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이 남긴 공간을 초고령사회의 거점으로 바꿔야 한다
지난 3월 24일,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꺼낸 말은 짧았다. 출퇴근 시간대 노인 무임승차를 한두 시간만 제한하는 방안을 연구해 보라는 주문이었다. 여기에 '놀러 가거나 마실 가는 분들'이라는 표현이 덧붙으면서 논쟁은 빠르게 번졌다. 표면만 보면 혼잡 완화의 언어였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 말에서 들은 것은 다른 질문이었다. 누가 지하철을 탈 자격이 있고, 누가 그렇지 않은가. 국가는 노인의 이동을 ‘필요한 이동’과 ‘덜 필요한 이동’으로 나눌 수 있는가. 논쟁은 교통정책 바깥으로 번져, 존엄과 자격의 문제로 옮겨갔다.
하지만 이 논쟁은 애초에 엉뚱한 자리에서 시작됐다. 무임승차 논쟁의 본질은 교통복지를 줄일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노년을 지탱할 지역 거점이 사라진 사회를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에 있다.
무임승차 제도를 둘러싼 재정 문제의 구조부터 다르다. 서울교통공사는 올해 전국 6개 도시철도 운영기관을 대표해 정부에 5761억 원 보전을 요청했다. 지난해 무임손실의 74.3%다. 이 비율은 임의로 꺼낸 숫자가 아니다. 코레일이 그간 정부에서 보전받아온 평균 수준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같은 전철망에서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코레일은 국비 지원을 받고 도시철도는 받지 못하는 구조가 수십 년째 이어져 왔다.
그래서 노인 무임승차 때문에 지하철이 적자라는 말은 절반만 사실이다. 더 정확히는, 국가가 정한 공익서비스 비용을 지방 공기업의 적자로 처리해 온 데 가깝다. 논점은 애초에 노인이 너무 많이 타느냐가 아니라, 그 비용을 왜 지방 공기업이 떠안아 왔는가에서 시작됐어야 했다.
그러나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진짜 문제는 노년의 이동과 생계, 배움과 돌봄을 지탱할 구조를 국가가 제대로 설계했느냐는 데 있다. 이 구조를 보지 않으면 논쟁은 자꾸 엉뚱한 곳으로 간다. 청년과 노인이 비용과 혜택을 두고 싸우고, 세대 간 형평성이 화두가 되고, ‘놀러 다니는 노인’이 문제의 원인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출근 시간이 끝난 뒤의 1호선은 그 단순한 프레임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풍경을 보여준다. 배낭을 멘 노인들이 노약자석을 채운다. 안양을 지나 수원을 지나 천안을 지나, 온양온천역에 닿아서야 그들은 굳은 허리를 편다. 왕복 요금 6000원이 공짜가 아니었다면 엄두를 내기 어려웠을 하루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시장통에서 값싼 점심 한 끼를 먹고, 다시 열차에 몸을 싣는다. 혼자 남은 집에서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간다고 누군가는 말한다. 어떤 노인에게 지하철은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라, 길게 늘어진 하루를 견디게 하는 시간표다.
같은 지하철에서 생계를 잇는 노인도 있다. 지하철 택배를 하는 어르신들은 하루 10시간 가까이 움직여 2만 5000원 안팎을 손에 쥔다. 무임승차가 사라지면 이 일도 사실상 사라진다. 아침 지하철의 노인 상당수가 새벽 청소와 경비 노동을 위한 생계형 이동이라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출근 시간의 열차 안에는 ‘놀러 가는 노인’과 ‘일하러 가는 노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무료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움직이는 몸과, 생계를 위해 움직이는 몸이 같은 칸 안에 함께 실려 있다. 그것은 갈수록 가팔라지는 고령화 속에서 노인의 삶을 떠받칠 구조를 끝내 만들지 못한 한국 사회의 결과일 뿐이다.
한국의 노년은 지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면서도 가장 오래 일하는 집단에 가깝다. 2025년 기준 65세 이상 인구는 이미 전체의 20.3%를 차지하고, 66세 이상 은퇴연령층의 상대적 빈곤율은 39.8%에 이른다.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65~69세 고용률도 2024년 기준 57%로 OECD 평균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가난한데 오래 일하는 구조다. 그러나 65세 이후 새로 고용된 노동자는 실업급여 적용에서 사실상 빠진다. 일하다 자리를 잃어도 최소한의 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상태에서 무임승차를 건드리면 그것은 단순한 교통복지 조정이 아니다. 이미 헐거운 안전망을 또 하나 걷어내는 일이다.
그러나 노년의 어려움은 이동에만 있지 않다. 노년에는 배울 기회도 턱없이 부족하다. 디지털 전환은 이미 빠르게 진행됐고, 이제 사회는 인공지능 전환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고령층은 그 속도를 따라갈 배움의 구조를 갖지 못했다. 스마트폰은 들고 있다. 다만 무엇에 쓰는지 모르고, 써도 익숙하지 않고, 배울 자신도 없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5년 디지털 정보격차·웹 접근성·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고령층의 AI 경험과 디지털 역량은 일반 국민보다 뚜렷하게 낮았다. 예전에는 스마트폰이 어려워도 사람을 만나 물을 수 있는 창구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의료와 금융, 행정과 돌봄이 AI를 거쳐 비대면으로 재편되기 시작하면, 이 격차는 단순히 불편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접근할 수 있는가 없는가, 삶을 무리 없이 이어갈 수 있는가의 문제로 커진다.
노년의 삶을 떠받칠 공간은 부족한데, 다른 한편에서는 아이들이 줄어 학교가 비어 간다. 저출산은 교실을 비우고, 고령화는 배움과 일상, 건강과 관계를 지탱할 거점을 요구한다. 한쪽에서는 공간이 남고, 다른 한쪽에서는 삶을 버틸 터가 없다. 유치원과 초등학교에서 시작된 폐교의 흐름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번지고 있다. 2025년 폐교 예정 학교는 49곳이었고, 향후 5년간 107곳이 추가로 폐교할 예정이라는 집계도 나와 있다. 비어 가는 학교와 갈 곳 없는 노년은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다. 같은 시대가 만들어낸 하나의 공백이다.
무임승차 논쟁, 노인 빈곤, 생계형 노동, 디지털 소외, 폐교 문제는 따로 보아서는 안 된다. 각각 다른 부처가 다루고, 저마다 다른 예산과 정책 이름 아래 흩어져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문제들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한국 사회는 국민의 노년을 위해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기초연금도 있고 경로무임승차도 있다. 항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년의 삶을 무리 없이 이어갈 구조는 끝내 만들지 못했다. 필요한 배움과 감당할 만한 일, 건강을 돌보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한 곳에 묶이지 못한 채 흩어져 있었고, 그 결과 노인들은 지하철에서 시간을 때우고, 지하철 택배로 생계를 잇고, 디지털 환경에서 뒤처지고, 거칠고 고된 단순노무로 쏠렸다. 처음부터 삶을 안정적으로 꾸려갈 기반이 없었던 것이다.
노인 무임승차를 둘러싼 논쟁은 손실과 편익을 함께 봐야 한다. 선행연구는 무임승차가 이동권 보장, 외부활동 증가, 건강 개선과 복지비 절감 같은 사회적 편익을 낳는다고 봤다. 문제는 그 편익이 지금 너무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다는 데 있다. 갈 곳이 없는 노인들은 하루의 몇 시간을 철로 위에 올려놓으며 겨우 외부활동에 닿는다. 시니어 워크&라이프 허브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거점이 생기면 지금 이동에만 소모되는 시간은 동네 안에서 배우고 일하고 쉬고 연결되는 시간으로 바뀔 수 있다.
전국에 경로당은 7만 곳에 가깝다. 그런데도 왜 노년의 터가 없다고 말해야 하는가. 숫자는 많지만, 법이 부여한 기능이 오늘의 삶 속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노인복지법」은 경로당을 친목과 취미, 공동작업장 운영, 정보교환과 여가활동의 공간으로 정의하고 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경로당 활성화를 위해 지역별·기능별 특성을 갖춘 표준 모델과 프로그램을 개발·보급하도록 한 취지도 이미 법 안에 들어 있다. 현장 프로그램 역시 건강, 교육, 사회참여, 공동작업장 같은 기능을 품고 있다. 문제는 이런 조각난 기능들이 초고령사회의 생활 거점으로 다시 묶이지 못했다는 데 있다.
K-뷰티, K-푸드, K-방산까지 말하는 나라다. 이제는 그 본래의 뜻을 오늘의 조건에 맞게 다시 세운 ‘K-경로당’이 필요하다. 이 글이 말하는 '시니어 워크&라이프 허브'는 바로 그 공간의 한 모델이다.
이쯤 되면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떤 복지를 더할 것인가가 아니라, 노년의 삶을 지탱할 구조를 어디에 다시 세울 것인가. 그 거점이 폐교일 수 있다.
폐교를 노년의 생활 거점으로 바꾸자는 말은 복지관 하나 더 짓자는 얘기가 아니다. 지금 한국의 노년 문제는 배움과 일, 건강을 돌보고 사람을 만나는 일이 서로 다른 장소로 흩어져 있다는 데 있다. 무임승차에 기대어 멀리 나가야 하는 이동을 줄이고, 끊어진 학습과 불안정한 일, 무너진 관계와 돌봄을 한 곳에서 다시 이어낼 수 있어야 한다. 폐교는 그 드문 조건을 갖춘 공간이다. 지역 생활권 안에 자리하고 있고, 접근성이 좋으며, 교실과 급식실, 운동장과 체육관처럼 서로 다른 기능을 품을 수 있는 구조를 이미 갖고 있다.
한쪽 교실에서는 어르신들이 디지털과 AI를 다시 배울 수 있다. 다른 공간에서는 지역 농가나 마트, 마을기업과 연결되는 가벼운 중간 작업장이 돌아갈 수 있다. 급식실은 혼자 끼니를 때우지 않아도 되는 공동 식당이 되고, 체육관과 부속 공간은 몸을 돌보고 쉬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집 밖으로 나와 하루를 보내고, 사람을 만나고, 몸을 돌보고, 다시 배울 수 있는 시간이 지역 안에 생겨야 한다. 온양온천행 열차에 몸을 싣지 않아도, 동네 안에서 몸과 일상을 다시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저출산이 남긴 공간을 고령화가 요구하는 거점으로 바꾸는 일. 이것은 남는 건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비어 가는 교실과 갈 곳 없는 노년을 같은 시대의 문제로 볼 수 있느냐의 문제다. 노인을 위한 복지를 하나 더 얹자는 말이 아니다. 비어 가는 교실 위에, 노년이 살아갈 터를 다시 세우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