씨가 심술궂고 사악했다.
 소녀의 아버지는 종종 오랫동안 멀리 장사하러 나갔다. 그때마다 두 딸과 계모는 소녀에게서 신발과 아름다운 옷과 장신구를 빼앗고 나막신을 신기고 누더기를 입혀서 일을 시켰다. 소녀는 날이 새기 전에 일어나 샘에서 물을 길어 오고 불을 때고 요리를 하고 청소도 해야 했다. 두 언니와 계모는 계속해서 소녀를 조롱하고 괴롭혔다. 그래서 소녀는 항상 재투성이의 더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고 새엄마와 의붓언니들은 소녀를 '재투성이 아이'란 뜻으로 신데렐라라고 불렀다.
 <재투성이에서 꽃 피다/이시스 지음, 이야기나무> 16-17쪽.

 돌이켜보면 우리 부모님께서 나에게 특별히 집안일을 더 시키 않았다. 다만 동생들에게 늘 양보하길 바랐고, 나의 욕망을 드러내면 가끔 '못된 아이'의 굴레를 씌우곤 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께 항상 뒷전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부모님선께 내가 동생들보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동생들은 어려서 뒤쳐지곤 해서 나를 말릴 수밖에 없었다고 하였다.

형제간의 경쟁심리는 부정적인 감정이지만, 매우 보편적이고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신데렐라가 겪는 고생과 천대가 어른들 생각에는 과장된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형제간의 경쟁심리로 고통받는 어린이는 실제로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모든 어린이는 때때로 형제간의 경쟁심리로 몹시 심한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부모의 입장에서 보면, 한 어린이를 위해 다른 어린이를 희생시킨 적이 없으며, 다른 어린이들이 한 어린이를 구박하는 것을 용인한 적도 없다. 그런 심리의 실제 원인은 부모에 대한 어린이의 감정에 있다. 형이나 언니가 자기보다 능력이 뛰어나면 질투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다른 형제가 부모의 특별한 관심을 받게 되면, 부모가 자기를 무시하거나 거부할까 봐 두려워하는 어린이에게는 커다란 모욕이 된다. '신데렐라'에서 어머니가 계모이고 다른 자매들이 심술궂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통해 어린이는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어린이에게 자신은 운이 좋은 편이라는 안도를 얻는다.  <옛이야기의 매력」 브루노 베텔하임, 시공주니어>, 382-384쪽.

나는 위의 글을 읽고 내가 왜 그토록 신데렐라를 반복해서 읽었는 이해하였다. 더구나 동화에 등장하는 계모가, 실은 어머니의 다른 모습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제일 사랑하고, 사랑 받고 싶어하는 존재인 어머니가 나를 구박하는 것 같은 마음이 들 때, 어린이 입장에선 차라리 계모가 아닐까? 하면 쉬워지는 것이란다. 동화 속 계모는 결국 그 속에만 존재하니까.


그러니까 혹시 나처럼 신데렐라 이야기에 꽂혔던 사람은 '구박당하고 있는 기분'의 실체를 다시생각해볼 일이다.


 이야기속 계모는 신데렐라가 자신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위한 시련이었다. 계모가 없었다면 신데렐라는 분리된 자아를 계발하고, 선과 악의 차이를 발견하고, 주도권과 자기 결단력을 키울 계기가 없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 가치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선 속상한 마음이 들어도 자기의 욕망을 한풀 갈아앉히고 진정한 자기다움의 아름다움을 발견해야 한다.

 

이야기에 의하면 무도회에 가기 전에도 신데렐라는 언니들보다 예뻤다.

그러나 무도회에 가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할 만큼 예쁘려면

언니들과 다른 과정이 있어야 했다.


그 첫째는 '기초적 신뢰'이다. 이것은 신데렐라의 친어머니와의 경험에서 생긴 사랑이며 신데렐라의 인격 속에 굳게 자리잡고 있다. 둘째는 자율성이다. 신데렐라는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인정하고 그것에 최선을 다하였다. 신데렐라는 주도성이다. 신데렐라는 나뭇가지를 심고 정성과 눈물과 기도로 나무를 키우면서 그것을 발달시켰다. 신데렐라는 넷째는 근면성이다. 완두콩을 골라내는 것과 같은 노동으로 표현된다. 다섯째는 자기 정체성이다. 신데렐라는 무도회에서 빠져나와 숨으면서, 왕자가 "재투성이"와  같은 부정적인 자신의 모습까지 인정해주기를 고집한다.
<옛이야기의 매력/ 브루노 베텔하임>, 위의 책, 440쪽.

이야기 속에서 신데렐라는 언니들과 달리 외모를 꾸미지 않았다. 자기가 맡은 일을 해내었다. 그리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그것을 스스로 풀러 어머니 무덤가 나무를  찾아갔다. 그래서 마법이 찾아왔던 것이다.

디즈니 신데렐라 장면


마법이 현실에서 일어날때, 즉 기회가 자신의 문전에 왔을때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않다.


신데렐라의 언니들처럼,

엄마 말대로 자신의 발이라도 잘라 왕자에게 시집가려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사진 출처> 2000.5.23 한겨례 기사

한편  우리 가족들에게 내 별명 '귀진이'였다.

-_-;

신데렐라 형 드라마 '덕이'의 악역 말이다.


하지만 나는 기.필.코. 귀진이처럼 악독하게 동생들을 괴롭힌 적 없었다.

나 역시 신데렐라처럼 구박받는다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이야기 속 신데렐라는 왕자를 만나 결혼했고, 귀덕이도 오래 전에 행복을 찾아갔으니 된 거 아닌가?

 

결론적으로 '신데렐라 콤플렉스' 외모에 국한하지않는다.

우리의 아름다움은 외모로만 끝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내일도 자기다웁게 열심히 살아가자.

그러다보면 좋은 날이 기적처럼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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