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나 단둘이 40페이지 보고서를 만든 여름날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일상이 바뀐다.

by 우드코디BJ

1926년 조선일보에 실린 한 기사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인텔리 신여성'으로 무용가 최승희가 소개되었다. 당시 '인텔리'는 시대를 앞서가는 지식인, 엘리트를 뜻하는 최고의 찬사였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지능'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던 셈이다.


그로부터 100년이 흐른 2024년, 인공지능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메타는 2024년 말 대규모 AI 연구 투자를 발표했고, 업계에서는 슈퍼인텔리전스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인간의 모든 인지능력을 뛰어넘는 AI를 향한 경주가 본격화된 것이다. 100년 전 인간 '인텔리'가 최고 엘리트였던 시대에서, 이제 인공 '슈퍼인텔리전스'가 인간을 넘어서려 한다. 그렇다면 역사는 이런 급격한 변화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까?



마치 원래부터 그랬던 것 처럼


이에 대한 해답은 100년 전 뉴욕 5번가에서 찾을 수 있다. 1900년과 1913년, 단 13년 사이에 일어난 극적인 변화를 살펴보자. 1900년 부활절 아침, 뉴욕 5번가는 마차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1913년 같은 날, 같은 거리는 완전히 달라졌다. 자동차들로 가득 찼고, 마차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1900년과 1913년 뉴욕 5번가 사진 비교. 토니 세바 제공.jpg 1900년과 1913년 뉴욕 5번가 사진 비교|미국 의회 도서관(Library of Congress) 소장


마차 시대가 자동차 시대로 완전히 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3년이었다. 토마스 에디슨은 이미 1895년 한 잡지 인터뷰에서 '자동차가 미래의 물결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는 예상보다 빨랐고, 도로를 가득 매운 자동차는 곧 사람들에게 익숙한 일상 풍경이 됐다.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을 줄여서 'DX'라고 부르는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이동 수단의 전환은 'MX(Mobility Transformation, 이동 혁신)'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후 전환의 속도가 계속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마차에서 자동차로 바뀌는 'MX'가 13년이 걸렸다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뀌는 'DX'는 대략 10년이 걸렸다. 그런데 최근의 '인공지능 전환(AX, AI Transformation)'은 불과 2~3년 만에 일어나고 있다. 변화의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지고 있다.



변화에 저항한 사람, 적응한 사람


그렇다면 수십 년간 말과 함께 살아온 마부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 많은 마부들이 자동차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말의 따뜻함과 교감, 수십 년간 쌓인 노하우를 포기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두려움은 제도로까지 이어졌다. 1865년 영국에서는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이라는 법을 만들어 자동차 앞에서 빨간 깃발을 들고 걸어가는 사람을 의무화했다. 자동차가 말을 놀라게 하지 않도록 시속 6km로 속도를 제한한 것이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두려움이 법으로까지 굳어진 셈이었다.


그러나 변화는 멈추지 않았다. 1896년 이 법이 폐지되자 자동차는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마부들 중 일부는 새로운 선택을 해야 했다.


놀랍게도 초기 자동차 운전기사들 상당수는 전직 마부들이었다. 마차를 몰던 경험이 자동차 운전에도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YMCA 같은 기관에서는 1910년대부터 마부들을 위한 운전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도 했다.


자동차 산업의 발달은 단순히 기존 직업을 없앤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마부들은 운전기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동차 정비공, 교통 관리원, 심지어 자동차 보험 설계사까지 다양한 분야로 진출했다. 변화를 받아들인 마부들은 새로운 시대의 개척자가 되었지만, 끝까지 저항한 이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AI가 당신의 일을 대체할 가능성


AI 전환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신호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한국은행은 2023년 'AI와 노동시장 변화'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취업자 중 약 341만 명, 전체 취업자 수 대비 12%가 AI 기술에 의한 대체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는 단순히 미래의 전망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현실이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더욱 구체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2024년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대규모 인력 감원을 단행했고, IBM은 인사팀 업무 일부를 AI로 자동화했다.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는 AI 도입으로 업무 효율성을 크게 높였다고 발표했다. 많은 기업들이 '운영 최적화'나 '구조조정'이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지만, 그 이면에는 AI 도입으로 인한 근본적인 업무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세계경제포럼은 향후 5년 내 전 세계 고용주 중 41%가 AI 자동화로 인해 일부 업무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대량 실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기술 혁신은 일부 일자리를 없애는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왔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속도'가 아니라 그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느냐다. 자동차 시대의 도래가 새로운 직업 생태계를 만들었듯, AI 시대 역시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와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




휴가 간 직원들 대신 AI와 회의해 보니


잡지사의 전략실장 업무를 겸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AI 도구들을 실험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4 잡지산업 실태조사' 보고서를 다시 검토하며, 올드미디어인 종이 잡지의 디지털 전환 전략을 모색하고 있었다.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홀로 사무실에 출근한 날, 직원들을 회의실로 부르기보다 또 다른 방법을 택했다.


책상 위 노트북을 열고, 여러 AI 도구를 활용해 분석 회의를 진행한 것이다. 시장 데이터 분석, 경쟁사 벤치마킹, 디지털 콘텐츠 전략 수립까지 다양한 주제를 실시간으로 다뤘다. AI는 수초 만에 분석 결과와 전략적 제안을 제시했고, 그 결과물은 A4로 40쪽이 넘는 전략 보고서를 만들 수 있을 정도 충분할 만큼 방대했다.


심지어 질문 말미에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중국어, 일본어, 힌디어 자료까지 함께 조사해 줘"라고 덧붙였더니, 해당 언어의 해외 문헌을 찾아 한글로 정리해 보여줬다. 다국어 해외 사례를 이처럼 신속하게 분류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해 주는 업무 파트너라니,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기존 방식이라면 한두 주는 너끈히 걸릴 작업, 혹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작업까지 단 몇 시간 만에 마무리된 셈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AI의 한계도 분명히 느꼈다. 다채로운 아이디어 중 어떤 것을 더하고 뺄지, 이해관계에 따른 미묘한 조율, 그리고 현실적 고찰은 여전히 내 몫이었다.



일단 가벼운 마음으로 써보자


AI 전문가들의 조언이 핵심을 찌른다. "잘 아는 것보다 자주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 마부들이 자동차 이론을 공부한 것이 아니라, 직접 떨리는 손으로 핸들을 잡고 운전을 익혔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다.


일상 업무에 AI 도구를 도입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자. 문서 작성이나 이메일 초안 작성,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에 활용하다 보면 점차 익숙해진다. 그다음에는 복합적 문제 해결에 AI를 활용해 보고, 궁극적으로는 AI와 협업하는 새로운 워크플로우를 구축해 나가면 된다.



중요한 것은 AI를 두려워하거나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도구로서 현명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마차를 몰던 마부가 운전기사가 되어 '이동'이라는 개념을 혁신했듯, 우리도 AI를 통해 개개인의 능력을 증폭시켜 '생산성'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야 한다.



다음 13년, 우리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전환점에 서 있다. 2022년 ChatGPT 출현 이후 불과 3년 만에 슈퍼인텔리전스 시대가 가시화되고 있다. 100년 전, 뉴욕의 마차가 자동차로 바뀌는 데 걸린 시간도 13년이었다. 지금 우리는 다음 '13년'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렇다면 13년 후 우리의 직장은 어떤 모습일까?


1920년대 '인텔리'였던 무용가 최승희도 결국 시대 변화에 맞춰 서양의 현대 무용을 배워 자신만의 '신무용'을 개척해야 했다. 마부가 운전을 배웠듯, 우리 역시 AI와 협업하는 새로운 업무 방식을 익혀야 한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동료나 경쟁자가 당신의 자리를 위협하게 될 것이다. 100년 전 마부들에게 주어진 선택과 똑같은 기로에 우리가 서 있다.


고삐를 잡을지, 핸들을 잡을지. 선택은 우리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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