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_ pinterest
나는 여러 가지 '공'을 잘 받지 못한다.
이를 테면 탁구공, 야구공, 배드민턴 공. 나를 위해 누군가가 애써서 보내주는 '공'까지.
공을 들인 선물을 받거나 하면 '아니, 이걸 뭘로 되갚아야 하지'라는 고민부터 엄습한다.
그 공에 보답할 시간은 최소 일주일 이내로 잡아두고 비슷한 선물을 다시 전달해야만 마음이 놓이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한 '핑퐁형 인간'이다.
간혹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겨 누군가의 호의에 바로 되갚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때를 대비한 플랜 B, C, D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이웃에 사는 친구가 호주 여행을 다녀와 예쁜 코알라가 그려진 주방 타월을 선물해 주었다.
적당히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대에 선물하기 좋은 소소한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무려 열 시간을 넘게 하늘을 건너온 선물이 아니던가. 나는 마침 여행을 앞두고 있어 핑퐁 해줄 선물을 빨리 골라야 했다. 간단하게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이용하려 했지만 그 친구의 '공'이 생각났다. 여행 캐리어에서 꺼내 종이로 포장하고 우리 집까지 찾아와 우편함에 꽂아주었던 그 수고로움을.
나는 고민을 거듭하다 얼마 전 알게 된 감홍 사과가 떠올랐다.
경북 문경 휴게소에서 처음 맛본 사과 품종이었는데 유난히 빨갛고 진한 단 맛이 좋았다.
시나노 골드 사과도 사 먹는 친구이니, 감홍 사과 라면 또 새롭지 싶었다.
아직 버리지 않은 종이 박스에서 농장 연락처를 찾아 주문을 넣었다. 수확철이 조금 지나 저렴한 가격대로 살 수 있었다. 나는 사과 박스가 도착하자마자 쇼핑 캐리어에 실어 친구 집 앞에 내려놓았다. 그건 사과가 아니라 내가 되 받아 친 빨간 공들이 가득 찬 박스였다.
이로써 완벽한 핑-퐁이 이루어졌다. 마음 한 켠 같은 자리에서 통 통 튀던 탁구공 하나를 깔끔하게 서브한 기분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핑퐁을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걸 안다.
모두가 다 나 같지는 않으니까. 내가 보낸 공을 돌려받지 못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마음에 조금 스크래치를 입을지라도 잊으면 그만이었다.
그런 나의 굳건한 생각에 균열이 생겼다. 개인 사업을 하면서 완벽한 '을'의 생활을 경험한 것이다.
여러 번 호의를 베풀었음에도 아무런 공이 돌아오지 않을 때의 공허함을 나는 맛보았다.
절벽 끝에서 홀로 허공에다 공을 날리는 기분이랄까.
세상이 편리해지면서 사람들 사이에 작은 말도 오고 가지 않는다고 느꼈다. 며칠 동안 공을 들여 작성한 디자인 초안과 견적서를 보내고 문자를 하면 열에 아홉은 답장이 오지 않았다. 공 하나가 허공에서 조용히 빠그라졌다.
명절을 맞아 선물을 드렸는데 당연하다는 듯 받아갔다. 감사 인사는 없었다. 또 내 소중한 공 하나가 조용히 폭파되었다.
나는 큰걸 바란 게 아닌데, 그저 단순한 핑퐁을 원한 것뿐인데.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영화 인사이드아웃에 나오는 머릿속 세계가 그려졌다. 기억이 저장된 그 공간 안에는 새카맣게 찌그러진 공들이 가득 차 있지 않을까. 나는 위험해지고 있었다.
내가 넘기고 넘긴 공들이 무의식 저편에서 날카로운 형태로 쌓여 가는 게 느껴졌다.
사람이 싫어졌다.
정확히는 '갑' 행세를 하는 사람들이 싫어졌다.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이지만 일을 하니 더 자주 마주쳤다.
오랫동안 사업을 하던 친구가 말했다.
내려놓아야 한다고.
되돌려 받지 못한 공들을 마음속에서 완전히 비워버려야 한다고, 그리고 기대를 말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마음도 조금 슬프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는 것. 내 마음이 가볍자고 사람들에게 한없이 철저하게 냉담해지는 것.
따뜻하고 보드랍던 내 마음속의 공들이 정말 플라스틱이 되는 것 같았다.
무엇이 최선일지 자주 생각한다. 나는 이 일을 계속해야 하고 노선을 확실히 해야 한다.
핑퐁 되지 않는 마음을 처리하는 일.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고, 그냥 인정해야겠다.
나는 대범한 개인 사업자가 되긴 글렀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