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붉은빛 속 파도치는 무늬결, 부빙가

[목재 공장 다니는 우드코디의 일상]

회사에 첫 출근하는 날, 사무실에 설치된 원목 계단을 보고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결이 파도가 치는 나무도 있구나 생각하며 '부빙가'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되었다. 사실 서울에 갓 올라온 20살 촌뜨기에게 갖가지 수입목들의 이름을 외우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었다. 틈틈이 수종 이름을 빼곡히 적어놓은 쪽지를 틈틈이 외우고, 주말마다 목재 샘플실을 청소하며 나무를 만져보고 눈에 익혔다.

부빙가(Bubinga) 원목을 검척(檢尺)하는 기술자

목재 신출내기 시절이었던 1990년 전후는 시내 곳곳에 고급빌라가 많이 지어지던 시기였다. 건설사는 자재업체에게 더 고급스러운 자재를 가져오라고 늘 성화를 부렸다. 아마 1988년 올림픽을 치른 이후 국민들의 눈높이가 한층 높아진 탓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당시 우리 회사도 새로운 수종의 원목을 공장으로 들여와 켜서 말리고, 깎고 다듬으며 테스트하느라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멈출 날이 없었다.

부빙가(Bubinga) 숙성 건조재로 만든 원목 다이닝 테이블

부빙가는 대단히 무겁고 단단한 나무다. 부빙가 원목을 켜는 날이면 제재소에 긴장감이 흐르고, 톱으로 켜낸 부빙가 덩어리가 작업대에 쿵 떨어지는 소리는 공장 바닥을 울릴 정도다. 과거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가졌던 나라에서 고급스러운 색감과 화려한 나뭇결을 가진 부빙가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한다. 지금도 유럽이나 북미 선진국에서 가장 많이 선호하는 고급 수종이다.

부빙가(Bubinga) 수종 이미지

90년대만 해도 국내에서 수입목을 취급하는 목재회사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건설 현장에서도 수입목 이름이 워낙 생소해서 오히려 사용을 꺼리는 분위기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업을 다니던 선배들은 거래처에 부빙가를 '참죽나무 대용재'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참죽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 가구재나 조각재로 많이 쓰여 익숙하고, 그 색상과 결도 부빙가와 가장 유사한 국산재였기 때문이다.

부빙가(Bubinga) 원목을 제재하는 제재부 기술자들

부빙가는 주로 문짝과 왁구(문틀), 계단, 손스침(난간)을 만드는데 많이 사용된다. 요즘은 테이블 상판으로도 많이 쓰인다. 용도가 그러하니 제재할 때 수축이나 비틀림이 적은 마사(직결) 위주로 판재를 켜낸다. 안 그래도 무척 단단해서 톱도 천천히 밀어 넣어야 하는데, 마사로 따려면 원목을 뒤집고 엎어가며 켜야 해서 부다시(제재 책임자)의 역량이 드러나는 수종이다.

구상해온 목제품 제작에 알맞은 부빙가(Bubinga) 숙성 건조재를 고르는 모습

2019년 초 아프리카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과 가까운 오웬도 항구에서 '케바징고'라는 종류의 목재가 실린 컨테이너 300여 개가 당국에 압류됐다가 감쪽같이 사라진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부통령과 산림부 장관이 일명 '케바징고 게이트'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져 해임되었다. 케바징고는 서아프리카에서 부빙가를 일컫는 별칭이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고급 수종들이 자생하는 지역 중 많은 곳은 아직 저개발 국가에 속해있고, 원목 상태로 수출하는 경우가 많다. 부가가치가 무척 낮은 셈이다. 산림녹화에 성공한 한국의 임업 기술과 목재 생산 노하우가 전파되어 원산지 국가들의 경제성장에 기여하고 우호가 증진되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