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세월호 11년, 이제 바다에도 운영체제가 필요하다

by 우드코디BJ

세월호 침몰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생전 일상과 국민의 추모 활동을 비롯해 유가족과 생존자들의 회복 노력 등을 기록한 ‘단원고 4·16 아카이브 : 시민의 기억운동과 치유의 기록’(기록유산명)이 발의 10년 만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 아시아·태평양 지역 목록등재를 위한 국내 심사를 통과했습니다. 세월호 11주기를 맞아 산업과 시민이 함께 설계하는 ‘대한민국형 해상안전 운영체제(MAR-OS)’를 제안하는 칼럼입니다.



멈춰버린 바다에서 시작된 질문


11년 전, 진도 앞바다에서 한 척의 여객선이 서서히 기울었다. 304명의 생명이 사라졌고, 함께 가라앉은 것은 배만이 아니었다. 정보의 흐름, 판단의 사슬, 그리고 사회의 시스템이 동시에 침몰했다. 그날의 부재는 너무나 명확했다.


선장은 해경에 연락했지만 승객 수를 정확히 파악할 방법이 없었다. 기울어진 복도에서는 구명조끼 보관함조차 찾기 어려웠고, 관제센터는 배의 기울기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인근 선박들은 “대피하라”는 신호조차 듣지 못했다.


센서도, 통신도, AI도, 실시간 안내 시스템도 없었다. 있었던 건 무전기와 육성 방송, 그리고 혼란 속의 한 사람의 판단뿐이었다.


“가만히 있으라.”


그날 배 안에서 들려온 이 말은 단지 한 사람의 명령이 아니었다. 정보가 끊기고, 통신이 두절된 사회가 내린 무의식의 명령이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났다. 법과 규정은 두꺼워졌지만, 바다의 시스템은 여전히 그날에 멈춰 있다.


우리는 너무 오래 “누가 잘못했는가”를 물어왔다. 이제는 “누가 시스템을 설계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그날의 교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20250414_01100113000003_L01.jpg 목포신항에 임시 거치된 세월호 (출처 : 해양수산부)


섬과 바다, 그리고 멈춘 시스템


한국은 약 3,390개의 섬을 가진 나라다. 그중 1,028개가 전남 신안군에 흩어져 있고, 해마다 1,300만 명이 여객선을 타고 섬과 육지를 오간다. 섬 주민만 80만 명이 넘는다. 그들에게 바다는 도로이고, 여객선은 버스다. 하지만 이 도로에는 신호등도 CCTV도 없다.


도로에는 교통 시스템이 있지만, 바다에는 여전히 무전기와 방송뿐이다. 연안여객선 300여 척 중 20년 이상 된 노후선박이 40%를 넘고, 실시간 상태 모니터링이 가능한 선박은 전체의 20%에 불과하다. 여전히 통신 음영 구간이 존재하며, 위급한 순간 승객을 안내할 디지털 시스템은 거의 없다.


이제는 바다에도 운영체제가 필요하다. 스마트폰이 OS를 통해 모든 앱을 통합하듯, 바다에도 통신·항법·구조·안내 시스템을 하나로 묶는 디지털 신경망이 깔려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해상안전 운영체제, MAR-OS(Maritime Autonomous Response OS) 다.


산업이 만드는 안전, 기술이 잇는 바다


안전은 규제가 아니라 기술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한국은 세계 최고의 조선, 통신, 전자, AI, 보험 산업을 동시에 갖고 있다. 이 역량이 하나로 묶이면, 안전은 더 이상 비용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가 된다. 그 중심에는 ‘대한민국형 해상안전 OS 컨소시엄(MAR-OS)’이 있다.


조선업은 스마트 여객선의 구조를 설계하고, 통신사는 해상 LTE와 위성망으로 데이터를 연결한다. IT(정보통신) 기업은 핵심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며, SI(시스템통합) 기업은 그것을 선박과 관제·안내 시스템으로 통합한다. 디스플레이 기업은 비상시 승객에게 시각·음성으로 탈출 경로를 안내하고, 보험사는 운항 데이터를 기반으로 안전 점수를 산정해 보험료나 세제 혜택에 반영한다.


여기에 센서 제조, 클라우드, 보안, 표준 인증까지 더해지는 MAR-OS는 단일 기술이 아니라 산업 생태계 전체가 만드는 통합 플랫폼이다. 정부는 규제자가 아니라, 이 플랫폼의 촉진자가 되어야 한다. 기업은 ESG 경영의 일환으로 안전 기술을 발전시키고, 정부는 그 데이터를 공익 목적에 맞게 표준화하고 개방해야 한다.

안전이 곧 경쟁력이 되는 시대, MAR-OS는 그 시작이다.


MAR-OS는 선박의 디지털 신경계다. 센서가 배의 기울기와 침수, 전압 이상을 감지하고, 데이터는 해상 LTE와 위성 통신을 통해 관제센터로 전송된다. AI는 위험 패턴을 분석해 해경과 인근 선박에 즉시 경보를 보낸다. 비상 디스플레이는 독립된 전원으로 작동하며, 승객에게 가장 안전한 탈출 경로를 시각과 음성으로 안내한다.


마치 자율주행차가 도로에서 위험을 회피하듯, MAR-OS는 바다에서 생명을 지킨다. 한 번 설치하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안전 기능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며 진화하는 시스템이다.


세계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노르웨이는 자율운항 화물선을 상용화했고, 일본은 ‘스마트 아일랜드’ 프로젝트로 해상 교통을 디지털화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기술은 여전히 분리되어 있다. 한국형 MAR-OS는 조선·통신·AI·보험을 하나의 생태계로 엮어, ‘건조–운항–관제–구조–보상’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한다.


단일 기술이 아닌, 통합 능력에서 한국의 진짜 경쟁력이 나온다. 이제 중요한 것은 실행이다. 부산과 울산에서 진행 중인 해양모빌리티 특구를 확장해, 전남 다도해나 제주 인근 해역을 **‘해상안전 실험구역’**으로 지정하자.


MAR-OS를 탑재한 시범선을 띄워 실시간 데이터 수집, AI 예측의 정확도, 피난 안내 체계의 효율성을 검증해야 한다. 이 과정은 단순한 기술 테스트가 아니다. 안전을 위한 살아 있는 실험실, 기술과 사람이 함께 학습하는 리빙랩(Living Lab)이 될 것이다.


art_17579017374437_906739.jpg 세월호 인양 후 뻘에서 발견된 수학여행 일정표 (출처 : 국가유산청)


기술로 갚는 약속


이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한국은 기술을 수입하는 나라가 아니라, 안전을 수출하는 나라가 된다. 수천 개의 섬을 가진 인도네시아, 필리핀, 그리스 같은 나라들에 MAR-OS는 선박보다 더 가치 있는 수출품이 될 것이다.


한국이 주도하는 MAR-OS 표준안은 국제해사기구(IMO)에 제출되어 국제 표준의 초안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조선 강국을 넘어 해상안전 기술의 선도국으로 도약하게 될 것이다.


MAR-OS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다. 한국이 세계에 건네는 안전의 약속이며, 다시는 어느 바다에서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는 연대의 선언이다.


그날의 바다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슬픔이 아니다. 책임이다. 기술로 답할 수 있는 문제를 감정으로만 기억하는 건 또 다른 방치다. 피해자와 유가족의 아픔을 기억하며, 우리는 감정의 슬픔이 아닌 기술의 약속으로 답해야 한다.


다시는 어떤 바다에서도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시스템의 시대. 그것이 진정한 기억의 완성이자, 미래 세대에 우리가 남길 가장 인간다운 기술의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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