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로 받았던 엄마밥상

by 쓰는 미래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나는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해 자취를 시작했다.

무려 10년 전 이야기다.

나의 자취방은 현관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 있고 안쪽에 방 하나가 딸려 있는 10평 남짓의 공간이었다.

지저분하고도 미니멀했던 그 공간에는 중고 가전제품을 파는 곳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냉장고만이 존재감 있게 웅얼거렸다.

25년 남짓 함께 살아온 딸내미가 큰 물에서 놀아보겠다고 무작정 서울로 거처를 옮겼던 그때

모름지기 혼자 살아도 냉장고는 커야 한다며 150리터짜리로 엄마가 골라준 것이었다.

그 때문에 누구든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집 크기에 맞지 않게 툭 튀어나온 냉장고를 보곤 놀라곤 했다.

냉장고에 걸려 넘어져 봤는가. 내 자취방이 그랬다.

1등급이라고 크게 붙은 스티커가 의심스러울 만큼 전기세를 갉아먹던 그 냉장고는 아래 칸은 나의 맥주 저장고로 위 칸은 음식물쓰레기를 얼리는 용도로 쓰였다. 한마디로 아까운 전기세만 소비하는 24시간 켜져 있는 창고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냉장고에게도 본연의 자아를 찾고 내면이 풍족해지는 때가 있었으니

바로 엄마의 반찬 택배가 오는 날이었다.

엄마는 마치 CCTV로 들여다본듯 냉장고가 텅 비는 시점에 각종 김치와 내가 좋아하는 반찬 몇 가지, 얼린 곰탕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포장해 택배로 부쳤다.

그즈음 이혼과 갱년기가 겹쳐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있던 엄마의 몸무게는 38kg에 지나지 않았는데, 택배 상자의 무게는 분명 그보다 무거웠다.

가파른 오르막길 위에 있던 자취방으로 택배기사님이 배달해줄 때마다 이 안엔 대체 뭐가 든 거요? 라며 화를 낼 정도였다.


그럼 속으로 나는 이렇게 답했다.


'이 박스 안에는 저희 엄마가 들어 있지요.'


그랬다. 정말 그 박스 안에는 엄마가 내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기차표값이 아까워 서울 구경 한번 오지 못하고 역에서 눈물바람으로 서 있기만 했던 엄마의 애달픔, 해 먹이고 닦인 자식을 내보낸 공허함 같은 것이 덤으로 상자에 꽁꽁 묶이고 포개져 있으니 무거울 수밖에.


박스를 뜯었을 때 처음 맡을 수 있는 건 김치 냄새였다.

두 번 세 번 싼 비닐봉지도 뚫고 흘러나온 김치 냄새는 금방 내 침샘을 자극했다.

그럼 나는 포장을 뜯고 정리할 새도 없이 봉지 묶인 부분만 잘라내 락앤락 통에 대강 부려 놓고는 밥솥에서 흰 밥을 펐다.

제일 먼저 손에 잡히는 것은 오이소박이.

하나를 통째로 입에 넣으면 열 십자로 잘린 오이 안에 가득 차 있는 부추와 양념들이 젓갈의 향과 어우러지며 시원하게 씹혔다. 따뜻한 쌀밥과 함께 삼키면 대충 컵라면이나 샌드위치로 때우던 위장의 울렁거림까지 쑥 하고 내려갔다.


냉장고에 조금만 두어도 물렁해지고 맛이 없어지는 오이소박이는 뭐니 뭐니 해도 처음 먹을 때가 가장 맛있었으니 아끼지 않고 양껏 먹어 주어야 했다.

오이를 하나하나 씻고 잘라내 적당히 소금에 절이고 각종 채소와 양념을 채워 넣어야 하는, 엄마가 보낸 반찬 중에 유독 손이 많이 가는 것이니 말이다.

잦은 야근으로 아침도 챙겨 먹지 못하던 때, 냉장고 안쪽에서 시퍼런 물이 든 채로 축 늘어진 오이소박이를 발견했을 때의 참담함이란, 엄마가 분주하게 버무렸을 그 시간을 통째로 갖다 버리는 기분이었다.


좀 더 과장하면,

"니는 엄마 생각도 안 하나?"

라고 소리치던 엄마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울리는 것 같았다.

홀로 된 엄마를 두고 무작정 대출까지 받아내 서울 집을 얻고, 함께 울기 싫어 기차역에서 눈물을 훔치는 엄마를 매정하게 돌려보냈던 그 죄책감까지 몰려오는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엄마가 보내준 반찬은 그 어느 것 하나 버리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상하기 전에 먹어치웠다.

자연스레 외식보다는 집에서 차려먹기 시작했고 타향살이의 외로움을 술로 풀던 많은 하루 중 몇 날을 밥심으로 버틸 수 있었다.

뒤돌아 생각해보면 평소에는 해주지 못했던 소고기 장조림, 오이소박이, 우엉, 연근 조림 같은 정성스러운 반찬들로 엄마는 나의 안녕을 물었다.

휴가를 맞아 고향에 내려가면 우울하고 어두운 집으로 들어가기 싫어 친구들과 밤새 놀기만 바빴던, 서울 물 먹은 티라도 내듯 가시 돋친 말만 툭툭 내뱉던 무뚝뚝하고 못난 딸에게 건넬 수 있었던 엄마의 최선.

나는 그런 엄마의 마음을 묵묵히 삼키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엄마 탓도 아니었던 이혼을 원망했고 우울증 때문에 하나부터 열까지 잔소리를 하던 그 목소리조차 듣기 싫어했다.


그러나 반찬 택배를 받던 그날만은 엄마가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홀로 부엌에 앉아 김장을 하고 뜨거운 불 앞에서 종일 곰탕을 끓였을 엄마의 익숙한 뒷모습이 떠올랐다.

엄마도 내가 떠난 후 오랫동안 홀로 밥을 먹었을 것이다.

분명 나보다 훨씬 단출한 밥상을 차리고 텔레비전을 밥동무 삼아.

그래서인지 반찬을 받던 날, 한상 가득 푸짐하게 밥상을 차리고 나면 더욱 외로워졌다.

밥을 삼킬 때마다 눈물은 나오지 않건만 목울대는 엉엉 우는 것처럼 힘겹게 넘어가곤 했다.


택배 박스에 들어 있던 손편지 때문이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아줌마가 쓴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사랑하는 딸에게'로 시작해 '사랑한다 내 딸'로 끝맺었던 손편지는 박스 맨 안쪽 구석에 부끄러운 듯 검은 비닐에 싸인채로 들어 있었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했던가.

나에게 밥심은 엄마와 동일한 단어였다.

한없이 고단하고 공허한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나의 일부 또는 전부.


그럼에도 나는 반찬을 몇 달은 더 받아먹고서야 답장을 했다.

엄마가 보낸 반찬처럼 꾹꾹 눌러 담은 내 진심을 어렵게 써 보냈다.

평소에는 결코 하지 않았던 이 말과 함께.


"사랑해요 엄마, 그리고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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