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 속 손톱이나 머리를 만져주는 뷰티살롱에서 수다의 장이 펼쳐지는 장면을 종종 만난다. 허심탄회한 속 얘기를 털어놓는 솜사탕 같은 색감의 공간은 시각적으로도 유쾌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사람들 외로웠구나, 자기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던 거구나 싶다. 반대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해주던 사람들의 서사가 궁금해진다.
체력은 상냥함에서 나온다는 말에 깊게 공감한다. 체력이 떨어지니 예민해지고 자기 방어가 심해져 여유가 부족하다. 짜증이 늘어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세 치 혀로 상처 주는 일이 잦아지자 안 되겠어서 작년 겨울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이거라도 안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꾸준히 하고는 있는데 코로나로 시설들이 문 닫으면서 운동을 쉬 니 체력이 붙나 싶었다가 다시 바닥 친다. 코로나 블루와 가을 콤비는 기분마저 끌어내린다.
병동 간호사 업무는 환자나 보호자와 대면 시간이 길기 때문에 일종의 서비스직 일 수밖에 없다. 일에 요령이 붙을수록, 나는 환자들의 말 허리를 자르는 것에 익숙해진다. 역사가 없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아파서 서러운 사람들의 이야기보따리는 끝없이 이어진다. 정말 죄송하게도 다 듣고 있으면 업무 진행이 어렵다. 여타의 일이 그러하듯 간호사일 역시 시간과의 싸움이다. 매 시간마다 환자에게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데, 거기다 환자 상태가 좋지 않아 손이 많이 가기 시작하면 일이 늘어나는 식이다. 인계받은 담당 간호사가 아니면 해결할 수 없는 일 투성이라 타인의 도움도 한계가 있다. 급급하여 꾸역꾸역 일한다.
글을 쓰기 시작한 초기에 환자의 마음에 대해서도 더 들여다보고 싶다고 썼었는데 참 쉽지 않다. 환자는 하소연할 데가 없으니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이런저런 넋두리를 하는데, 가만히 들어주다가도 에너지가 바닥난 시점이 오면 스스로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된 것 같아 서럽다. 환자가 간호사 개인에게 분노하여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병원 전반에 대해 불만을 표출할 낼 지언정, 투사의 대상이 된 청자인 나는 때때로 억울하고 끝내 상처 입는다.
상황을 설명해도 상대방에게 닿지 않을 때는 그저 망연하다. 이해나 설득을 포기하는 순간을 맞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삐져나오는 불순한 마음들. 좋은 게 좋다고 대신 사과하고 위로하는 일이 비일비재인 일상 속에 내가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할 정신은 무엇일까.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 묻자 보람이 없어 힘들다 했던 후배 간호사의 말이 오래도록 사무쳤다. 나는 정도를 걷는 중일까 이탈 중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