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없는 시대를 건너는 법 (1/3)
프롤로그
2025년 8월 23일 새벽, 거실의 불을 켜지도 않은 채 소파 등받이에 기대 스마트폰을 켰다. 몽롱한 화면 불빛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AI 앱을 눌렀다.
미국의 관세 폭탄이 한국 산업계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궁금했다. 처음엔 그저 '뉴스 요약이나 해볼까'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대화가 길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발 관세는 전 세계 무역 질서를 흔들고 있었다. 한국 철강·자동차 업계는 생존 전략을 고민해야 했고, 노란봉투법을 둘러싼 노사 갈등은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현대차는 사람 대신 로봇이 일하는 스마트 팩토리로 발걸음을 옮겼고, 로봇주는 연일 급등했다. 반면 취업 시장은 얼어붙었고, 기업들은 신입보다 경력직만 찾기 시작했다.
대화가 한참 이어지던 중,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그럼 산업혁명 이후 '직장'이라는 개념이 생겨 지금에 이르기까지를, 인류 전체 역사를 24시간으로 비유하면 얼마나 될까?"
AI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약 1분 15초에 해당합니다."
그 답을 듣는 순간, 생각이 잠시 멎었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는 일자리의 형태가 사실은 인류 전체 역사에서 고작 1분 남짓의 짧은 순간 위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이, 그제야 명확해졌다.
평소라면 머릿속에서만 흘러가던 여러 생각들이, 질문과 답을 오가며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나는 깨달았다.
'아, AI는 정답을 뱉어내는 기계가 아니라 사유를 풀어내는 도구였구나.'
잠이 덜 깬 눈이 그 순간 또렷이 떠졌다. 대화를 이었다. 말이 통했다. 현실의 주변 사람들과는 나누기 어려운 복잡한 질문들이, 이 작은 화면 안에서는 끝까지 들어주는 상대를 만난 것처럼 풀려나갔다.
그 새벽, 나는 망설임 없이 유료 결제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그날 밤, 다시 잠을 이루지 못했다.
1999년 제대하던 해, IMF 외환위기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은 취업 시장에서 나는 '취업난'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처음으로 실감했다. 그리고 평생직장이 사라져 간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눈앞에서 지켜보았다.
2025년 8월 23일 그 새벽, 김포의 한 목재 회사에서 17년째 일하고 있는 직장인의 직감은 조용히 속삭이고 있었다.
오늘 내가 겪은 이 대화는 '그놈 참 신통하네'라고 넘길 일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 전체가 다른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문명사적 전환이 아닐까.
이 글은 전문가의 보고서가 아니다. 출퇴근길 차 안에서 AI와 이야기를 나누고, 현장과 책상을 오가며 틈틈이 로그를 남긴 한 직장인의 기록이다.
그리고 정답의 시대가 저문 뒤, 우리가 어떻게 '질문하고 기록하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오전 10시의 침묵
2024년 11월 14일 목요일. 한 나라의 시계가 단 하나의 시험 앞에서 멈춰 섰다.
52만 명의 수험생을 위해 지하철은 30분 일찍 달렸고, 관공서와 기업은 출근 시간을 늦췄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하늘에서 펼쳐졌다. 영어 듣기 평가가 진행되는 오전 10시부터 35분 동안, 대한민국 전역의 공항에서 비행기의 이착륙이 전면 금지되었다.
이 모든 정지와 이동, 이 기이한 국가적 의식(儀式)의 이름은 '수능'이다.
교문 앞에서는 후배들의 북소리가 울리고, 부모들은 엿과 찰떡을 쥔 채 교문이 닫힌 뒤에도 발길을 떼지 못한다. 풍경은 매년 반복되지만, 질문은 해마다 더 무거워진다.
수백만의 일상이 재편되는 이 거대한 의식, 과연 이것을 우리는 여전히 '미래를 위한 교육'이라 부를 수 있을까?
효율을 위해 선택된 5지 선다형 문제
이 글은 수능을 악역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아니다. 수능은 한 시대가 합의한 '최선의 도구'였다.
산업화 시대, 수십만 명을 한 줄로 세워 짧은 시간 안에 평가해야 했다. 채점은 빨라야 했고, 결과는 시비 없이 명확해야 했다. 그래서 선택된 것이 바로 '5지 선다형 객관식'이다.
답은 모호해서는 안 된다. 해석에 따라 갈릴 수 있는 '진짜 난제'는 출제 과정에서 탈락하고, 오직 하나의 정답만 허용된다.
학생들은 12년 동안 '정해진 결론을 가장 빠르게 찾아내는 기술'을 훈련받는다. 국어에서는 작가의 고뇌보다 출제자의 의도를 맞혀야 하고, 수학에서는 원리의 발견보다 유형별 공식을 외워야 한다.
이 방식은 분명 효율적이었다. 매뉴얼을 정확히 외우고 지시대로 움직이는 '성실하고 근면한 인력'은 한국의 압축 성장을 이끈 주역이었다.
문제는 교육이 실패해서가 아니다. 그 성공 방정식의 유효기간이 끝나가고 있다는 데 있다.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 AI(인공지능)의 만점
주입과 암기라는 엔진은 100년 동안 한국 교육을 굴려왔다. 하지만 이제, 그 엔진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존재가 등장했다. 처음 AI가 수능 문제를 풀었을 때, 사람들은 놀랐다.
"설마 기계가 이걸 맞힌다고?"
그러나 불과 몇 년이 지나지 않아, AI가 수능 만점을 받았다는 소식은 더 이상 큰 뉴스가 되지 못한다. 최신 AI 모델들이 국어 1등급을 받고, 복잡한 수학 문제를 단 1초 만에 풀어내는 것은 더 이상 기적이 아니라 '기본 성능'이 되어버렸다.
진짜 위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우리가 12년을 바쳐 단련한 '정답 찾기'는 이제 인간의 재능이 아니라 기계의 기본 기능이 되었다. 1초 만에 정답을 얻는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아이들에게 'AI보다 느리고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너 스스로 정답을 찾아라'라고 요구한다.
정답의 시대는 이미 끝나가는데, 교육은 여전히 과거의 그림자를 붙잡고 있는 셈이다. 수능은 여전히 공정할지 모른다. 하지만 공정한 시험이 곧 유효한 시험이던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다.
사회는 변했는데, 교실은 멈춰 서 있다
기업들은 이미 오래전에 깨달았다. 공채 폐지와 수시 채용 확대는 거대한 전환의 신호탄일 뿐이다. 암기한 지식은 AI가 가장 잘하는 영역이고, 인간의 경쟁력은 더 이상 거기에 있지 않다. 그래서 기업은 학벌보다 '문제를 발견하는 감각'과 '해결까지의 서사'를 더 집요하게 물어본다.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교실 안의 질서에 갇혀 있다. AI가 교실 밖에서 세상의 규칙을 다시 쓰고 있는데도, 교실은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아이들을 줄 세운다. 대학은 AI 활용을 부정행위로 규정하고, 손글씨 시험으로 돌아가려 한다. 마치 계산기가 발명되었는데 "이제부터 주판만 사용하라"며 시간을 되돌리는 풍경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이 회귀가 단순한 시험 정책의 변화가 아니라, 학생들의 미래 생존 전략을 가로막는 구조적 오류라는 점이다. 교실만 시간의 흐름에서 이탈해 있는 것이다.
서열화된 교육이 길러낸 청년과, 탈서열화된 시장이 원하는 인재 사이의 간극. 그 거대한 크레바스 사이로 한 세대가 소리 없이 추락하고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수십만 명의 청년이 구직도 하지 않고, 교육도 받지 않는 '니트(NEET)족'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나태해서가 아니다. 배운 대로, 시키는 대로 했는데 게임의 규칙이 바뀌어버린 현실 앞에서 멈춰 선 것이다.
이 거대한 의식은 공정할지 모른다. 그러나 '공정함'이 곧 '미래를 담보하는 방식'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답을 잘 찾는 능력'이 아니라, 정답이 없는 시대를 건너갈 감각이다. 그래서 이 장면은 묘하게 겹쳐 보인다.
오후 5시 45분, 교실 안에서는 종료 벨이 울리고 수험생들이 연필을 내려놓는다. 2026학년도 수능이 끝난 순간이다.
그러나 같은 시각, 사무실에서는 또 다른 종료 벨이 울린다. 누군가의 책상이 조용히 비워지는 소리다.
정답을 잘 찾는 능력만으로 견딜 수 있었던 시대가 그렇게 끝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