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일에 지쳐서 잡지사를 그만둔 어느 기자는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을 써서 작가가 되었다. 작가는 잡지사 기자로 일하며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로 리뷰 쓰기를 꼽았다. 그녀는 매일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하나의 관점을 잡아 글 쓰는 훈련을 했다. 하지만 메모가 습관이 되지 않아 그냥 넋 놓고 프로그램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막상 리뷰를 쓰려고 하면 재미있다 혹은 재미없다 정도의 애매한 인상만 남아 글쓰기가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사내교육 시간에 영상물을 시청하는 공장 식구들
이런 이유로 작가는 리뷰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면 반드시 메모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장면에서 떠오른 감정이나 느낌을 메모해 두고, 리뷰를 쓰기 전 왜 그 부분에서 그런 인상을 받았는지 되새겨보라고 권유한다. 그저 '재미있었다' 또는 '재미없었다'라는 글은 개인의 감상일 뿐 다른 사람이 굳이 읽거나 봐야 할 리뷰가 될 수 없다고 작가는 다시 한번 강조한다.
파푸아뉴기니산 크윌라 수종 통원목을 제재하여 만든 인포데스크
이러한 작가의 관점은 회사 생활에서 결재록이나 회의록 같은 문서를 작성할 때도 유효한 방법이다. 조직의 공통된 목표를 수립하고, 조정하고, 추진하고, 점검하기 위해 직장인에게 회의는 일상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회의의 리뷰라고 할 수 있는 회의록 작성은 대개 회사 막내급의 몫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저연차 직원들에게 업무를 가르치려는 목적이라면, 업무 경험과 조직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참석자들이 '팩트'와 '관점'을 균형 있게 담아 작성한 양질의 회의록을 보여주는 것이 나을 것이다.
데일리포레스트 디자인팀 소속 젊은 스태프들의 출근 풍경
이는 많은 전문가들이 기업의 성공 비결로 꼽는 '암묵지(暗默知)의 공유'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암묵지는 개인이 오랜 경험을 통해 체득한 노하우를 말한다. 이를 글이나 영상물의 형태로 표현된 '명시지(明示知)'로 만들어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암묵지 공유'를 가능케 하는 열쇠다. 결국 암묵지는 먼저 실무를 경험하고 노하우를 체득한 선배들만이 생산할 수 있는 콘텐츠라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일례로 2007년 일본 최대 철강업체인 신일본제철은 숙련공들에게 휴대용 개인정보기기(PDA)를 지급하고 그들이 현장에서 쓰는 헬멧에는 소형 마이크 등 음성인식장치를 부착했다.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경험과 지식, 즉 암묵지를 명시지로 변환하여 공유함으로써, 현장의 개인적 경험과 지식을 조직의 경험과 지식으로 쌓으려 했던 것이다.
생산기술본부 스태프들의 현장 미팅
한국에서도 이미 삼성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암묵지 공유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구성원들은 공유된 암묵지를 학습하며 꾸준히 업무 역량이 상향 평준화되며 동시에 부서별 업무 이해도가 높아지는 효과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중소기업에서는 암묵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낮은 편이다. 때문에 관록 있는 선배들의 퇴직은 조직의 업무 역량에 심각한 훼손을 가져오고, 암묵지는 소실되어 차세대 실무자 양성에 큰 차질을 빚게 된다. 이러한 문제가 반복되면 중소기업은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도 있다.
유림목재 (구)고양공장 원목장
최근 한 구인구직 업체가 40세 이상 중장년 근로자를 대상으로 '주된 직장 퇴직 경험' 관련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전체의 79.7%가 "주된 직장에서 퇴직한 경험이 있다"라고 응답했다. 여기서 주된 직장이란 개인 경력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곳 또는 가장 오래 일했던 곳을 의미한다. 이들 중 재취업에 성공한 비중은 절반에 그쳤다.
미래는 온라인 콘텐츠 시대라고 한다. 하지만 이미 온라인에는 사막의 모래알보다 많은 콘텐츠가 있기에 차별화를 위한 크리에이터들의 고민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맛있는 식당'이나 '여행지 추천'도 누군가에게는 분명 필요한 콘텐츠다. 그러나 직장 선배들의 '노하우' 만큼 유일무이하고, 후배에게 도움 되는 '실용 콘텐츠' 자리를 넘보긴 어려워 보인다.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크리에이터로 인정 받으면 다시 취업 전선에 뛰어들 필요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