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갈등에 가려진 것들에 대하여
40대로 접어든 젊은 꼰대
'영포티'라는 말은 원래부터 있었다. 한때는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40대를 가리키는 비교적 긍정적인 표현에 가까웠다. 그런데 지금 이 단어가 풍기는 뉘앙스는 분명히 달라졌다. 이제 영포티는 자기 관리의 상징이라기보다, 나이에 맞지 않게 젊은 척하면서도 권위는 놓지 못하는 40대를 비꼬는 말로 더 자주 쓰인다.
한국리서치 조사도 이 변화의 방향을 보여준다. 50대 이상은 여전히 영포티를 '젊은 감각을 유지하는 40대'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2030 세대는 '젊은 척하며 부적절하게 접근하는 40대'로 받아들이는 비중이 높았다. 같은 단어가 세대에 따라 전혀 다른 정서를 품게 된 것이다.
사람들이 실제로 불편해하는 것은 40대의 젊음 그 자체가 아니라, 젊음을 차용하는 방식과 권위를 행사하는 방식이 한 몸처럼 붙어 있을 때다. 겉으로는 수평적인 척하면서 핵심에서는 여전히 위계적이고, 친근한 척하면서 실제로는 상대의 경계를 쉽게 넘는 40대 상사. 그 순간 '영포티'라는 말은 유행어를 넘어 직장 안의 권력 경험을 압축한 낙인이 된다.
태도라는 말은 구조를 우회하는 언어다
여기서 한 번 더 물어야 한다. 왜 사람들은 구조를 말하지 않고 태도를 말할까. 왜 승진 구조와 기회 구조, 세대 위계와 노동시장 경로의 문제를 직접 말하기보다 눈앞의 사람을 향해 "젊은 척한다", "권위적이다"라고 말할까. 태도라는 말은 구조를 직접 말하지 못하는 사회의 우회 언어다.
특히 2030 남성층에서 감지되는 반감은 막연한 기분만은 아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5~34세 남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2000년 89.9%에서 2025년 82.3%로 크게 떨어졌다. 그 배경으로는 산업구조 변화, 경쟁 심화, 고령화와 AI 확산에 따른 진입 경로 위축이 함께 지목된다. 실제로 좁아진 입구 앞에서 커진 불안이라는 뜻이다.
숫자가 그것을 말해준다. 지난 1분기 평균 실업자는 102만9천 명으로 5년 만에 다시 100만 명대를 넘었고, 실업자 네 명 중 한 명은 청년이었다. 청년 취업자는 14분기 연속 줄었고, 청년 실업률도 다시 7%대로 올라섰다.
4050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다만 불안의 방향이 다를 뿐이다. 2030이 입구가 사라지는 공포를 느낀다면, 4050은 출구로 밀려나는 공포를 느낀다. 예전에는 명함과 직함이 오래 버텨줄 것 같았지만, 희망퇴직 압박은 이제 30대까지 내려와 있다. 입구에 선 사람도, 안에서 버티는 사람도 같은 칼날 앞에 서 있다. 불안의 방향은 달라도, 칼날의 출처는 같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칼날이 아니라 서로를 향해 감정을 쏟아낸다.
사람을 소모품 취급하는 블랙기업
지금 한국 경제의 경고등은 여러 곳에서 동시에 켜져 있다. 내수는 오래 힘을 잃고 있고, 가계부채는 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을 오르내린다. 주식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사상 최고치까지 올라왔고, 미국발 관세 충격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를 직접 흔들고 있다. 충격이 겹치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곳은 늘 입구와 주변부다. 그 장면 앞에서 일본의 '블랙기업'이 떠오른다.
버블 붕괴 이후 일본에서는 취업빙하기가 길어지면서 조직이 사람을 다루는 방식이 달라졌다. 그 변화에 붙은 이름이 '블랙기업'이었다. 단순히 힘든 회사가 아니었다. 퇴근 없는 야근, 말로 하는 폭력, 버티지 못하면 스스로 나가게 만드는 구조. 사람을 쓰다 버리는 체질의 조직에게 사회가 붙인 이름이었다. 불황이 길어질수록 조직은 더 포식적으로 변했다. 일본은 그것을 먼저 겪었고, 그 경험에 이름이 붙었다.
현재 한국이 과거 '버블 붕괴' 당시 일본과 같은 상황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경기가 나빠질수록 구인 기업은 줄고 구직자는 늘어난다. 채용이 무기가 되는 순간, 조직은 사람을 더 쉽게 소모품으로 다룬다. 블랙기업은 그 끝에 있는 이름이다.
AI가 채용의 입구를 줄인다
한국도 고용 충격을 겪어본 기억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실업자는 순식간에 178만 명을 넘었다. 거리로 나온 가장들의 풍경은 한 세대의 집단 기억이 됐다. 그때의 충격은 크고 빠르고 가시적이었다. 다만 이번은 그 방식이 다를 수 있다. 더 불길한 것은 그 압박이 인공지능과 함께 온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2년 7월부터 2025년 7월까지 청년 일자리 21만 1천 개가 줄었는데, 그 감소분의 98.6%가 AI 고노출 업종에서 발생했다. 반면 같은 기간 50대 일자리는 20만 9천 개 늘었다. AI 확산 초기에 주니어 고용은 줄고 시니어 고용은 느는 이른바 '연공편향 기술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뜻이다.
기업 현장에서도 그 조짐은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4대 은행의 신규 채용은 2023년 1880명에서 2025년 1170명으로 줄었고, 같은 해 희망퇴직자는 2027명에 달했다. 제조업과 게임업, 화이트칼라 전반에서 같은 흐름이 번지고, 그 명분은 하나같이 효율화와 AI다. 쇼피파이 CEO 토비 뤼트케가 부서장들에게 새 인력을 뽑아 달라고 하기 전에 "왜 AI가 그 일을 못 하는지"부터 입증하라고 주문한 것도 그 선언의 언어다. 채용의 기준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의 불황이 기업에게 최소한의 인력을 혹사시키는 방식으로 비용을 줄이게 했다면, 지금의 인공지능은 애초에 들어갈 일자리를 먼저 줄이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미 많은 일자리가 AI의 사정권으로 들어왔다. KDI는 현재 기준으로 국내 일자리의 38.8%에서 이미 70% 이상의 업무를 기술적으로 자동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2026년 1월에는 AI 확산 영향권으로 꼽히는 전문·과학기술서비스업 취업자가 1년 새 10만 명 가까이 줄었다.
회사가 전쟁터라고? 밖은 지옥이다
어릴 때 학생 둘이 싸우면 선생님은 둘 다 복도로 내보내곤 했다.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는지, 누가 더 억울한지는 뒤로 밀렸다. 일단 둘 다 교실 밖으로 나가 손들고 서 있어야 했다. 지금도 비슷하다. 2030과 4050은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지만, 싸우는 사이 교실 안 자리는 조용히 줄어들고 있다. 이기든 지든, 결국 둘 다 복도에 서게 된다.
'영포티'라는 말에 감정을 실어 보내는 동안, 실제로는 인공지능이 노동시장의 입구와 출구를 동시에 바꾸고 있다. 세대 갈등은 현실이다. 직장 안에서 축적된 불편과 불안의 결과이기도 하다. 다만 우리는 사람의 태도는 쉽게 비난하지만, 그 태도가 당연해진 직장 문화는 좀처럼 건드리지 않는다.
세대끼리 날을 세우며 감정을 소모하는 동안, AI는 오늘도 우리의 시야 밖에서 일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