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을 개업할 때 가장 많이 받은 선물은 화분이었다.
스투키부터 콤팩트까지 그 이름도 생소한 화분들이 다양하게도 사무실 안을 초록으로 채웠는데, 종류가 다양한 만큼 어떻게 키워내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나의 우려대로 식물들은 하나 둘 처음의 생기를 잃어 가기 시작했다.
멋 모르고 매일 같이 물을 주던 스투키는 뿌리가 썩었는지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었고 귀엽던 몬스테라 화분도 큰 이파리를 바닥으로 흉측하게 늘어 뜨리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꽃집 사장님이 걱정스레 들여다보시더니 햇빛을 좀 쐬어 주라고 하셨다.
한눈에 보아도 황폐한 몰골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으셨던지 이런저런 팁까지 알려주고 가셨다.
잘못된 애정의 결말은 처참했다.
스투키의 아랫부분을 잡자 금세 뿌리가 잘려 나가고 안쪽까지 썩어 캐캐묵은 냄새가 났다. 물렁해진 줄기 부분을 칼로 모두 도려내면서 참회의 시간을 가졌다. 이 초록의 생명들이 조용히 고통받을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곤 고작 물을 주는 것뿐이었다. 조금만 더 애정을 갖고 들여다보았다면 금세 알 수 있었을 변화도 그냥 지나쳐버렸다.
무성해진 가지를 잘라내고 뿌리는 햇볕에 말려서 물꽂이를 하면 마법처럼 하얗고 부드러운 새 뿌리가 자라나는 것을, 그 생명의 의지를 보고서야 무심함도 때론 죄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너무 쉽게 끊어낸 관계들이 화초보다도 많았다.
새롭게 다듬어질 수 있고 다시 꽃 필 수 있었던 관계들을 나는 이렇게 망가질 때까지 지켜만 보았다.
사는 게 힘들어서, 가족을 돌봐야 해서, 시간이 없어서.
쉽게 변명할 수 있는 핑계들은 차고 넘쳤다.
그때의 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 정도의 관계였던 거라고 단정 짓고 그 사람의 그간의 단점들을 곱씹곤 했다. 뿌리가 썩어가는 화초를 대하듯 무심하게 천천히 관계가 시들어갈 때까지 내버려 두었다.
이제는 안다. 햇살 좋은 날에는 내가 먼저 그 아래에 서야 한다는 것을. 볕 좋은 카페에 잊고 지내던 친구를 불러내 시시껄렁한 일상 얘기만 해도 관계는 다시 살아난 다는 것을.
작은 이유에도 손절을 외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마음이 차가워진 게 아니라 너무 바쁘게만 사는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다들 여유가 없다. 상가 문 앞에 놓인 화분들도 물 주기를 잊은 사람들 손에 시들어가고 흙만 담겨 있는 모습이 황폐하기만 하다.
이번에 새로 들인 화분의 이름은 마오리 소포라다. 뉴질랜드의 마오리 족처럼 강인한 생명력을 가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 이름과는 무관하게 애처롭게 달려 있는 작고 귀여운 잎사귀를 보면서 한 친구가 떠올랐다. 오늘은 그 친구에게 화분 선물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