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을 밝힌 산업의 별자리

울산에서 사라지는 불빛, 중동 사막에서 다시 뜨다

by 우드코디BJ
ChatGPT Image 2025년 8월 26일 오후 06_32_34.png 과거 산업 불모지 대한민국에서 석유화학산업을 일으킨 이들이 있었다| 출처 : chatGPT 생성 이미지

미친 짓이라고 불린 꿈


1950년대 어느 날, 한 청년이 허황된 꿈을 꾸었다. "우리나라에 정유공장을 지으면 어떨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외국의 원조로 근근이 먹고사는 나라에서 정유공장을 짓겠다니 미친 짓이다."


그 청년의 이름은 전민제.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갓 졸업한 이십 대 후반의 엔지니어였다. 당시 우리나라 화학공장이라고는 가성소다, 카바이드, 시멘트 공장이 전부였던 시절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유공장?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됐다.


하지만 전민제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뭔가 확신 같은 것이 있었다.


11년이라는 시간의 무게


전민제가 실제로 그 꿈을 현실로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11년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울산과 서울을 드나들며" 정유공장의 밑그림을 그렸다. 원조당국을 설득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 설득하고.


그 과정이 쉬웠을 리 없다. "당시 신혼이었는데 아마 실제로 한 집에서 산 날은 많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훗날 담담하게 회상했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온통 '앞이 보이지 않는 일'에 쏟아부은 셈이었다.


11년. 초등학생이 대학생이 되고, 대학 새내기가 사회의 중견이 되는 시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전민제는 무엇을 보았을까?


1964년 4월 1일, 기적의 순간


드디어 그날이 왔다. 1964년 4월 1일, 울산의 허허벌판에서 거대한 굴뚝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대한민국 최초의 정유공장이 가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곳에는 농촌에서 올라온 스무 살 청년들이 있었다. 소 키우던 손으로 이제 복잡한 기계를 만지고, 논밭 대신 공장에서 밤을 새우는 이들. 누군가에게는 아들이고, 누군가에게는 남편이었을 그들이 대한민국 석유화학 산업의 첫 세대가 되었다.


그때 전민제가 느꼈을 벅참을 상상해 본다. 11년간 '미친 짓'이라고 불린 일이 현실이 되는 순간 말이다.


ChatGPT Image 2025년 8월 26일 오후 06_54_18.png 제조 공정 특성상 24시간 가동되는 석유화학공장의 야경| 출처 : chatGPT 생성 이미지


그들이 만든 세계


그 청년들이 만든 세계는 상상 이상이었다. 울산에서 시작된 불씨는 여수로, 대산으로 번져갔다. 대한민국은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세계적인 석유화학 강국이 되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것들—휴대폰 케이스, 자동차 부품, 화장품 용기, 심지어 입고 있는 옷의 원료까지—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그날 울산에서 피어오른 첫 연기에 닿는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질문


그런데 지금, 그 아버지들이 평생 일군 공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구조조정, 공장 폐쇄, 대량 해고. 언론에 오르내리는 단어들이 차갑다.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리는 여전히 원유를 한 방울도 생산하지 못한다. 미국은 셰일 혁명으로 저렴한 원료를 확보했고, 중동은 원유부터 완제품까지 일관 생산으로 원가 경쟁력을 극대화했다. 중국은 석탄을 원료로 한 화학공정으로 물량 공세를 펼친다.


여기에 환경 규제까지 강화되고 있다. 30~40년 전 지은 우리 공장들은 에너지 효율도 떨어지고 탄소 배출량도 많다. 유럽은 이제 환경을 오염시키는 제품에 관세를 부과한다. 이대로 가면 팔기도 전에 벌금부터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던지는 질문이다. 전민제가 11년을 걸어 만든 이 산업을,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ChatGPT Image 2025년 8월 25일 오후 04_55_30.png 글로벌 공급 과잉과 경쟁력 약화로 위기에 처한 석유화학 산업| 출처 : chatGPT 생성 이미지


단순히 문 닫는 것을 넘어서


단순한 구조조정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적자 공장을 폐쇄하는 것은 출혈을 멈추는 응급처치일 뿐, 미래를 여는 치료법은 아니다.


진짜 필요한 것은 두 가지 방향의 전략이 아닐까. 하나는 국내에서의 전환, 다른 하나는 해외로의 확장.


국내에서는 낡은 설비를 정리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가능성을 심어야 한다. 플라스틱 재활용, 바이오 화학, 친환경 소재 같은 미래 산업 말이다. 물론 일자리 문제가 걱정되겠지만, 적절한 재교육과 전환 지원이 있다면 오히려 더 좋은 일자리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진 것의 진짜 가치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 없는 게 원유뿐일까?


60년 동안 축적된 무형의 자산이 있다. 사고 없이 공장을 운영하는 기술, 복잡한 화학공정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노하우, 설비의 이상 징후를 미리 감지하는 시스템. 이런 것들은 돈 주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 같은 산유국들을 보면 흥미롭다. 원료는 풍부하지만 정작 그것을 가공하는 기술은 부족하다. 거대한 플랜트를 짓고도 초기 안정화에 어려움을 겪거나, 고급 제품 생산에 한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새로운 가능성이 보인다.


기술과 경험을 수출하는 모델


산유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들이 값싼 원료를 제공하고, 우리가 축적된 운영 기술과 관리 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이다.


단순히 기술을 넘겨주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운영 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델을 상상해 본다. 마치 소프트웨어 구독 서비스처럼, 우리의 운영 시스템과 노하우를 계속 공급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일자리도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경험 많은 기술자들은 해외 프로젝트에서 현지 인력을 교육하고, 국내에서는 젊은 인재들을 새로 채용하는 구조. 세대교체와 기술 전수가 동시에 이뤄질 수 있다.


ChatGPT Image 2025년 8월 25일 오후 04_47_24.png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키워온 기술력과 운영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국가들이 있다| 출처 : chatGPT 생성 이미지


1968년의 또 다른 증언


마경석이라는 분이 계셨다. 1968년 울산석유화학단지 건설본부장을 맡았던 분이다. 그는 훗날 이렇게 회상했다. "허허벌판이던 울산 부곡동 일대에 에틸렌 공장이 완공되고 시운전을 거쳐 가동에 들어갔을 때의 감격은 잊을 수가 없어요."


그때의 감격, 그때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결국 그것이 아닐까.


선택의 기로에서


결국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60년 동안 쌓아온 기술과 경험을 그냥 버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무대에서 다시 꽃 피울 것인가.


전민제가 50년대에 품었던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 11년이 걸렸다. 지금 우리가 품어야 할 꿈도 하루아침에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랬듯이, 우리도 시작할 수는 있다.


울산 허허벌판에서 시작된 꿈이 이제 중동의 사막에서, 동남아의 정글에서 다시 꽃필 수 있다면 어떨까. 그것이 비현실적인 상상일까, 아니면 충분히 가능한 미래일까.


ChatGPT Image 2025년 8월 25일 오후 04_47_27.png 생산량 감축과 인력 구조조정은 유일한 해법이 아닐 수 있다| 출처 : chatGPT 생성 이미지


꿈의 방정식을 다시 쓸 시간


전민제는 증명했다. 모든 사람이 '미친 짓'이라고 할 때도, 확신을 가지고 11년을 걸으면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고.


지금 우리에게도 그런 확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 그것이 바로 60년 전 그 청년이 우리에게 보여준 꿈의 방정식이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누군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2025년, 한국의 석유화학 기술자들이 세계로 나가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이 새로운 기적의 시작인 줄 몰랐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준비는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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