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 없는 시대를 건너는 법 (3/3)
사라지는 경험을 붙잡아라
1997년 IMF가 내게 남긴 공포, 첫 계약서를 손에 쥐었을 때의 그 떨림, 상사와 부딪치며 얻은 뼈아픈 교훈. 그렇게 분명했던 감각들은 어느새 희미해진다. 문제는 이 강력한 자원이 저절로 남아 있지 않는다는 데 있다.
경험은 휘발성이 강하다. 어제의 깨달음은 오늘의 할 일에 묻히고, 오늘의 감각은 내일의 피로에 덮인다. 사유의 재료가 되는 경험이 사라지면, 우리는 다시 빈손이 된다. 빈손의 인간은 결국 AI가 내놓는 정답에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다.
시스템은 당신을 구해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AI가 다 해준다는데, 이제 좀 편해지는 것 아닌가요?"
천만의 말씀이다. 인간이 사유를 멈추고 시스템에 고삐를 넘기는 순간 비극이 시작된다.
2024년 5월, 미국의 유력 일간지 시카고 선타임스가 보여준 장면이 이를 증명한다. 그들은 '여름 추천 도서 목록'을 AI에 맡겼다. 문제는 그 목록에 적힌 책 대부분이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책이었다는 점이다. AI의 환각(Hallucination)을 인간이 검증하지 않은 채 지면에 그대로 실어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트렌드 코리아 2026』이 경고한 '휴먼 온 더 루프(Human-on-the-loop)'의 위험이다. AI는 추론할 뿐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을 지는 존재는 언제나 시스템 바깥에 서 있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AI 시대의 진짜 안전장치는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끝까지 판단하고 검증할 사람의 안목이다.
그리고 그 안목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법이 없다. 땀 흘려 일한 시간, 사람과 부딪친 갈등, 실패를 견디고 다시 일어난 경험에서 한 사람의 안목을 길러진다
감상이 아니라 자산을 남겨라
그래서 우리는 경험을 잊히기 전에 언어로 붙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기록'이다. 나는 여기서 감상 위주의 일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첫째, 사실을 적고. 둘째, 그때의 판단과 감정을 적고. 셋째,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읽으며 복기한다. 이 세 단계를 반복하며 글감을 정리해 둔다.
이 과정이 쌓이면 휘발되던 기억은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단단한 '데이터'가 된다. AI가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데이터베이스, 내 사유를 떠받치는 가장 강력한 근거가 여기에 있다.
요리를 못하면 마트의 농수산물 매대가 그저 라면 코너까지의 길목일 뿐이지만, 요리 실력이 늘면 똑같은 매대가 수십 가지 요리를 떠올리게 하는 보물창고가 된다. 기록도 그렇다. 내가 성숙할수록 과거의 기록은 새로운 의미와 연결을 드러낸다.
지금은 투박해 보이는 문장도,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열어보면 세상 어디에도 없는 훌륭한 글감이 되어 있다. 그리고 그 기록을 마주하는 순간, 그 사이의 시간만큼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스스로 알게 된다.
나는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마다 기록을 남겼거나, 혹은 남기지 못해 후회했다. 대학, 군대, 직장까지 걸어온 시간 속에서 그때 나는 무엇을 기록했어야 했는지, 그리고 기록된 경험들은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 차근차근 이야기해보려 한다.
대학이라는 첫 전환기: 같은 교실이 아닌, 다른 세계의 사람들과 만나다
대학 입학은 점수로 줄 세워지던 세계가 끝나고, 비로소 '사람의 세계'가 시작되는 첫 관문이다.
초·중·고 내내 책상과 문제집만 상대하던 청소년이, 처음으로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다양한 나이와 배경의 사람들과 부딪히며 '사회'라는 것을 체감하는 시기다.
강의실 구석에서는 사회생활을 먼저 겪어본 편입생이 조용히 분위기를 이끌고, 동아리방에서는 전혀 다른 지역의 문화가 낯선 농담과 억양 속에 스며든다. 때로는 같은 스터디에서 의견 충돌이 벌어지고, 때로는 사소한 오해가 관계의 균열을 만든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들이,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었던 '관계의 기술'을 익히게 하는 첫 실습이다. 대학은 지식을 배우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사람을 배우는 공간이다.
이 시절을 어떻게 기록하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그저 스쳐 지나간 4년으로 남고, 누군가는 사회생활의 초석을 세운 기간으로 남는다. 대학 4년 동안 기록해야 할 것은 자격증 번호가 아니라, 학점이 아니라, '사람을 이해하는 일' 그 자체다.
어떤 친구와는 왜 쉽게 가까워졌는지, 어떤 팀 프로젝트에서는 왜 유독 갈등이 잦았는지, 어떤 교수의 말 한마디가 왜 오래 마음에 남았는지. 이것들을 기록하면, 대학 4년은 단순한 통과의례가 아니라 평생 사회생활을 지탱해 줄 사회성의 기초 공사가 된다.
이런 경험을 그냥 흘려보내면 금세 잊히는 추억이지만, 기록하는 순간 나만의 '대인학개론'이 된다. 사람과 관계 맺는 능력은 어떤 스펙보다 오래가고, 어떤 자격보다 강력한 사회적 역량이 된다.
군대 전환기: 고향 친구가 아닌 팔도 사나이를 만나다
대학에서 또래가 아닌 사람들의 결을 처음 배웠다면, 그다음 전환기는 훨씬 더 밀도 높은 공간에서 찾아온다. 학기라는 완충 장치도, 도망칠 구석도 없다. 하루 24시간이 타인과 엉켜 돌아가는 세계에서 '관계'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시험대에 오른다.
군대처럼 다양한 인간 군상이 한 곳에 모이는 곳도 드물다. 세대·지역·학력·성격·성장 배경이 뒤섞여 계급으로 줄 세워진 집단은 사회를 축소해 놓은 거대한 실험실이다.
나는 1997년 군번이다. 훈련소에서는 신병들에게 공책 한 권과 볼펜을 던져주며 '수양록(修養錄)'을 쓰라고 했다. 대부분은 자대 배치와 함께 그 펜을 놓는다. 나는 끝까지 펼쳐 들었다. 점호가 끝난 뒤 허락된 몇 분 사이로 하루를 정리하며 글자를 채웠다. 공책이 닳으면 외박 때 사비로 다시 사 왔다. 거의 기계처럼, 매일 적었다.
그러나 제대 후 먼지가 내려앉은 수양록을 다시 펼쳤을 때 숨이 턱 막혔다. 그 안에는 성찰도, 관찰도 없었다. 오직 "얼차려가 억울했다", "제대 날짜만 기다린다", "훈련 취소돼서 좋았다" 같은 감정의 파편들뿐.
그때 처음 깨달았다. 기록은 방향이 없으면, 가치를 남기지 못한다는 것을. 만약 그 시절, 누군가 단 몇 마디라도 알려줬더라면 어땠을까.
"오늘 느낀 것과 배운 것을 적어라. 지금은 이해되지 않아도 남겨둬라. 언젠가 그 기록의 의미를 스스로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 너는 정신적으로 한층 더 성숙해졌음을 알게 될 거야."
그 한 줄만 있었어도, 나는 단순히 '버티기 위한 2년'을 살지 않았을 것이다. 군대라는 거대한 관찰실에서 인간의 성질과 관계의 법칙, 내 감정의 구조까지 기록했을 것이다. 제대 후 몇 권의 수양록을 정리해 묶었다면, 어쩌면 그때 이미 첫 책을 낸 초보 작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군대에서의 시간은 누구에게나 흘러간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붙들었는지에 따라, 그 기록은 훗날 내 인생의 궤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다.
직장 전환기: 사회인으로서 정체성을 빚어가는 시간
나는 목재 회사 영업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하루에도 수십 통씩 전화가 울렸다.
"건물 외벽에는 어떤 나무가 좋나요?"
"관리 난이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가격은 왜 이렇게 차이가 나나요?"
상담 내용은 매일 달라 보이지만, 결국 비슷한 질문이 끝없이 반복됐다. 점심시간에 젓가락을 들자마자 울리는 전화, 퇴근 직전 붙잡힌 상담, 이동 중 이어폰 한쪽만 끼고 건조 방식부터 도장 방식까지 설명하던 순간들.
30분씩 숨도 쉬지 않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나면 머리는 텅 비고, 중요한 기획은 손도 못 대고, 하루의 에너지는 상담 전화 속으로 스멀스멀 사라졌다. 그런 날이 몇 달, 몇 년 쌓이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설명한 이 수백 번의 문장들은 다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그 질문이 비효율의 정체를 비추는 조명이 되었다. 그리고 결론에 닿았다.
'고객의 질문에 답이 되는 글을 써야겠구나.'
그때부터 나는 기록하기 시작했다. 자주 묻는 질문을 블로그에 정리했고, 사진과 도면을 붙이고, 상담 현장의 고민들을 사례로 풀어냈다. 상담 전화가 오면 긴 설명 대신 관련 글을 먼저 보내고, 필요한 만큼만 통화로 보충했다.
그러자 변화가 나타났다. 고객들은 나를 단순한 판매직이 아니라 '목재를 잘 아는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 "블로그 글을 읽어보고 연락드렸습니다"라는 말이 들릴 때마다 내 기록이 나 대신 일하고 있다는 감각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한 장의 명함보다 한 편의 글이 더 강력했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하나 더 있었다. 내 블로그에 쌓인 글들이 어느새 회사 동료들에게 영업 업무를 이해하는 첫 참고서가 된 것이다. 새로 입사한 직원들은 내 블로그를 읽으며 목재의 종류와 특성, 시공 방식, 상담의 흐름을 빠르게 익혀갔다.
영업부 직원들은 손님 상담 중 모니터에 내 블로그를 띄워 사진과 도면을 보여주며 설명하기도 했다. 내가 매일같이 흘려보내던 설명들이 어느 순간 조직의 '기본 교과서'가 된 셈이었다.
그리고 이 변화는 곧 회사 전체의 '일하는 방식'으로 번졌다.
입사 2년 차 박 사원은 회사 뉴스레터 작성을 맡고 있다. 그는 억지로 글을 쓰지 않는다. 영업 현장에서 겪은 상담기와 납품 사례를 자신의 블로그에 먼저 쓰고, 그 글을 다듬어 뉴스레터로 발행한다.
기록 하나가 개인 홍보를 넘어 조직의 지식 저장소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하나의 글이 두 곳에서 생명을 얻는 순간. 이른바 '원 소스 투 유즈(One Source Two Use)'다. 이런 기록은 박 사원의 개인 브랜드를 키워줄 뿐 아니라, 순환 보직이 와도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회사의 명함은 퇴사하면 사라지지만, 그가 쌓아둔 기록은 영원히 남는다. 언젠가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게 되면, 그 기록들은 "나는 이렇게 일해 왔습니다"라고 말해주는 가장 강력하고 증명이 되어줄 것이다.
정년 전환기: 기술은 몸에 남고, 기록은 세상에 남는다
우리 회사 공장에는 1971년생 공장장님이 계신다. 평생을 기계 소음과 톱밥 냄새 속에서 보내온, 흔치 않은 현장의 베테랑이다. 보통 이런 분들의 엄청난 노하우(암묵지)는 은퇴와 함께 사라져 버린다. 손끝으로만 기억되던 감각은 말로 옮기기 어렵고, 누군가 곁에서 배우지 않으면 전승되기 힘들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내가 왕년에 말이야…"로 시작하는 무용담을 술자리에서 듣곤 한다. 사라져 간 기술이 남긴 잔향 같은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우리 공장장님은 달랐다. 그는 '우드가이버'라는 이름으로 스마트폰 하나를 들고 현장을 기록한다. 기계가 멈췄을 때 어떤 순서로 분해해야 하는지, 까다로운 목재를 어떤 결로 다뤄야 하는지, 그 모든 기술을 투박한 영상 속에 차곡차곡 담아 올린다.
유려한 영상미 따윈 없다. 그러나 아무 문제도 아니다. 그 영상에는 돈을 주고도 얻기 힘든, 30년 동안 손끝에 쌓인 '결의 온도'와 '작업의 호흡'이 그대로 들어 있다.
그의 유튜브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후배들이 언제든 찾아볼 수 있는 현장의 교과서이며, 은퇴 이후에도 그를 증명해 줄 자기소개서이자 이력서, 경력기술서다.
글이 어렵다면 말로 남기면 된다. 말이 부담되면 영상으로 남기면 된다. 중요한 건 하나다. 사라질 뻔한 기술이 기록을 통해 미래로 건너간다는 사실이다.
퇴장은 끝이 아니다. 기록을 남기는 사람에게 퇴장은 '전승의 순간'이며, 때로는 후임을 계속 길러내는 '영원한 현역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지식 창작자로
대학, 군대, 직장, 그리고 삶의 여러 전환기를 지나며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았다. 살아낸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면 기억은 사라지지만, 기록으로 붙들어두면 그 모든 순간이 내 삶의 서사가 된다.
오늘 있었던 일을 적고, 그때의 판단을 남기고, 훗날 성숙해진 눈으로 다시 읽겠다고 마음속으로 약속하는 일. 이 세 가지를 꾸준히 쌓으면 누구나 "내 이야기도 책 몇 권은 되겠지"라는 농담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그 기록들은 훗날 당신이 쌓아 올린 핵심 지적재산권(IP)이 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이것이 선배 세대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사회 환원이라고 믿는다. 동시에, 기술과 AI가 빠르게 구조를 뒤집는 시대에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기업이 공채를 통해 신입사원을 선발하고 시간을 들여 천천히 키우는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기업은 말한다.
"기본기는 학교에서 배우고 오세요. 우리는 즉시 투입 가능한 사람만 뽑겠습니다."
공채의 사다리가 사라지자 사회에는 커다란 공백이 생겼다. 그 공백을 누가 메울 것인가? 정답형 교육을 통과해 온 우리, 먼저 경험한 세대다. 선배가 기록을 남기면 후배는 시행착오의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한 '좋은 일'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정보순환 구조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리고 이타적인 마음으로 시작한 기록은 결국 당신을 회사 직함 없이도 설 수 있는 지식 창작자로 만든다. 회사 명함이 사라져도, 스스로 쌓아 올린 기록이 당신의 이름을 증명한다.
살아낸 문장은 AI가 대신 쓸 수 없다
사람들은 자주 말한다.
"글 쓸 시간이 없어요."
하지만 대부분은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계기를 잡지 못한 것이다.
이 글도 내 출퇴근길에서 시작됐다. 왕복 두 시간 동안 운전대를 잡고 떠오르는 생각을 갖고 AI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 '이건 글로 써야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AI에게 대화록 작성을 요청한다. 그걸 읽으며 생각을 다시 정리하고, 구조와 흐름 등 뼈대를 세운다.
AI는 1초 만에 유려한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AI는 '시련을 겪어본 적'이 없다. 1997년 내무반에서 맡았던 땀 냄새, 첫 계약을 따냈을 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던 감각, 큰 실패 뒤에 빈 사무실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며 삼켰던 뜨거운 숨.
그 모든 시간은 고통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한 단계 끌어올린 '극복의 기록'이었다. AI는 이런 고난과 역경의 시간을 견뎌본 적도, 이겨낸 경험도 없다. 그래서 인간의 기록은 언제나 AI가 넘볼 수 없는 깊이를 가진다.
기술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AI는 당신의 비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비서에게 건네줄 알맹이, 즉 살아 있는 맥락과 경험은 오직 당신만 만들 수 있다.
세상은 결과만 기억하려 하지만, 기록은 그 치열했던 과정을 증명한다. 내 일이 AI에게 학습된 시대, 성실하게 정답을 수행하는 것만으로는 자리를 지킬 수 없다. 이제 당신의 책상 위에서 조용히 물어야 한다.
나는 오늘을 흘려보내고 있는가, 아니면 내일을 위한 로그(log)로 남기고 있는가.
당신의 삶을 기록하라. 그것은 당신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가장 다정한 유산이자, AI가 넘볼 수 없는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다.
에필로그: 10년 후의 아이들에게
유치원에 다니는 우리 집 막내가 어른이 되어 세상에 나갈 즈음이면, 수능은 어쩌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경쟁과 평가, 선택의 순간은 계속 존재할 것이다.
그때 나는 아이에게 "오늘 몇 개 틀렸니?"라고 묻지 않을 것이다. 대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정답은 AI에게 맡겨도 돼. 하지만 AI에게 더 좋은 답을 요구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질문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어느 날 '나는 특별한 재능이 없어.'라며 불안해할지 모른다. 그때 나는 이 글과 내가 남겨둔 수많은 기록을 꺼내 건네며 조용히 말해주고 싶다.
"아무리 평범해 보이는 하루라도, 기록하는 순간 특별한 너의 흔적이 된단다. 그 흔적은 언젠가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누군가에게 작은 등불이 되어줄 거야. 그러니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말고, 오늘 너의 가장 작은 성취부터 남겨보렴."
우리가 남긴 기록(Log)은 AI가 결코 생성할 수 없는 결괏값이다. 그리고 그 기록은 '미지의 앞날'을 걱정하는 누군가에게 조용한 위로와 작지만 확실한 희망을 건네는 콘텐츠의 씨앗이 된다.
이 글 또한 누군가에게는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