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화약고'가 된 우리 숲, 이대로 괜찮을까

by 우드코디BJ

끓어오르는 지구, 이제는 외면할 수 없는 현실


2024년 여름, 서울의 폭염일수는 27일로 역대 3위를 기록했고, 열대야는 39일이나 지속됐다. 강릉은 폭염일수 31일로 역대 1위를 경신했다. 전국에서 4,000명이 넘는 온열 질환자가 발생하면서, "올해가 남은 인생에서 가장 시원한 해"라는 냉소적인 말이 더 이상 농담으로 들리지 않게 되었다. "역대 가장 더운 해"라는 기록은 매년 당연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이미 지구 평균 기온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C에 육박했다고 경고했으며, 유엔 사무총장은 "지구 온난화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지구가 끓어오르는 시대가 도래했다"라고 선언했다. 과학계는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기후재앙을 마주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OECD 꼴찌", 구호에 그친 약속들


기후위기는 더 이상 예견된 미래가 아닌,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 되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제 시간당 100mm 폭우와 40도 폭염은 더 이상 기상이변이 아니라 우리의 뉴노멀이 되었다"며 "과거 매뉴얼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범정부 차원의 총력 대응을 주문한 것이다. 그러나 김성환 환경부 장관은 "솔직히 말하면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며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여전히 OECD 꼴찌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목표는 저만치 높은데, 현실의 사다리는 너무 짧다는 것이다.


'응급 처치'로서의 지구공학, 그 가능성과 한계


탄소 감축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위기감 속에서, 일부 과학자들은 지구의 기후 시스템을 의도적으로 조작하는 '지구공학' 기술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1991년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 폭발에서 영감을 얻어 성층권에 입자를 살포해 태양광을 차단하는 태양 지구공학(SRM, Solar Radiation Management)이 대표적인 예다.



다양한 지구공학의 방법들 (출처 IPCC 5차보고서).jpg 다양한 지구공학의 방법들 | 출처 : IPCC 5차보고서



하지만 이 기술은 여전히 많은 불확실성을 안고 있다. 특정 지역의 강수 패턴을 급변시킬 수 있으며, 기술의 주도권을 둘러싼 국가 간 갈등을 야기할 우려도 제기된다. 또한 한번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려워 '종료 문제(termination problem, 기술 중단 시 급격한 온도 상승)'라는 근본적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특히 그린피스나 WWF 같은 환경단체들은 SRM이 해양 산성화 가속화, 생물 다양성 손실 등 생태계에 미칠 장기적 부작용을 지적하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과학계에서는 지구공학을 만능 해결책이 아닌, 자연 기반 해법이 효과를 발휘할 시간을 확보하는 보완적 수단으로만 신중히 연구해야 한다는 입장이 우세하다.



붕괴된 1.5℃ 마지노선


국제사회가 합의한 산업화 이전 대비 1.5℃ 임계점은 인류 생존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최근 유럽연합(EU)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는 지난 12개월(2023.6~2024.5)의 연평균 기온이 이미 1.5°C를 넘어섰다고 발표하며, 이 마지노선이 사실상 붕괴 직전에 이르렀음을 경고했다. 지구공학 기술의 발전만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미 검증된 자연 기반 해법부터 적극 활용해야 할 절박한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Gemini_Generated_Image_jdukagjdukagjduk.png 출처 : Gemini 생성 이미지


'산림녹화' 성공 신화, '산불 화약고'로 돌아오다


핀란드, 독일, 스웨덴 등 유럽 선진국들은 이미 기후 위기에 대비한 산림 순환 이용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산림을 단순히 보호하는 것을 넘어 '베고-심고-가꾸고-쓰는' 순환경영 모델을 확립했다. 빽빽한 숲을 주기적으로 솎아내는 '기후 대응 산림 관리'(Climate Smart Forestry,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탄소 흡수량을 최적화하는 과학적 산림 관리법)를 통해 건강한 산림을 유지하고, 벌채된 목재는 건축자재나 장기 제품에 활용해 지속적인 탄소 저장고로 활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순환적 산림 관리는 탄소중립에 직접 기여할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일자리와 지방 경제 창출의 핵심 기반이 되고 있다.


반면 대한민국의 산림정책은 과거 '산림녹화 성공'의 성과에 안주한 채 정체되어 있었다. 빽빽하고 노화된 나무들이 적절한 관리 없이 방치된 결과, 한 번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산불 화약고가 되어 버린 산림이 전국 곳곳에 형성되었다. 다행히 최근 산림청은 2024-2025 정책 변화를 통해 산불 예측 시스템 고도화, 취약지역 사전점검 강화, 임업인 소득 보조 확대 등을 추진하며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발생한 대형 산불들을 살펴보면 그 심각성이 드러난다. 2022년 울진-삼척 산불은 20,923ha를, 2019년 강릉-고성 산불은 2,835ha를 태웠다. 2000년 동해안 산불의 경우 23,794ha라는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특히 2025년 3월 청도 산불 등 동시다발 산불은 104,788ha 소실로 역대 최대 피해를 기록했다. 이처럼 산불은 단순한 봄철 재난을 넘어 기후 변화와 인위적 원인이 복합된 대형 재난으로 진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산불 전문 진화대의 낮은 처우 문제로 인력 이탈이 계속되고 있어, 우리는 여전히 '끄는 것'에만 매달릴 뿐 '막는 것'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미국 산림청(USFS)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적절한 '숲 가꾸기'는 산불 피해를 최대 70%까지 줄이는 가장 과학적인 예방법이다. 캐나다 천연자원부 역시 계획적인 벌채와 재조림이 산불 위험을 60% 이상 감소시킨다는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이제 우리 정부도 산림을 단순한 '보존'의 대상을 넘어, '지속가능하게 이용하고 순환시키는' 경제적·환경적·안전적 자원으로 인식하는 정책 전환을 고려해야 할 때다.


나무를 베어 숲을 살리는 독일의 200년 지혜


정책 전환의 구체적 방향을 찾고 있다면, 독일의 200년 산림관리 경험에서 귀중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독일은 '나무를 베어 숲을 살린다'는 역설적 접근을 통해 목재 활용이 오히려 환경보호의 핵심임을 실증해 왔다.


독일 검은 숲(Schwarzwald) 지역에서는 성숙한 나무만 선택적으로 벌채하고, 그 자리에 즉시 어린 나무를 심는 '지속가능한 숲 가꾸기'를 실시한다. 이는 수천 년 동안 자연이 증명해 온 숲의 갱신 원리를 활용한 것으로, 성숙한 나무를 탄소 저장고인 목재로 활용하고 그 자리에 더 많은 탄소를 흡수할 어린 나무를 심는 '자연의 선순환'을 정책적으로 구현한 사례다.


0d6dfc3d-a348-4aec-8f77-76de5075077b.jpg 출처 : Gemini 생성 이미지


이러한 관리를 통해 산불에 강하고 건강한 숲을 유지하면서도, 국토의 32%를 울창한 숲으로 보전하고 목재 자급률 100%를 달성할 수 있었다. 최근 EU 산림 전용 방지 규정(2024년 12월 시행)으로 불법 목재 수입 규제가 강화되면서, 독일의 지속가능 정책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선진국들의 성공 비결은 이러한 선순환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 데 있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벌채 후 3년 내 재조림을 법적 의무로 규정했고, 강력한 목재 산업 육성을 통해 임업인들의 안정적 소득을 보장했다. 미국은 산불 예방 차원에서 숲 가꾸기 비용의 최대 75%를 정부가 지원하며, 탄소 배출권 시장을 통해 숲 가꾸기가 추가 소득으로 연결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는 조림 보조금조차 외면받고 국산 목재 자급률이 15%에 머무는 우리 현실과 대조된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규제와 인센티브를 정교하게 조합하여, 숲을 방치하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가꾸는 것이 산주에게 훨씬 유리한 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한 시점


결국 지속가능한 해법은 두 가지 축의 균형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는 탄소를 효율적으로 흡수하는 건강한 숲을 조성하고 일상에서 목재를 적극 활용하는 자연 기반 해법이다. 둘째는 나무가 자라는 데 걸리는 시간을 벌어주는 지구공학 기술의 신중하고 보완적인 활용이다.


다만 지구공학 기술의 경우 아직 연구 단계에 있고 예상치 못한 부작용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당분간은 자연 기반 해법에 우선순위를 두되 기술 발전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접근이 바람직해 보인다.


ChatGPT Image 2025년 8월 16일 오전 11_56_05.png 출처 : 챗GPT 생성 이미지


패러다임 전환이 답이다


숲은 오랜 시간 축적된 지혜를, 기술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한다. 중요한 것은 이 둘 사이의 적절한 균형을 찾는 일이다. 특히 우리에게는 산림 정책에 대한 근본적 관점 변화가 필요하다. 산림은 보호만 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지속가능하게 이용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기도 하다는 인식의 전환 말이다.


이러한 전환은 정부, 생산자, 그리고 우리 개인이라는 세 주체가 각자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


첫째, 정부는 '지속가능한 순환'의 판을 깔아야 한다. 산림 순환 경영을 위한 법제도를 정비하고, 임업진흥원이 주관하는 <목재공간대전>과 같은 대국민 홍보를 통해 산림은 자연이자 자원이라는 인식을 제고해야 한다. 목재 활용에 대한 레퍼런스가 많이 부재한 현실에서 목재 이용률을 높이려면, 잠재소비자들에게 다양한 목재 실용 사례를 소개하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둘째, 목제품 생산자는 소비자의 높은 안목에 '혁신'으로 답해야 한다. 단순히 원목이라는 소재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디자인 역량을 키우고, 소비자가 기꺼이 지갑을 열 수 있는 수준의 제품을 연구개발해야 한다. 한 단계 진화한 제조업 마인드로 무장하고, 온라인 SNS 홍보도 병행하며 소비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우리 개인의 '일상 속 선택'이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이다. 목재로 만든 가구나 소품에 관심을 갖고, 일상에서 목제품 사용을 고려하고, 목재로 공간을 마감하는 다양한 시도는, 국내 목재 수요를 창출하고 생산자에게는 성장의 동력을, 정부에게는 정책 추진의 명분을 제공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될 것이다.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의 성공 사례를 보면, 정부의 정책적 의지와 국민의 일상적 실천이 선순환을 이루며 지속가능한 산림 경영을 뿌리내렸다. 우리도 이 세 축이 함께 작동한다면 충분히 산림 순환 경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주요 참고: 세계기상기구(WMO) 2023년 보고서, 산림청 산불통계, 미국 산림청(USFS) 연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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