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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도가 일상이 된 여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커피와 목재, 일상 속 관점 변화로 시작하는 기후행동

by 우드코디BJ

2025년 7월, 미국 텍사스를 강타한 '천년에 한 번' 수준의 홍수는 130명이 넘는 사망자와 수십 명의 실종자를 발생시켰습니다. 특히 어린이 캠프에서 27명의 아이들이 희생되면서, 이는 미국 재난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어린이 희생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되었죠. 불과 45분 만에 강 수위가 8~9미터 치솟는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었습니다.


이런 참사가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닙니다. 2022년 울산을 강타한 기록적 폭우로 14명이 목숨을 잃었고, 2023년 여름 제주도는 연일 38도를 넘나드는 폭염으로 신음했습니다. 2024년 강원도 산불은 여의도 면적의 10배가 넘는 숲을 태웠죠.


이러한 기후 재앙이 일상이 되어가는 지금, 전 세계의 관심은 아이러니하게도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에 쏠려 있습니다. 한 해가 무섭게 뜨거워지는 지구, 갈수록 매서워지는 자연재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AI 광풍 속에서 외면당하는 기후 현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기후 위기 대응에 필요한 자금은 연간 6.3조 달러로 추산되지만, 실제 투자는 1.9조 달러에 불과해 필요 규모의 30%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반면 AI 분야는 어떨까요? 글로벌 시장조사기관들은 2025년 AI 투자 규모를 최대 3,600억 달러로 전망하고 있으며, 이는 전년 대비 60%나 급증한 수치입니다. 간단히 계산해 보면, AI에 투입되는 하루치 자금만으로도 약 10억 달러에 이르며, 이는 상당한 규모의 산림 복원 프로젝트나 재생에너지 설비 구축이 가능한 금액입니다.


하지만 이 AI 열풍에는 숨겨진 환경 비용이 있습니다. AI를 구동하는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을 소비합니다. IEA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이 2026년까지 최대 1,050 TWh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는데, 이는 일본 전체의 연간 전력 소비량과 맞먹는 규모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AI 학습과 추론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입니다. 대형 언어모델 하나를 훈련시키는 데만 약 300톤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며, 이는 자동차 125대가 1년간 운행하며 내뿜는 양과 같습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정부는 기후 대응 목표 달성에 한계를 보이면서도, AI 분야에는 8,100억 원을 투입하며 '디지털 대전환'을 추진하고 있죠.


폭염으로 치솟는 냉방비 걱정, 기상이변으로 인한 과일값 폭등, 집중호우로 늦어지는 택배, 시도 때도 없는 폭우로 물바다가 된 출근길... 기후 위기는 이제 극지방이나 열대 지역의 일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집 전기요금 고지서 위에도, 냉장고 속 장바구니 물가에도, 조용히 드리워져 있습니다.



'가난한 자의 티크'가 숨겨온 놀라운 비밀


서아프리카에서 자생하는 이로코 나무는 '가난한 자의 티크(Poor man's teak)'라는 오래된 별명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최고급 목재로 여겨진 동남아산 티크와 비슷한 색감과 좋은 품질을 가지면서도 저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최근 과학자들은 이로코 나무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Milicia_roadside_small.jpg 이로코 나무 | 출처 : 위키피디아


바로 이로코가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뿌리 주변 토양에 석회석 형태로 저장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인 나무들이 몸통에 저장한 탄소는 나무가 죽어서 썩으면 다시 대기 중으로 날아가지만, 이로코가 만든 석회석 속 탄소는 땅속에 오랫동안 보관될 수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이로코 나무 한 그루는 평생에 걸쳐 약 1톤의 탄소를 석회석 형태로 저장하며, 매년 약 21kg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합니다. 이는 소형차 1대가 130km 주행하며 배출하는 양과 맞먹습니다.



사실 모든 나무는 기후 어벤저스다


물론 이로코만 특별한 게 아닙니다. 우리나라 토종 나무들도 놀라운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나무 한 그루는 연간 14.2kg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참나무는 15.8kg을 흡수합니다. 상수리나무는 더욱 탁월해서 연간 22kg까지 흡수하죠.


산림청에 따르면, 한국의 산림은 연간 4,57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6.5%에 해당하는 양이죠. 만약 산림청의 '2030년 30억 그루 나무 심기' 계획이 성공한다면, 연간 탄소 흡수량을 1.5배 늘릴 수 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숲은 단순한 '탄소 흡수원'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산소를 만들어내는 '산소 공장' 역할도 합니다. 광합성을 통해 식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방출하는데, 전 세계 산소의 약 28%는 육상 식생, 특히 산림에서 만들어집니다. 열대우림이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것도 이 때문이죠. 우리가 오늘 마신 숨, 그 산소의 일부는 어제 나무가 만든 것일지도 모릅니다.


자연은 바다에서는 해조류가, 육지에서는 나무들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공급하며, 인간과 동물은 그 반대 역할을 수행하는 정교한 순환 시스템을 유지해 왔습니다. 탄소와 산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지구 생태계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능력인 셈입니다. 탄소 포집을 위한 최첨단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나무의 조림과 이용이라는 순환 고리는 여전히 유효한 '자연 기반 해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자연의 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의 규모는 단순한 조림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현실도 직시해야 합니다. 대규모 조림에 필요한 토지 확보의 어려움, 생물다양성에 미칠 수 있는 영향, 지역 생태계 교란 가능성 등은 신중히 고려해야 할 사안들입니다. 또한 나무의 탄소 저장 능력에도 한계가 있어, 이것만으로는 현재 배출되는 모든 탄소를 상쇄하기 어렵다는 점도 인정해야 합니다. 이는 인류가 배출하는 탄소의 절대량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나무를 심어야 탄소가 흡수되고, 목재를 써야 탄소가 보관된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와 보면, AI 투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정부와 기업의 최우선 관심사가 된 반면, 자연 기반 해법은 관심에서 멀어지며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물론 AI가 기후 예측 모델링, 재생에너지 최적화 등 기후 기술 발전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현재의 AI 투자 흐름이 자연 기반 해법에 대한 관심을 압도하고 있다는 점은 우려스러운 대목입니다.


전략적 조림과 지속 가능한 목재 활용은 당장 실행 가능한 기후 설루션입니다. 이로코처럼 뛰어난 탄소 저장 능력을 가진 나무를 발굴하고, 자국의 기후나 풍토에 적합한 나무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합니다. 다 자란 나무는 목재로 활용해 탄소를 반영구적으로 고정하고, 그 자리에 성장하며 탄소를 쭉쭉 흡수할 묘목을 심어야 합니다.


1960년대 산림녹화 포스터 산림청 자료.jpg 1960년대 산림녹화 포스터 | 출처 : 산림청


과거 나무를 베면 '산림 훼손'이라는 관념을 이제 '지속가능한 '산림 이용'으로 확장할 때입니다. 이는 인공지능이 가져다줄 '최첨단 기후 설루션'만 목매고 기다릴 필요 없이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기후 행동입니다.



일상에서 나무와 목재를 기후 시각으로 바라보는 노력


한국인에게 커피는 이미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호음료로 자리 잡은 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집에서 커피나무를 키우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단순히 원두의 종류나 맛을 고르는 것을 넘어, 그 커피가 어디서 어떻게 재배되었는지, 그리고 누가 키웠는지에까지 확대되고 있습니다. 공정무역 커피 캠페인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는 커피를 사는 행위가 단지 소비를 넘어, 개발도상국 농부들의 삶과 연결된 윤리적 선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커피 한 잔에는 농부들의 정성과 노고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며, 이는 단순히 가격으로만 따질 수 없는 가치입니다. 그 커피 한 잔이 우리 손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손길, 정성이 오갔을지 우리는 쉽게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목재 분야에서도 이와 같은 흐름이 이어져야 합니다. FSC(국제산림관리협의회) 인증 목재는 단순한 목자재 선택을 넘어,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와 노동자의 권리 보장, 그리고 생태계 보호까지 아우르는 책임 있는 소비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FSC 인증 목재의 사용률은 아직 10% 미만으로, 공정무역 커피(15%)보다도 낮은 수준입니다.


1 (23).JPG 이로코 목재로 마감한 천정 | 출처 : 유림목재


원목 의자 하나가 우리 거실에 놓이기까지, 수십 년의 시간을 품은 나무와 이를 가꾸고 다듬은 이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떠올려야 합니다. 목재를 키우고 가꾸는 이들의 노력 또한 가격표 너머의 가치를 품고 있습니다. 이제는 목재를 선택할 때도 더 넓은 시야와 윤리적 감수성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일상 속 작은 관점 변화, 기후행동의 시작


서아프리카의 이로코처럼, 지구 곳곳에서 숲을 지켜온 수많은 토속 나무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떤 기후 행동을 선택할 수 있을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합니다.


나무를 심고, 가꾸고, 그 나무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일. 그리고 일상에서 만나는 나무와 목재 제품을 '기후 설루션'의 일부로 인식하는 노력. 이 단순한 순환이야말로,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지속가능한 선택입니다.


우리의 작은 관심과 선택이 거대한 기후 변화의 흐름을 바꾸는 시작점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아침,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앉았던 나무 의자나, 갓 구운 빵이 놓여있던 원목 받침을 보셨다면, 잠시 멈춰 서서 이 나무들이 우리 기후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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