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너무 편리해졌어요.
편리하지 않은 것은 배척당하죠.
그래서 모르는 누군가의 친절을 버거워합니다. 불편해하죠.
반대로 돈을 주고 산 친절에는 유난히 까다롭습니다. 작은 불편도 더욱 견딜 수 없어하죠.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돼 버린 걸까요. 정말 이게 다 스마트폰 때문일까요?
그 작은 기기 하나 가 세상을 아주 최첨단으로 망쳐놓은 걸까요.
아이들의 동심도 유효기간이 보인 답니다.
빠른 아이들은 7살부터 느린 아이들도 10살에는
삶의 즐거움을 너무도 작은 세상에서 찾기 시작합니다.
동영상을 보면서 동영상 속의 사람처럼 되길 동경해요.
영상들 속 사람들의 삶은 너무나 재밌고 특별한데 왜 내 삶은 단조로운지 우울해해요.
부모들은 내 아이에게 누구보다 새로운 것을 경험시켜주려고 돈을 씁니다.
그런데 말이죠, 아이는 만족을 몰라요. 그렇게 커버린 우리처럼 분명 끊임없이 원하게 될 거예요.
남보다 나은 삶 말이죠.
'나'는 잊은 지는 오래예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잊었어요. 진심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 생각해본 적은 있었나 모르겠네요.
지금의 나는 남들 눈에 맞춰진 나예요.
사실 오늘 입고 있는 옷도 남들 눈에 어떻게 비칠지 고민해서 입었어요.
저만 그런가요, 삶이 너무 무료해요.
새로운 것을 경험하기 위해선 돈을 아끼지 않는 답니다.
돈이 많은 것도 아닌데 말이죠.
최근 캠핑에도 관심이 생겼는데, 인별에서 본 너무 예쁜 텐트에 마음이 뺏겼어요.
찾아보니 가격이 백오십만 원이 넘는 데 항상 품절이라 구할 수도 없다더군요.
텐트가 예쁠 필요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방수까지 다 되는 삼만 원짜리 텐트를 샀는데 사진을 찍을 때 텐트를 가려 찍는 나 자신을 발견했어요.
21세기 소비는 역시 '자기만족 & 시선 만족' 인가 봐요.
카톡 프사로 내 인생 연대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거라 생각하니 아주 지긋지긋하네요.
나의 잘난 부분까지 내 보일 수 있는 친구는 이제 몇 없어졌어요.
내 불행한 유년기와 폭언하는 남편, 뭐 이런 거 말고 지금 내 삶이 얼마나 만족스러운가 하는 거요.
모두 만나면 절망적인 얘기를 경쟁하듯이 해요.
그냥 잘 살고 행복한 얘기를 하면 자랑처럼 들리나 봐요.
나조차도 힘든 얘기를 털어놓을 때가 훨씬 마음이 편해요.
모두 위로받지 못해 안달 난 사람들 같아요.
사진 속에서는 정작 내가 더 잘 사네 경쟁하는 사람들이 말이죠.
정말 저만 이상한가요? 정말 나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