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소 다니는 직장인의 일상]
1970년대 들어 시골이나 다름없던 지금의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에 대규모 신도시 개발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당시 상공부 등 정부부처와 법원 등 관공서들이 강남 지역으로 옮겨왔고, 논현동 공무원 아파트를 시작으로 한강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속속 들어섰다.
얼룩말 상표로 유명했던 뉴코아는 당시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 건설사 사업부로 출발했으나 강남 지역을 거점으로 쇼핑센터와 백화점을 잇달아 개장하며 크게 성장했다. 1996년 호텔사업에 본격 진출하기로 한 뉴코아백화점은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근처에 특급호텔을 짓겠다고 선언하고, 계열사인 시대종합건설 산하에 호텔사업본부를 발족하며 구체적인 작업에 착수한다.
뉴코아 고위 관계자의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호텔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은 사업 다각화의 일환"이라면서 "특히 국민소득 향상에 따른 관광 및 레포츠 수요의 증가로 호텔사업의 전망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그 무렵은 현대나 미도파 등 다른 백화점들도 대규모 백화점 위주의 영업정책에서 벗어나 외식업이나 호텔 여행업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던 시기였다.
2000년까지 전국에 총 15개의 호텔을 짓겠다는 포부를 밝힌 뉴코아백화점의 첫 번째 호텔인 만큼 상당히 공을 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사무실은 쉴 새 없이 밀려드는 도면을 일일이 체크하고 물량을 산출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회사는 밤 늦도록 불이 환했고, 공장은 밤새 샘플용 목가공품을 만드느라 기계소리가 시끄러웠다. 영업부 직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목재가공샘플을 들고 뉴코아의 설계 부서와 자재 부서를 들락거렸다.
호텔 객실부터 로비 등의 공간에 정말 다양한 종류의 특수목(고급 수종)들이 사용되었다. 마루와 바닥부터 계단재에 이르기까지 용도도 다양했다. 당시 목자재 재적 산출이나 견적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실로 어마어마한 양의 목재가 투입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호텔 내부에는 성북동 고급주택이나 구기동 고급빌라에서나 썼던 '아프젤리아(afzelia)'나 '부빙가(bubinga)' 같은 고급특수목재가 객실 마루에 깔리고 도어를 제작하는데 쓰였다. 호텔 한식당 미닫이 문짝은 '웨스턴 헴록(western hemlock)' 무절(옹이가 없는 제재목)로 만들고, 문틀은 '화이트 오크(white oak)'로 제작했을 정도로 발주처에서 공을 쏟고 있다는 느낌이 역력했다. 이는 가격 때문에라도 드문 조합인 편에 속했다.
보통 살문을 제작할 때는 헴록(Hemlock)이나 더글러스 퍼(Douglas fir) 등 부드러운 '소프트우드' 계열의 목재를 많이 사용한다. 왜냐하면 건조된 판재를 가느다란 살대로 다시 켜낼 때 휘기 때문이다. 고속으로 회전하며 목재의 속살을 가르는 톱날에서 발생하는 열이 그 원인이 되기도 하고, 한 몸에서 여러 개의 살대로 켜내어지면서 나뭇결의 방향을 따라 휘거나 심할 경우 꼬이기도 한다.
그래서 단단한 하드우드 계통의 화이트 오크(White oak)는 살대로 켜는 과정에서 휘거나 부러지는 일도 많고, 휘어진 살대를 일일이 곧게 펴 고정하면서 살문을 제작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부드러운 목재가 쉽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쉴 새 없이 대패질하던 건구(建具) 반장님이 툭 부러진 살대를 움켜고 제재부로 가는 때면 어김없이 큰 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어디서 이런 나무를 쓰라고 갔다 줬냐고 말이다. 매일같이 기계 소리와 고함소리가 섞여 시끄러웠던 그 시절이 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