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죽는 순간, 염.

염 하는 것을 처음으로 보다.

by 우딤




지난 크리스마스 이브,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급하게 연락을 받고 아침 기차로 시골에 내려가 상복을 입었다.


이튿날 오전에 장례 업체 매니저가 시키는 대로 모든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시체를 염한다고 했는데 그 말의 정확한 뜻을 찾아본다는 게 여태 깜빡했다. 아무튼 외할아버지의 죽은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7년전쯤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난 고작 열 세살이어서 엄마는 내게 견디기 힘들면 굳이 아빠의 시체를 볼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난 아빠를 염 하는 걸 보지 않았다. 그러니 누군가의 죽은 몸을 모는 건 처음이었다.


그 장면은 꽤나 큰 충격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아주 평온한 얼굴로 곧게 누워계셨으므로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았지만 그 뒤, 그의 육체에 행해진 일은 보는 이가 고통스러웠다. 기다란 천으로 얼굴을 돌돌 감싸고 봉투 같기도한 천을 또 씌운다. 두 명의 장정이 함께 시체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아주 조심스러운 손길로 온몸을 꽁꽁 싼다. 아주 강하게, 물건을 묶어도 저렇게 세게 묶진 않을텐데 싶을 만큼 세게. 양 팔을 옆구리에 바짝 붙이게 하고 천천으로 돌돌 감쌀 때, 나는 염 한다는 행위 자체가 진짜 사람이 죽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이미 죽은 몸을 그렇게 하는 것이지만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방금 전까진 그저 평온하게 눈을 감고 있는 나의 외할아버지였는데 이젠 천쪼가리에 꽁꽁 묶여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한 덩어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보다 그 장면이 내겐 더 슬프고 비현실적이었다. 사람을 최소한으로 축소 시키는 듯한 행위를 바라보면서 여행 가방에 무리해서 물건을 구겨 넣는 장면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문득 열세 살의 내가 아빠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않은 건 잘한 선택이라고 여겨졌다. 그 당시 한 이모께서 내게 "그래도 네 아빠인데 가서 보지 않고." 라는 말을 한 게 두고두고 기억에 남았었는데 이제서야 확신이 든다. 보지 않기를 잘 했다. 내 아버지가 천에 꽁꽁 쌓여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버리는 과정을 나는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열세 살의 내가 감당 할 수 있는 장면이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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