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나무보관실 선반을 만들다. 그동안 계단으로 많이 옮겼다
공방 이전을 위한 실내 천장, 칸 나눔, 바닥 타일 시공이 완료되었다.
다음 작업은 실내를 계획한 데로 사용할 수 있도록 물건들을 지정된 위치에 쓰임새가 좋게 배치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
목공방에서 주로 사용되는 나무의 보관!! 나무의 종류와 두께별로 정리할 선반이 필요했다. 나무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그 어마어마한 중량을 버틸 수 있도록 튼튼한 선반을 만들기 위해 선반의 자재는 각관과 C형강을 사용하기로 했다.
건물 골조공사를 위해 각관과 C형강을 주문했었는데 그때 나무보관실 선반 만들 자재도 계산을 하여 함께 주문했었다.
나름 꼼꼼히 준비해 둔 것이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기분 좋은 것은 혹시 자재가 부족할까 봐 철강유통 회사에 가격을 물어보니 철 값이 많이 올랐다. 미리 사서 쟁여둔 것이 이렇게 돈을 벌게 해 주다니 안 그래도 가벼운 통장에 도움이 톡톡히 되었다.
나무 사이즈 1220(4자) × 2440(8 자) 일명 48 사이즈 판재를 놓을 수 있도록 간격을 주고 각관으로 기둥을 세운 후 기둥과 기둥을 C형강으로 이어 위아래 칸을 여러 개 나누었다.
행어도어 양쪽으로 선반을 만들었는데 총 20종류의 판재를 놓을 수 있다. 한 칸 당 10~20장씩 보관할 수 있게 하였고 맨 아래칸은 길이가 긴 각재 보관이나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도록 높이를 여유 있게 만들었다.
용접기술을 익혀두니 여기저기 써먹을 곳이 많다. 눈물의 용접이 환호의 용접으로 바뀌었다. 과거의 기억이 영화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2010년 2평도 안되던 작은 공간에서 목공예를 시작했다.
원형톱을 작은 테이블 하단에 거꾸로 붙여놓고 테이블쏘라며 기뻐했고 나름 최신 기계라는 중고 자작 CNC를 한편에 놓아둔 작은 공간... 서투르고 부족한 실력이었지만 꿈을 키워 나갔다.
공간이 없고 공간이 좁은 것에 대해 불평불만 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당시 목공을 하기 위해서는 왕복 20km를 차로 달리고 4층 계단을 감수해야 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강한 의지와 열정이 없다면 할 수 없던 일이라 멋지게 포장하고 싶지만 사실 살아남기 위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마음이 더 컸다. 해내고 싶었고 간절했다.
그렇게 시작한 목공예는 2014년 20평 공간으로 이전을 하게 되었다. 사실 2010~2014년 사이의 이야기도 엄청나게 많지만 이 글은 집 짓기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기에 간단히 언급만 하도록 하겠다. 집짓기 이야기가 끝나면 '어느 목수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 보고 싶다.
5년간 늘어난 공구를 풀었더니 20평 공간이 꽉 찼다. 실내가 2평에서 10배로 늘어난 20평이었는데도 나무를 보관할 곳이 없어 야외에 간이 선반을 만들게 되었다. 그래도 왕복 20km는 줄었고 4층에서 2층으로 나무 이동 동선이 많이 줄었다. 이것만으로도 엄청나게 행복했다.
선반에 비와 눈 맞지 말라고 투명 패널을 덮어 주었다. 강한 햇빛과 태풍은 매년 패널을 교체해야 하는 주 된 이유이기도 했다.
야외에서 보관? 방치? 된 나무를 보았는가? 휘고 뒤틀리고 색이 바랜다. 하지만 방법이 없기에 방치보관을 할 수 밖에는... 나무 보관창고가 실내에 있는 공방을 상상하던 때이다.
48 사이즈 판재를 2층 계단으로 (폭은 90cm 20 개단) 'ㄷ' 자 구조의 통로로 6년간 들어 올렸다. 특수목이거나 두꺼운 나무, 길이가 긴 나무 등등 어느샌가 계단으로 큰 거 옮기는 달인이 되어 있었다.
모든 달인들의 몸에 새겨진 흔적이 나에게도 생겼다. 그것을 훈장이라고 하던데... 보이지 않는 관절염은 어찌 표현이 될는지...
2019년 드디어 나무를 트럭으로 옮기고 행어도어를 열면 몇 걸음만에 싣고 내릴 수 있는 나무보관실과 나무보관 선반이 만들어졌다. 이젠 혼자서 쉽게 상하차가 가능해졌다.
사계절의 온도, 습도 변화가 두렵지 않다. 햇빛도 두렵지 않다. 비와 눈도 두렵지 않다. 이 공간 또한 눈물이 나게 하는구나~
좋은 마음은 좋은 환경에서 만들어짐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