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의 순환, 한국이 심는 연리지의 숲

가난했던 시절부터 땀 흘리며 익힌 뿌리기술로 엮어낼 새로운 국제관계

by 우드코디BJ

세계화의 기억과 오늘의 자리


1987년, 미국 레이건 대통령과 소련 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 서명할 때의 장면은 지금도 회자됩니다. 무려 20자루의 펜으로 한 글자마다 서명했고, 그 펜들은 각기 역사적 기념품이 되었습니다. 냉전이 끝나고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가속화되는 순간, 펜은 단순한 필기도구가 아니라 시대의 전환점을 상징하는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흐름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공존과 협력의 세계화는 코로나19 팬데믹 앞에서 흔들렸습니다. 국경이 닫히고, 공급망이 끊기며, 각국은 다시 자급과 고립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국제사회에는 ‘탈세계화’라는 단어가 일상처럼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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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자기중심적 행보


이 과정에서 미국은 ‘세계의 리더’라기보다, 동맹과의 협력을 이끄는 것보다 자국 이해를 앞세우는 정책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천문학적 무역수지 적자와 재정 부담을 안고 있으며, 이를 줄이기 위해 관세와 수입 규제 같은 단기적 처방에 의존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소비 중심 경제 구조와 낮은 저축률이라는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점점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삼성과 TSMC의 반도체 공장, 현대차의 전기차 공장, 유럽 기업들의 배터리 공장까지 줄줄이 미국으로 향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 흐름이 진정한 해법일까요? 세계화가 무너진 자리에서, 미국으로의 투자 행렬이 과연 지속 가능한 답이 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들이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그래서 이번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단순히 또 하나의 투자 약속을 주고받는 자리가 아니라, 탈세계화의 시대에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을까 하는 희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뜻밖의 주인공이 등장했습니다. 협정문 서명 순간, 한 자루의 나무 만년필이 모든 시선을 모았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의 펜을 보고 “직접 가져온 것이냐”, “두께가 마음에 든다”, “정말 멋지다”라고 감탄했고, 이 대통령은 흔쾌히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에 유용할 것”이라며 선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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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훈한 장면, 그러나 아직은 훈훈한 결과가 없다


회담장에서 두 대통령이 연출한 이 따뜻한 장면은 분명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교감이 곧바로 관세 하향이나 무역장벽 완화라는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외교는 늘 ‘디테일’에서 드라마를 쓰지만, 동시에 ‘숫자와 조건’에서 현실을 만납니다.



펜에 담긴 외교의 철학


그럼에도 펜은 여전히 중요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한국 외교는 2018년 평양 정상회담에서 ‘네임펜’ 논란을 계기로 국산 우드 만년필을 공식 의전용으로 채택했습니다. 차갑고 균질한 금속과 달리, 나무는 손끝에서 따뜻한 감촉을 전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색과 결이 변해 ‘쓰는 이의 흔적’을 남깁니다. 이번에 사용된 장미나무와 호두나무는 각각 치유와 평화, 지혜와 지식을 상징합니다. 한국이 지향하는 ‘상호 이해와 협력’이라는 외교 철학이 은유적으로 담겨 있는 셈입니다.



연리지와 보은, 한국이 심어야 할 숲


옛사람들은 서로 다른 두 나무의 가지가 맞닿아 하나로 자라는 것을 **연리지(連理枝)**라 불렀습니다. 따로 뻗어 나왔지만, 결국 함께 엉켜 자라며 서로의 생명을 나누는 나무. 이번 회담장의 펜도 그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연리지는 단순히 가지가 맞닿는다고 완성되지 않습니다. 뿌리 깊은 신뢰와 꾸준한 돌봄이 있어야 오래 살아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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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난 세기, 국제사회의 도움과 희생 덕분에 가난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러나 **보은(報恩)**이란 단순히 받은 만큼의 원조를 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보답은, 오늘 우리가 보존해 온 3D·뿌리기술을 이제 다른 나라들과 나누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세계에는 원자재가 풍부해도, 주조·금형·용접 같은 기초기술이 없어 산업을 일으키지 못해 여전히 가난한 나라들이 많습니다. 한국은 자원 하나 없던 나라에서 바로 그 뿌리기술로 일어서 세계 10위권 경제로 도약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보은은, 그 기술과 경험을 나누어 새로운 연리지의 숲을 세계 곳곳에 심는 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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