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어쩌란 말이냐 트위스트 추면서
2020년 12월: 정리
넓디넓은 세상에서 아직은 아무것도 아닌 나를 발견하고, 벽에 부딪혀 현실을 깨달을 때면 꿈꾸던 보다 나은 내가 아닌 한층 초라해진 나와 대면한다. 노력할 힘이 없다는 핑계로 안주하면 그 자체로 회의감을 맞이하는 한편,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보답이나 충만감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스스로에게 인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조리개는 느슨해져 때때로 너무나도 관대했고, 타인을 오히려 깎아내리며 과소평가했음을 깨닫는다.
절대적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고 싶지만 세속적 기준에서 뒤떨어진 자신은 싫고, 다양한 사람들과 두루두루 친한 사람이 흥미롭고 조금은 부럽다가도 새로운 사람은 경계하고 바쁜 일정은 버거워 그나마 남은 인간관계마저 뱉어낸다.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잘되기를 바라고 다른 가치관의 사람을 수용하지 못하는 편협심은 깊어가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을 보면 눈이 부시다 못해 배가 아플 지경. 나는 망상만 가득한 채 정말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우습게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도 꿈꾸는 거니.
착하고 순했던 후배가 퇴사하면서 몇 명에게 그동안 감사했다는 내용의 개인 톡을 보냈는데 그 목록에 내가 없던걸 보면 나의 마음이 부족했구나 싶고, 오히려 그런 식의 개인 톡이 오면 내가 그를 위해 뭘 해줬나 가늠 조차 안된다. 근래의 평화는 고독에서만 찾을 수 있다. 타인을 새로이 알아가고자 노력하는 게 부질없게 느껴져 불가피한 상황 아니면 만남도 피한다. 사회성은 바닥을 치는데 코로나 덕분에 자연스럽게 더 고립되고 있다. 이 핑계로 최소한으로 기울여 온 인위적인 노력도 점점 줄이게 되니, 먼저 손 내밀어주는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한 요즘.
나는 늘 또래보다 어른스러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애송이에 불과했다. 뭐가 정답인지 모르는 세상에 간접경험 만으로는 나아갈 수 없음을 실감한다. 세상엔 혼자 힘으로 안 되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연말 분위기에 취해 스스로를 돌아보니 차가운 말로밖엔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건 잘했어, 수고했어.' 할만한 게 있긴 했나. 소화도 못할 책을 가득 쌓아놓은 숙제 많은 사람이 된 기분이다. 최근에는 간단한 일을 하는 것도 버겁고 짜증스러웠다. 필요한 것도 손가락 사이로 다 놓치진 않았나, 욕심을 부릴 법한 일조차 그냥 보냈겠지, 타인에게 피해 주고 상처주진 않았을까, 고민하다 짐작되는 일 하나 둘 무의식 속에서 떠오르니 입안이 쓰다.
지리멸렬하게 한 해를 보내니 정리도 산만하다. 2020년은 0이 두 개라 구멍 사이로 다 빠져나갔다는 농담이 진담이 되어버렸다. 총명하고 명석한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도 같은데 그런 꿈조차 희미하네.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을 때면 희망과 기대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데, 내년 다이어리를 선물 받고도 새해 목표조차 채우지 못하는 미아가 된 나. 내년에는 따뜻한 햇볕 아래 나침반을 든 내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