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시간이 중요하단 걸

엄마와 춘천 당일치기

by 나무

열대야의 새벽 공기는 어릴 때 다녔던 수증기 가득한 북한산 목욕탕의 온탕 같다. 이른 기상에 몸은 무겁고, 짐도 제법 묵직한 데다 시간도 빠듯해서 애초의 계획과는 달리 도저히 15분 정도 걸어서 엄마집으로 갈 엄두가 안 났다. 판단은 빠를수록 좋지. 얼른 자전거에 몸을 실어 축축한 공기를 가르며 동네를 나섰다.


엄마가 전철역까지 길을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평소 지각을 하는 사람도 아닌데, 왜 가족끼리 식사 때마다 문 앞을 왔다 갔다 하다 제일 늦게 집을 나서던 것이 생각날까. 통제 성향에 빨간불이 들어와 나는 지레 겁먹고 엄마집에서 만나 같이 출발하자고 했다. 하지만 예정 시간을 앞두고 쫓기는 마음이 피어나자 전철역에서 만나면 좋았을 걸,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이 일을 벌이면 이렇다, 나는 왜 번거로운 일을 만들까-짜증스럽게 페달을 밟으며 투덜댔으니 강 같은 평화는 오늘도 남의 이야기다.


요 몇 년 사이 엄마는 부쩍 노쇠해졌다. 살이 내리고 이빨은 약해지고 움직임은 둔해졌고 자주 끙끙 앓기도 하였으며 이젠 누가 봐도 노년기에 접어든 티가 난다. 핸드폰에 리마인더가 몇 년 전 사진을 비출 때면 확연히 젊은 엄마가 미소 짓고 있어 괜스레 짠하다. 체력이 남아있을 때 조금 더 활동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한 달에 한 번이나 격월로라도 나들이를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거창하게 벌리려다 이도저도 아니게 되지 않게, 간단하고 단출하게.


그리하여 무더위가 한창이던 7월 중순, 엄마와 둘이서 춘천에 다녀왔다. 춘천은 대학 동기의 고향인데 그 덕에 맛집 몇 군데를 추천받아 지난겨울 즐겁게 다녀왔던 곳이었다. 그 좋은 추억을 엄마와 나누고 싶었다. 기차 여행을 계획하며 이동시간을 안배하고 동선을 짰다. 엄마는 오랜만의 외곽 행차가 기꺼운 눈치였다.


그래도 강원도인데 그렇게 더우랴 했지만 대한민국의 여름은 쉽게 볼 친구가 아니었다. 동선에 따라 새로이 시도한 닭갈비 집은 형편없었고(원래 가던 집이 정말 맛있어서 더 아쉬웠다), 숨만 쉬어도 땀이 주룩주룩 흘렀으며 혹시나 챙겨간 얼음팩은 금방 녹아버렸다. 시작부터 생각대로 되지 않아 불안했지만 일단 예정대로 소양강 배를 타려고 택시에 올랐다. 친절한 택시아저씨는 요즘 여기 가는 사람 없다며 자기도 작년엔 다른 손님 때문에 딱 한번 가봤다고, 올해도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게 될 것 같다는 눈치 없는 너스레로 나의 기대감에 초를 쳤다. 외길이라 서로 양보해야 하는 구불구불한 길을 오르면서도 마주치는 차가 없더라니, 주차장은 텅 비어있어 이 여행 망했구나,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택시에서 내려 하향길 끝에 놓인 선착장은 무척 고요했다. 설마 운행 안 하는 거 아냐? 동태를 살피기 위해 먼저 내려갔다. 스무 명가량의 사람이 다음 배를 기다리는 걸 보자마자 사람 있다고, 배 뜬다고- 엄마에게 뻐꾸기를 날렸다. 그늘 아래에서도 푹푹 찌는 선착장에서 대기하다 창문이 다 열려 있어도 찜질방 같이 후끈한 배를 타고 청평사로 향했다. 계절에 너무 무리한 일정이었을까, 이미 시작부터 엄마도 나도 더위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괜히 왔다는 생각을 떨치는데도 에너지를 써야 했다. 복귀 배편은 1시간 간격으로 있었는데 애초 계획은 2시간 후 배를 탈 계획이었으나 1시간 후면 충분하지 않겠냐고 엄마가 은근하게 말했다. 청평사까지는 30분 정도 소요되는 걸을만한 코스지만 힘들면 중도하차하자고 자연스럽게 합의를 봤다.


오르막 숲 길에 들어서자 물소리가 들렸고 우거진 나무들이 뜨거운 햇살을 가려주었다. 이윽고 맑은 물길이 나타나더니 중간엔 선녀가 뱀을 들고 (설화와 관련된 동상이라고 했다) 물가에서 우리를 유혹했다. 이미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물놀이 중이었다. 사람들은 어떻게 알고 이렇게 구석구석 찾아다니는 걸까. 그동안 우리만 집에 있었나 보다며 엄마랑 빙긋 웃었다.


절을 향해 씩씩하게 오르던 길 건너편에서 내려오던 가족에게 도착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물었다. 일행 중 아버지로 보이시는 분이 거의 다 왔다고 알려주자 엄마는 산에선 다들 다 왔다고 하지 않냐고 농을 던졌다. 가족들이 까르르 웃더니 정말 3분 정도 남았다고 추가 답변을 주었다. 중도하차할까 고민하던 찰나 진실한 가족을 만나 3분을 더 올랐고 이윽고 청평사를 만났다. 그늘 아래 벤치에서 처마 위 하늘을 바라보며 길한 나날을 빌고 더운 몸을 식혔다.


선녀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았지만 폭포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엄마는 신발 신고 벗기가 불편해 물에는 안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발을 안 담그고 갈 수는 없다고 열심히 꼬셨다. 결과는 대성공! 시린 계곡물은 부은 발과 이동 중 피로해진 마음 모두 쪼그라들게 하여 미진했던 오늘 일정을 미화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예상밖의 피서를 즐기다 돌아오는 배는 좀 더 천천히 올랐다.


상대가 좋아할까, 싫어할까, 실망할까를 생각하다 보면 성공여부에 대한 걱정이 나를 잡아먹어 버린다. 수행이 부족하여 이번에도 온전히 현재의 즐거움에 집중할 수 없었고, 어설프게도 여행 중 예민한 티를 내고 말았지만 엄마는 좋았다고, 피곤하지 않았고 기분전환과 위로가 되더라고 말해주시어, 나는 미련한 마음을 갈무리하며 이 1인 관객을 위해 다음엔 어떤 일을 해볼까 고민한다.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즐겁게 우리의 시간을 쌓아보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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