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 있는 분은 모르는 사람이 아니고 제 엄마입니다)
나는 엄마보다 덩치가 크다. 심할 정도로. 엄마는 늘 왜소했고 나만 계속 커져갔다. 엄마 키는 160센티미터 내 키는 170센티미터. 엄마의 몸무게를 밝히면 내 것도 같이 까발려지니 정확한 무게를 말할 수는 없지만 30킬로그램 이상 차이다. 고등학생 때부터 엄마와 함께 다니면 늘 이런 소리를 들었다. "어우, 엄마 업고 다녀야겠다.", "어우, 엄마는 이렇게 작은데 딸이 이렇게 커?", "어우, 딸이 듬직하네." 물론 혼자 다닌다고 저런 소리를 안 듣는 건 아니다. "혹시 유도 하셨어요?" 20대 초반에 동대문으로 쇼핑을 갔다가 매장 언니에게 이런 질문을 들었다. 웃기게도 난 그 말이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 좋았다. 평생 운동이라곤 안 하고 살았는데 운동선수 같다니, 칭찬 같기만 했다. 칭찬이 아니었단 걸 몇 년 흐른 뒤에 깨달은 거 보면 나도 참 곰 같다.
정확히 10개월 전, 나는 엄마와 동생이 살고 있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기념하듯 세 식구가 신나게 향한 곳은 세심원 온천이었다. 참고로 동생은 목욕탕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서 씻으면 되지 왜 돈을 내고 씻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부류다. 엄마랑 나만 목욕탕이니 찜질방이니 하는 곳들을 좋아한다. 아무튼 10개월 전 그날에 나는 '엄마보다 큰 딸'에게 선사하는 오지랖 넓은 아줌마들의 문장 하나를 더 획득할 수 있었다.
"아이고... 딸이 엄마 밥을 다 뺏어 먹었나 보네."
이젠 이런 말을 들어도 한 귀로 흘려보낼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이상할 만큼 뇌리에 박혀 버렸다. 실제로 많이 먹어서 찐 살이긴 하지만 엄마 밥을 뺏어 먹은 적은 없다. 엄마가 더 먹으라고 본인 몫을 덜어줬을 뿐이지. 억울하다. 그리고 내가 유독 쌀밥을 좋아해서 우리 식구들은 돈가스집에 가면 꼭 자기 몫의 밥을 내게 조금 덜어준다. 내 주먹 반 만한 크기의 밥에서 언니 먹으라고, 우리 딸 먹으라고 덜어준단 말이다. 내가 뺏어먹은 적은 없다. 하지만 찔리긴 한다. 그래서 저 말이 계속 기억에 남는 걸까? 찔리는 구석이 있다 보니 '엄마 밥을 다 뺏어 먹은 딸'이라는 타이틀에 웃음이 나오나 보다. 기분 나쁘고 창피하기만 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을 텐데 나는 이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주변에 몇 번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옷을 벗기만 기다렸다는 듯 말을 걸어오는 아줌마들은 여전히 기분 나쁘다. 면전에서는 그냥 웃고 말지만 내가 살이 찌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라는 생각을 목욕 내내 하게 된다. 살뿐만이 아니라 내가 아토피로 고생했을 때에도 헬스장 탈의실에서 아줌마들이 무지막지하게 말을 걸어왔었다. 아토피에 좋다는 무슨 약초, 다이어트에 좋다는 효소... 그런 것들을 일러주는 말투와 눈빛엔 분명 나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묻어있었다. 타인을 함부로 안타까워하지 않으면 안 되나? 참을 수가 없는 걸까? 살찐 여자를 보고서는, 엄마보다 덩치가 커다란 여자를 보고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마법에라도 걸린 걸까?
혼자 목욕하러 온 여자에게는 아무도 말을 걸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뒤로 나는 계속 혼자 다닌다. 갑자기 등 뒤에서 튀어나와 "딸이야?", "딸이 왜 이렇게 커.", "둘이 자매야? 누가 언니야.", "어어, 언니는 살 좀 빼야겠다."라며 알은체 하는 아줌마들을 상대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나는 언제까지고 혼자 목욕을 다니고 싶다. 누구든 자기 몸은 자기가 가장 잘 안다. 게다가 목욕탕은 사방이 거울 아닌가. 둥글고 커다란 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나는 오늘도 오지랖 사냥꾼들의 눈을 피해 서둘러 탈의하고 환복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