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열네 번째 생일을 맞이한 아이에게 쓰는 편지

[제재소 다니는 직장인의 일상]

by 우드코디BJ

요 며칠 비가 오락가락 이어졌는데 오늘은 창밖으로 파란 하늘이 보이네. 지금쯤이면 친구들을 만나 신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겠구나. 한창 중간고사를 준비하던 네가 힘들다고 푸념하며 저녁식사 자리에 앉았을 때 순간 미안한 마음이었다. MBTI(성격검사) 따위로 정의될 수 없는 오만 가지 기질과 소질을 타고났을 너희인데, 아직도 시험 점수로 석차를 가르는 교육 제도 안에 붙들어 놓고 있는 현실이 너무 딱해서 말이다.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사람으로 치면 40살이 다 된 목재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란다. 오래된 만큼 많은 경험과 기술이 축적된 회사지만, 나이가 있다 보니 변화하는 시대의 물결을 따라가기 힘들어하지. 아빠는 동료들과 함께 이 오래된 회사를 지금 이 시대에 맞게 변신시키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뭐를 크게 잘못해서 바꾸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목재에 대해 알고 또 좋아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랄까. 오래된 지금의 교육 제도 또한 교육계에 몸담은 누군가가 학생들이 좋아하는 방향으로 고치려 노력하고 있을 거라 아빠는 생각한다.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어느 때나 어려운 시대는 있었단다. 태어난 시대를 그저 사는 사람도 있겠지만 바꾸겠단 의지를 가진 이들은 결국 새 시대를 열었고, 너도 학교에서 역사교육을 통해 그 사실을 배우고 있을 테지. 목재업계에 아빠도, 교육계에 이름 모를 누군가도 자기 자리에서 변화를 꿈꾸며 노력 중이라 여겨주면 좋겠구나. 언젠가 넓은 사회로 나아갈 너 역시 어느 분야에서 활동하더라도 주어진 조건에 불평을 늘어놓기 보다는, 더 나은 내일을 만들려 노력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늘 기도하마. 2024년 5월 5일, 14번째 맞이한 너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From. 노력 중인 아빠가




나이가 들수록 생일이 무덤덤해집니다. 그런데 아이의 생일이 돌아오면 그새 삼백예순다섯 개의 날이 또 지났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이는 어느새 아빠 키를 훌쩍 넘는 청소년이 되었는데, '아빠의 나이 듦'은 좋은 어른으로 향하고 있을까요?


사람들은 믿고 신뢰하는 사람에게 속내를 터놓기도 하고 의견을 구하기도 하지요. 언젠가 장성한 아이가 나를 찾아 고민을 털어놓거나 앞날을 의논한다면 그때는 알 수 있겠죠. 아이에게 내가 믿고 따를 만한 좋은 어른인지 아닌지 말입니다.


어린이날이 생일인 아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감동에 겨워 방에서 뛰쳐나온 아이가 아빠를 부둥켜안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그렇지만 스무 살이 되고, 사십을 지나 육십이 되더라도 아이는 이 편지를 볼 수 있을 겁니다. 여기에도 남겨 놓고, 제 블로그에도 남겨놨으니까요. 남겨둔 아빠의 마음이 아이가 사는 동안 간간이 위안과 때때로 응원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은은한 붉은빛 속 파도치는 무늬결, 부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