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Jun 09. 2024

오늘도 실수를 반복

나는 잊을만하면 물을 주는 아주 게으른 식집사로, 결국 우리 집엔 그런 게으름에도 버틸 수 있는 강한 녀석들만 살아남았다. 어제 비가 우르르 떨어지길래 집 밖에 잠깐 나무들을 내놓을 때 덩굴처럼 생겨 내놓기 귀찮은 놈만 빼놨었다. 오늘 오전 문득 생각이나 부지런한 사람인척 물을 듬뿍 줬는데  문제는 화분의 감당 능력을 예상하지 않고 주르륵 쏟아부었다가 아래에 둔 책들에 물이 우수수 떨어지는 대형사고를 치고 말았다.


내가 저지른 실수에 어이가 없었지만 당장 해결이 급선무이므로 책들을 몽땅 빼어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던져두고 걸레를 들곤 쓱쓱 닦기 시작했다. 이김에 전혀 신경 쓰지 않던 곳까지 물걸레질을 했다. 부끄러운 건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어리석고 게으른 인간이 또 있나 싶은데, 나 하는 일이 그렇지 싶다.


여러 상자나 책이 쌓여 있는 곳에서 내가 원하는 물건이 하단에 있는 경우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위에 것을 다 내려놓고 하단의 것을 취할 텐데, 아래 것만 젠가처럼 쏙 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환상적인 사고에 휩쓸리곤 실행했다가 결국 와르르 무너진 상단의 물체들을 주섬주섬 정리하곤 한다. 문득 내가 아주 게으른 사람이라고 늘 이야기하지만 주변인들이 그 말을 온전히 믿어주지 않는 것은 뒷수습에 열성인 모습을 보곤 그러는 게 아닐까 싶다. 결국 내가 싼 똥 치우는 주제에 불과한데 말이다.


또 이러지 말아야지, 생각하지만 또 저지르겠지. 히히.

작가의 이전글 당신의 이름을 부를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