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언어로 말 걸기

정보 격차 시대,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진심

by 우드코디BJ
ChatGPT Image 2025년 8월 28일 오후 06_15_22.png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아랍어를 배워 편지를 쓰다


아나운서 시험 낙방, 의전원 불합격, 기자의 꿈 좌절. 그러나 글로벌 e스포츠 기업 T1의 최고운영책임자가 된 안웅기는 사우디 왕세자에게 20시간 동안 아랍어를 익혀 손 편지를 썼다. 간절함이 상대의 마음을 연 것이었다.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재생에너지 전환, 인공지능 도입 등 거대한 전환기를 맞은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도 결국은 ‘소통의 간절함’이다.



산업 현장과 암호 언어 사이


우리 회사는 치솟는 전기요금 때문에 고민이 깊다. 2022년 이후 산업용 전기요금은 세 차례 인상되며 kWh, 즉 전력 사용량 단위 기준으로 평균 40% 가까이 올랐다. 목재를 켜고 깎는 우리 공장 같은 제조업 현장에는 치명적이다. 공장장은 “이러다 망하는 거 아니야?”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푸념한다.


그 와중에 내가 맡게 된 것은 태양광 발전 설비 도입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전문가들과의 첫 미팅에서 나는 금세 ‘외국어 수업’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느꼈다. REC는 신재생에너지 공급 인증서, SMP는 전력 도매가격, RPS는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 제도를 뜻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지만, 당시에는 그 모든 용어가 낯선 암호처럼 들렸다.


전문가들에겐 일상어일지 몰라도 현장의 사람들에겐 도저히 넘기 힘든 장벽이 되는 말들. 그 순간 나는 이것이 바로 정보 격차라는 것을 실감했다.


Gemini_Generated_Image_sssxjbsssxjbsssx.png B2B 분야는 B2C에 비해 전문용어가 많다



질문과 학습 사이


나는 결국 AI의 도움을 받았다. 챗GPT, 제미니, 퍼플렉시티 같은 도구들에게 “kW와 kWh의 차이가 뭐야?”, “인버터는 왜 필요한 거야?” 하고 끊임없이 물었다. AI는 24시간 내 곁에 있어 주었고, 같은 질문을 열 번 해도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다시 설명해 주었다. 도면이나 서류를 찍어 올리면 그림까지 풀어주었다. 기가 막혔다.


일주일간의 대화 끝에 나는 태양광에 대해 기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보고서를 제출하고 나서 문득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안웅기는 빈 살만 왕세자에게 진심을 보이기 위해 20시간 동안 아랍어를 배웠다. 그는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에 닿으려는 간절한 노력을 한 것이다.


반면, 값비싼 태양광 설비를 구매해야 하는 주체는 우리인데, 내가 만난 몇몇 업체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를 쉽게 전달하기보다 자신들의 전문 용어를 쏟아내기에 바빴다. 우리 회사의 사정이나 고민을 헤아리려는 진심은 찾기 어려웠다.


결국 나는 퇴근 후 밤마다 AI에게 과외 수업을 받으며 궁금증을 풀어야 했다. 그 간극이 바로 내가 느낀 안타까움의 정체였다.


화면 캡처 2025-08-21 152859.jpg 태양광 지식을 알아가는데 유용했던 딥리서치 기능


목재 이름과 고객 마음 사이


그 경험은 나에게 또 한 번의 거울이 되어 주었다. 고객과 목재 상담을 마친 뒤 나는 늘 스스로에게 묻는다. 잘 이해했을까. 아프젤리아, 부빙가, 타우아리, 웬지, 로즈우드… 이런 이름들을 줄줄 읊으며 설명을 이어갈 때마다 나는 상대의 얼굴을 유심히 살핀다.


잘 알아듣고 있는지 살펴보다가 미묘한 표정이 나타나면 목재 샘플을 꺼내 보여주거나 실제로 사용된 사례 사진을 보여주며 잠시 대화의 속도를 늦춘다. 그럼에도 늘 부족함을 느낀다. 조금 더 쉽게, 조금 더 친근하게 고객의 눈높이에 닿기 위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늘 고민한다.


화면 캡처 2025-08-22 130027.jpg 여러 AI 서비스를 사용하며 교차 검증을 반복했다



간절함이 만든 소통


오늘날 우리는 끊임없이 서로를 번역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안웅기의 20시간 손 편지, 내 일주일간의 AI 학습, 현장에서의 목재 상담. 이 불완전한 노력들이 결국 서로를 잇는 다리가 된다.


산업용 전기요금의 급등, 재생에너지 전환, 인공지능 도입 같은 변화는 모두 거대한 사회적 전환기의 신호다. 그러나 그 성패는 기술 자체보다도 얼마나 상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려 노력하는가에 달려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결국 우리가 주고받는 것은 지식이나 물건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이라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옛말에 “남의 환심을 사라”는 표현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은 얄팍한 아부가 아니라, 상대의 마음에 닿으려는 간절한 노력이 전제될 때만 힘을 발휘한다.


오늘 당신 앞에 있는 동료, 고객, 가족에게 그들의 언어로 먼저 말을 걸어보자. 그 순간, 기술도 시장도 넘어서는 가장 오래가는 자산이 바로 ‘진심의 언어’ 임을 알게 될 것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보은의 순환, 한국이 심는 연리지의 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