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그릇에 옮겨 담는 것 만으로도

: 사진출처 pinterest

by 쓰는 미래


자존감.

이 단어의 존재를 여실히 깨닫게 된 것은 아이를 출산하고 삼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잠들지도 못하던 그 때,

바람빠진 풍선처럼 텅 빈 몸에서 또다른 무언가가 새어나갔음을 알았다.

나는 그토록 바라던 자연분만에 실패했고 모유수유도 뜻대로 되지 않아 일찌감치 포기한 상태였다.

출산할 당시 산부인과 마다 입시학원의 선전문구 처럼 붙어있던 '자연주의 출산'은 나에게 패배감만 안겨주었다.

자연주의 출산은 말 그대로 자연의 이치에 맡길 것이었다.

그것은 그런 몸으로 태어난 산모에게만 허락된 것임을 나는 한참이 지나고서야 알았다.


나는 산모 교실에서 엄청난 금기처럼 교육시켰던 '유도 분만(촉진제를 써서 인공적으로 분만을 유도하는 출산)'으로 아이를 낳았고 주요 국제 단체에서 2년 이상 할 것을 권장한다는 모유수유도 3개월만에 그만두어야 했다.

다시 생각해보아도 그건 생전 처음 느껴보는 죄책감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인데도, 그 누구도 질책하지 않건만 나는 거기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겨우 잠들 수 있는 밤에도 핸드폰을 붙잡고 '수면교육','수유텀 잡기' 따위를 검색하느라 불면증이 생겼고 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같이 안고 밤새도록 울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엄마가 되었건만 이상한 죄책감에 짓눌린 나는 신생아보다 작아져있었다.

간간히 엄마가 들러 봐주시기는 했지만 갑자기 잡힌 남편의 서울 출장으로 그 시간을 나는 홀로 견뎌야 했다.


그렇게 시지푸스의 형벌처럼 똑같이 흘러가던 어느 오후, 갑자기 매콤한 라면이 먹고 싶어졌다.

아이에게 분유를 타주는 죄책감을 넘어서는 식욕이었다.

냉장고에는 엄마가 채워주신 반찬통이 가득했지만 밥을 하고 상을 차릴 여력이 없었다.

양은 냄비를 꺼내 5분만에 라면을 뚝딱 끓여낸 나는 거실 구석에 상을 폈다.

아이는 유모차 안에 잠들어 있었고 바닥은 각종 장난감과 기저귀, 물티슈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 풍경에 완벽하게 녹아들 만큼 헝클어져 있었다.

하나로 묶은 머리는 땀과 기름으로 떡져 있었고 수면잠옷은 막 세탁해서 꺼내 입었건만 목과 무릎이 늘어나 너덜거렸다.

그리고 작은 상 위에 올려진 뜨거운 라면 냄비.

펄펄 끓던 라면 수증기가 얼굴에 확 끼쳐오는 순간 나는 눈물이 흘렀다.

한 없이 비루했고 비참했다.

이 풍경 속에서 벗어날 수도 도망칠 수도 없다는 현실이 더욱 그랬다.


내 자신을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까웠다.

나는 다시 주방으로 돌아가 싱크대 깊숙이 손을 넣어 파스타 그릇을 꺼냈다.

그리고 온 의지를 끌어내어 반찬통 하나 하나를 열고 접시에 담아 냈다.

젖병 건조대와 각종 육아용품들로 어지러운 식탁을 서둘러 치우고 라면을 파스타 그릇에 옮겨 담았다.

식탁 매트를 깔고 종지에 예쁘게 담은 반찬과 수저까지 올리자 제법 깔끔한 한 상이 차려졌다.

나는 조용히 식탁등을 켜고 의자를 당겨 라면 그릇을 마주하고 앉았다.

반상 앞에 퍼질러 앉는 것과는 천지 차이였다.


라면을 그릇에 옮겨담는 것만으로도

나의 자존감이 올라간 것 같았다.


한 없이 나약해지고 못생겨져버린 나 라는 존재를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으로 대접해주는 것.

그건 어떤 방식으로든 필요한 거였다.

그 날 이후 나는 대강 떼우는 한 끼도 꼭 그릇에 예쁘게 담아내는 습관이 생겼다.

비록 설거지 거리는 늘었지만

오늘도 한 없이 작아진 내 자신을 위해서라면 그쯤은 아무 일도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