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때론 무기력하다

by 쓰는 미래


엄마는 때론 무기력했다.

지금이야 핸드폰 셀카 기능이 있어 찍히는 입장에서도 얼굴을 확인할 수 있지만 8,90년대에만 해도 필름 카메라가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앨범에 박제된 서른 남짓한 엄마의 얼굴은 그래서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못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엄마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사진들 틈에서 햇살처럼 웃는 얼굴도 보았지만 그보다는 자주, 엄마의 무기력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슬픔이나 괴로움이 이미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무표정한 얼굴은 카메라 조리개 너머의 어딘가 텅 빈 시간 속을 응시하는 듯 보였다. 그 프레임 안에서 갖은 웃긴 포즈를 취하며 까불고 있는 나와 동생은 엄마와 더욱 대비되어 보였다.

아이는 엄마가 삶에 무기력해졌다는 것을 언제 알아챌 수 있을까. 내가 십 대를 거쳐갈 무렵 언뜻 그런 엄마의 얼굴을 몇번 마주한 적은 있지만 더욱 선명하게 바라보게 된 것은 아마도 내가 내 아이를 낳고 난 후였던 것 같다. 내 힘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삶의 긴 터널 중간에서 멈춰서 버린 느낌. 어두컴컴한 그 길 위에 나는 내 자신을 세워 놓았고 심지어 채찍질까지 하며 외면했다. 극심한 산후우울증을 겪고 그 시절 엄마의 얼굴을 나는 매일 아침 거울로 마주했다. 아이를 길러보아야 어른이 된다는 말은 어쩌면 이미 지나쳐버린 엄마의 표정들을 다시 들여다보고 비로소 이해하는 것이리라.

엄마에게는 그 정도도 최선이었다. 지금은 흔한 마트도, 극장도, 술집도 없던 작은 시골 마을의 단칸방에서 아이 둘을 키워내는 동안 엄마는 얼마나 자신을 가두고 지우고 무너뜨렸을까.

오래된 사진 속 엄마의 얼굴을 자꾸만 쓰다듬게 된다. 다 괜찮다고, 우리는 행복했다고, 지금은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고. 어쩌면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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