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믹스커피는 알아도 믹스우드는 처음이지?

[목재 공장 다니는 우드코디의 일상]

by 우드코디BJ
목재숙성창고 안에 적치된 믹스우드


날씨가 따뜻해지면 겨우내 해묵은 먼지를 털어내느라 공장의 하루는 분주하다. 그간 창고 깊숙이 적치되었던 목재들이 꺼내어져 다시 보이는 시기이기도 하다. 요 며칠 작은 각재들이 묶인 믹스우드 번들이 창고 한 편을 가득 채우고 있다. 믹스우드 각재 다발에는 색상과 나뭇결이 저마다 다른 수십 가지 수종들 이 섞여있다. 여러 수종이 섞인 만큼 색상 편차도 커서 오크나 메이플 등 밝은 톤의 목재들과 크윌라, 체리 등 짙은 색 나무들은 대략 분류해서 묶어둔다.


풍경재-24.jpg 믹스우드가 사용된 신교동 P 주택 우드월


그런데 '밝은 색'과 '짙은 색' 묶음을 일부러 섞어서 사가는 분들이 종종 있다. 목재 공장에 근무하며 늘 목재를 보며 살지만, 막상 목재가 시공된 현장을 보면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며칠 전 같은 목재 샘플을 앞에 두고 상담하는 중에도 건축 전문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림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공급자 중심의 사고가 일순 말랑말랑해진다.


풍경재-27.jpg 믹스우드가 사용된 신교동 P 주택 우드월


서해안고속도로를 내달려 변산반도에 닿으면 서쪽 끝 채석강을 만난다. 몇 해 전 '강'으로 생각하고 찾았다가 해안 절벽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당황했던 곳이다. 다양한 색상의 퇴적층이 수만 권의 책처럼 겹겹이 쌓인 해안 절벽의 거대한 풍광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그날의 감성이 가정집 복도에 설치된 우드월을 보고 떠오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


풍경재-34.jpg 믹스우드가 사용된 신교동 P 주택 우드월


우드월 목재가 수평으로 배열된 복도에서는 공간이 길게 보였는데, 수직으로 방향을 틀은 계단실은 상부가 확 트인 느낌이다. 늘 구부정한 내 거북목이 쭉 펴지는 기분이다. 아까 복도에서부터 가만히 보니 우드월 색상이 짙은 색과 옅은 색 나무가 고르게 섞어 시공된 게 이뻐 보여 현장소장님에게 묻는다. '이거 목재 다발 풀어놓는 대로 그냥 막 붙이신 거 아니죠?' 목공사 시작할 때는 그냥 그렇게 할까 하다 좀 이쁘게 고루 섞어 붙이기로 마음을 바꿨단다. 그러다 보니 보기는 좋은데 목공 일이 많아져 시간과 비용이 생각보다 많이 들었다고 볼멘소리를 건넨다. 역시 그랬군요. 그래도 '믹스우드' 자재는 원래보다 저렴하게 해 드렸으니 기분 푸세요 소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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