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원을 준비하는 아침.
언제나처럼 늦잠으로 일어나 정신없이 아이 밥을 먹이고 닦이고 옷을 입혀 보내고 나면 텅 빈 연극 무대 같은 고요가 거실에 찾아든다. 정말 다를 게 없는 것이 스포트라이트 조명 같은 아침 해가 거실을 비추면 먼지들이 암막 커튼을 등진 듯 선명한 입자로 유영하고, 배우들의 입김으로 살짝 데워진 듯한 공기에는 어떤 냄새가 뭉근하게 배였다.
나는 그 다정하고 따뜻한 냄새를 더 선명하게 맡아보고 싶어 막 벗어두고 간 아이의 잠옷 소매를 꺼내 들어 맡아본다. 보풀이 올라온 면 직물에 뒤엉킨, 아이와 함께 밤새 새근거렸을 이 냄새는 작고 보드라운 털을 가진 초식동물에게서나 맡아질 것 같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다. 나도 여느 동물들처럼 냄새만으로 내 새끼를 구별해낼 수 있을까. 불가능하겠지. 감히 짐작해보건대 세탁기에 넣기 전 아이 옷 냄새를 한번 맡아보는 이 습관은 몇 만 년 전 나의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은 아닐까. 매 순간 떨어지지 않기 위한,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본능.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고 나는 아이의 냄새를 붙잡고 숨 같은 기도를 올려본다.
오늘 하루 우리 모두 무사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