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그 무엇의 해결책도 될 수 없다지만 그럼에도 술이라도마셔야 할 퇴근길이 있다. 답답한 마음을 어찌할 바 모르다 허탈한 마음에 맥주 한 캔을 혼자서 홀짝이던 밤, 마음은 끊임없이 요동쳤다. 섬망이 와서 보호자도 알아보지 못하던 할아버지 환자가 스스로를 괴롭히다 못해 담당 간호사인 내 얼굴과 턱을 걷어차고, 약을 먹이려던 얼굴엔 침을 뱉었다. 보고하여 상황을 해결하던 과정도 매끄럽지 않았고 그 와중에 다른 환자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인계를 주고 퇴근하던 길, 나쁜 일은 빨리 잊고 다음으로 넘어가려 하는 나의 몇 안 되는 장점마저 밤하늘에 꼭꼭 숨은 듯 스스로의 기분에 꿰뚫린 채 옴짝달싹 못했다.
글에는 정제된 나를 담자고 다짐한다. 더구나 나의 일터인 병원에서 일어난 일들은 특정인에 대한 인신공격이나 개인사를 드러내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글을 쓸 땐 고심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 글의 초안을 작성할 땐 분노에 차서 어떤 상황에 누가 나를 힘들게 했는지 구차할 정도로 구구절절 적었다. 그러나 불쾌한 기분으로 쓰는 글들은 하소연밖엔 되지 않고, 그런 징징거리는 말들에상황이 재연되니 다시금 힘들고 우울 해질 뿐이었다. 그러니 시간을 두고 천천히 생각했다. 무엇이 나를 그토록 빈정 상하게 했는지, '더 이상 이 일 못해먹겠다.' 생각하게 했는지, 며칠이나 나를 힘들게 한 그 근간이 무엇인지.
결국 나는 존중받고 싶은 거였다. 내가 상대에게 예의를 보이면 상대도 응당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당연한 기대를 충족해 주기를. 섬망이 와서 나를 괴롭힌 환자들은 내가 다치지만 않는다면 전혀 문제가 되질 않고, 쌍욕을 한대도 상처받지 않는다. 다음날 정신이 들어 "어이구, 내가 그랬어? 미안하네."라고 사과하시는 점잖은 모습에 서로 민망할 뿐. 오히려 맨 정신인 사람들이 휘두르는 이기적인말들에 울분이 터진다.
오래전 명절에 만난 육촌이 말하길, 사람들은 자신이 예민한 부분에 발끈하게 되어있단다. 예를 들어 과체중이 예민한 사람은 '뚱뚱하다'는 말을, 지식 콤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멍청하다'는 말을 불쾌하게 느낀다고. 그러니 어떤 말은 나에게 전혀 타격이 없지만, 스스로 신경 쓰던 부분은 덜 박힌 나사못처럼 거슬린다. 그 기회로 때때로 내가 어떤 부분에 예민한가-에 대해 생각하게됐다. 남동생과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나는 고민 끝에 '경우 없다'는 말을 듣는 것이 정말로 싫다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가면을 쓰고 산다. 이 사람을 대할 때는 이렇게, 저 사람을 대할 때는 저렇게 다른 가면으로 바꿔 끼우며. 강자에게 강하게 약자에게 약하게 사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나 역시 후배에게 편하게 하는 말이 있고 선배에겐 못하는 말이 있으니 떳떳하진 못하다. 우리 주변엔 누군가에겐 허리를 굽신거리다가 나보다 아랫사람이라고 판단하면 경력이나 분야에 상관없이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진짜 필요한 말은 못 하면서 전혀 상관없는 엉뚱한 사람에게 투사하는 사람도 있고, 아는 사람에겐 살갑다가도 전화로 통화할 땐 사나운 사람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간혹 하는 일, 나이, 상황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상냥한 보석 같은 존재들이 있다(어이없지만 그 반대로 모두에게 공평하게 예의 없는 사람도 있고). 여러 군상을 보며타인이 일방적으로 준 상처에 왜 스스로를 다잡아야하는지 갈 곳 없는 분한 마음이 드는 한편 나 역시 그저당하고 싶지 않아 날을 세우며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잊는 어리석고 예의 없는 사람이었는지도 의심해 본다.
어둠이 깔린 산에선 사람이 제일 무서운 존재다. 어떤 곤충도 동물도 이질감이 없다가 누군가 불쑥 나타나면 소스라치게 놀라고 자연스레 경계하게 된다. 그러나 정상에 올라 야경을 바라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멀리서 반짝이는 사람이 만든 불빛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그들과 나를 통해 배운 건 친절함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을 통해얻고 노력을 들여 유지하는 것이라는 점. 기대 없이 건네 온 타인의 선의에 기분 좋게 놀랐던 순간을 떠올리며요 며칠 나를의기소침하게 했던 폭풍우를 지운다.그러면나는 다시 양지바른 곳으로돌아와뽀송뽀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