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당신도 실력 없는 업자를 걸러낼 수 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혹은 주말 아침 침대에서 한 번쯤 상상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도시의 소음에서 벗어나 바다가 보이는 언덕이나 숲이 내려다보이는 들판에 작은 집을 짓고 사는 꿈. 한국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편에 품고 있을 그 장면 속에는 언제나 비슷한 모양의 집이 등장한다.
푸른 잔디와 하얀 목재 사이딩, 지붕 밑 조그만 다락방, 현관 앞 흔들의자. 미국 영화와 드라마가 수십 년간 우리 마음속에 심어놓은 미국식 목조주택의 이미지다.
우리는 왜 그 집에 끌릴까. 차가운 회색빛 콘크리트와 달리, 나무는 숨을 쉬고 사람을 품는다는 믿음. 하지만 그 믿음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 폭의 그림 같은 정원 딸린 주택 뒤에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진실'이 숨어 있다.
토마토냐, 케첩이냐
나무집에 대한 한국적 원형은 한옥으로 볼 수 있다. 굵직한 기둥과 보가 무게를 떠받치는 중량 목구조. 흙과 바람이 드나들고, 나무가 가진 물성과 향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형태. 자연의 재료를 다듬어 원형에 가깝게 쓴다는 점에서, 갓 수확한 생토마토를 그대로 씹어 먹는 것과 비슷하다. 손도 많이 가고 비용도 많이 들지만, 재료 자체의 건강함이 느껴지는 방식이다.
반면 미국의 목조주택은 이와 전혀 다른 세계의 산물이다. 보통 '투바이'라고 불리는 구조용 판재를 일정한 간격으로 세우고, 그 위에 합판과 석고보드를 붙이는 방식. 레고 블록처럼 규격화된 자재를 조립하듯 빠르게 올라간다.
이 구조는 자연에서 유래한 천연재료를 쓰겠다는 이유보다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수요에 부응하여 주택을 대량 생산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빠르게 지을 수 있지만, 그만큼 밀폐성이 높아졌고, 전통 한옥처럼 자연스럽게 바람이 드나드는 구조는 아니다.
바꿔 말하자면, 그것은 생토마토가 아니라 ‘토마토케첩’에 가깝다.
케첩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케첩은 싸고, 보관이 쉽고, 대량 생산이 가능해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다만 케첩은 생토마토가 아니다. 미국의 목조주택이 딱 그렇다.
그러나 미국이 이런 구조를 선택한 데에는 그들만의 이유가 있다.
첫째, 나무가 석유만큼 쏟아지는 나라다. 미국과 캐나다의 숲은 자연 그대로의 산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심고 기르고 베어내는 거대한 '나무 농장'이다. 한국은 나무를 수입해서 쓰지만, 미국은 수출도 하는 임업 강국이다.
둘째, '레미콘 90분의 법칙' 때문이다. 콘크리트 반죽은 공장에서 출하된 지 90분 안에 붓지 않으면 굳어버려 쓸 수 없다. 땅덩이가 좁은 한국은 어디든 배달이 가능하지만, 광활한 미국 땅에서는 레미콘 차가 닿을 수 없는 곳이 태반이다.
셋째, 살인적인 인건비다. 미국에서 콘크리트로 집을 지으려면 목조보다 훨씬 비싸다. 숙련된 기술자도 부족하다. 반면 경량 목구조는 망치와 못만 있으면 비숙련 이민자 노동자들도 몇 개월이면 뚝딱 지을 수 있다.
넷째, 그들에게 집은 평생 사는 곳이 아니다. 미국인은 평생 평균 11번 이사를 다닌다. 5년 살다 팔고, 또 사고, 또 판다. 한국인에게 집이 '대를 잇는 자산'이라면, 미국인에게 집은 '자동차보다 조금 큰 내구재'에 가깝다. 그런 집에 100년 갈 콘크리트를 부을 이유가 없다.
경량 목구조는 로망이 아니라 생존의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집이 건강할까. 빠르게 짓고, 밀폐해서 단열하고, 합판으로 막은 그 집 안의 공기는 정말 깨끗할까. 많은 이들이 나무니까 콘크리트보다 덜 해롭고 사람에게 더 좋을 거라고 믿는다. 하지만 캐나다 작가 앤절라 홉스의 이야기는 이 환상에 균열을 낸다.
그녀는 브리티시컬럼비아의 한적한 마을에서 오래된 목조주택을 리모델링했다. 처음 1년은 괜찮았다. 나무 향기가 집안을 채웠고, 창밖으로 숲이 보였다.
문제는 2년째부터 시작되었다. 원인 모를 증상들이 시작되었다. 의사는 원인을 찾지 못했고 항우울제를 처방했다. 하지만 집을 떠나 있을 때는 증상이 사라졌다.
그녀는 벽을 뜯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습기를 머금은 구조재와 축축하게 젖은 유리섬유 단열재 사이로 곰팡이가 번식하고 있었고, 합판의 접착제에서 나온 화학물질이 밀폐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바람길을 잃은 집이 그녀를 공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책을 썼다. 『Sick House Survival Guide』 제목 그대로, 아픈 집에서 살아남는 법이었다.
그녀의 경험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다. 문제는, 그녀도 그녀를 진찰했던 의사도 자신이 겪고 있는 증상이 집 때문이라는 걸 몰랐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시기, 건축 자재에서 VOCs(휘발성 유기화합물)가 대량 방출된다는 사실은 이미 업계에 알려져 있었다.
소비자는 몰랐지만, 공급자도 정말 몰랐을까. 태평양 건너, 한국의 현장에서도 똑같은 질문이 반복되고 있었다.
해변에서 공원까지, 나무는 죄가 없다
얼마 전 서해안의 한 섬을 걷다, 오래된 보행 데크 앞에서 걸음을 멈춘 적이 있다. 멀리서 보면 그저 낡아 보이는 데크였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는 순간, "이 데크가 왜 이렇게 일찍 무너졌는지" 모든 이유가 한 번에 보였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나무가 썩어서 무너진 거지."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데크 표면의 나무는 아직 제 모양을 버리지 않았다. 색이 바래고 표면이 갈라졌을 뿐, 나무 자체는 버텨내고 있었다.
진짜 문제는 그 밑이었다. 철골 구조물이 바닷바람에 녹아 붉게 부풀어 있었고, 나무를 고정하던 피스(나사)들은 이미 녹물로 일그러져 돌처럼 굳어 있었다.
해안이라면 당연히 스테인리스나 용융아연도금 강재를 써야 한다. 하지만 이 현장은 몇 푼 아끼려는 듯, 얇게 방청페인트만 바른 일반 철재를 썼다. 결과는 너무나 단순하다. 염분은 철을 갉아먹고, 철이 무너지면, 아무리 좋은 나무도 함께 무너진다. 나무가 아니라, 그 나무를 받쳐줘야 할 사람의 선택이 먼저 무너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장은 그곳만이 아니었다. 며칠 뒤 서울의 한 공원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보았다. 주말이라 공사 인부도 없어, 나는 천천히 시공 중인 데크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재료는 나쁘지 않았다. 모양새를 갖춰가는 강재 구조물, 가지런히 나열된 열대 하드우드 데크재. 자재만 놓고 보면 별 문제는 없어 보였다. "이번엔 제대로 하려나" 싶은 마음으로 둘러보던 참이었다.
그런데 발밑을 보는 순간, 깊은 한숨이 나왔다. 지면과 데크 하부 사이가 5~8cm. 성인 남자 주먹 하나 들어갈까 말까 한 높이. 통풍이 되지 않는 구조였다. 어떤 구간은 구조재가 흙에 닿기 직전이었고, 그 아래에는 자갈 배수층도, 제초매트도 없었다. 비가 오면 토양에서 습기가 올라오고, 그 습기는 빠져나갈 길 없이 갇히게 된다.
아무리 비싼 목재를 깔아도, 아무리 도금 강재를 써도 나무 밑에 '바람길'이 없다면 그곳은 곧 습기로 가득한 작은 지하실이 된다. 3년 안에 뒤판이 까맣게 썩어 교체 공사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는 현장에서 이런 장면을 셀 수 없이 봐왔다. 그리고 한 가지 진실만은 확신한다. 나무는 비를 맞아서 썩지 않는다. 젖은 채로, 마르지 못해서 썩는다. 좋은 데크의 첫 번째 조건은 좋은 목재가 아니라, 잘 마를 수 있는 구조다.
나무는 정직한 재료다. 습하면 썩고, 마르면 산다. 수종이 달라도, 가격이 달라도 변하지 않는 자연의 법칙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원리가 예산 절감, 공사 기간 단축, 혹은 그저 '몰라서'라는 이유로 너무 쉽게 무시된다. 철재 몇 만 원을 아끼다가 수억짜리 산책로가 내려앉고, 바람길 10cm를 확보하지 않아 3년 뒤 전체 교체 공사에 들어가는 식이다.
나무가 썩는 게 아니다. 사람이 나무를 썩게 만드는 것이다.
환경병 시대, 나무집의 환상
2000년대 초반부터 회사로 들어오는 문의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 방 책상과 서랍장을 원목으로 만들려고요. 아토피가 심해서 원목가구로 바꿔볼까 하고요."
"새 건물이라 페인트 냄새가 너무 심해서, 사무실 인테리어에 쓸만한 나무 좀 추천해 주세요."
그 무렵, 한국 사회는 세 가지 변화가 같은 시기에 겹쳤다. 하나는 아토피 아이들의 급증이었고, 다른 하나는 급격히 변한 식습관 문제였고, 또 하나는 새집증후군이 사회적 의제가 된 것이었다.
세 현상이 같은 시기에 나타난 건 우연일까. 아파트는 점점 밀폐형으로 진화했고, 실내 생활시간은 늘어났다. 식탁에는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이 늘었고, 벽 속에는 접착제와 단열재가 들어갔다.
정확한 인과관계는 아직 불분명하다. 하지만 '환경성 질환'이라는 담론이 이 시기에 형성된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환경성 질환에 대한 담론은 기존 콘크리트 주거 환경에 대한 불신을 낳았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사람들은 자연에서 유래한 천연 재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가공식품이 문제니까 유기농을 찾고, 콘크리트가 문제니까 친환경 자재를 찾는 식이었다.
하지만 앞서 본 것처럼, 나무집이라고 해서 안전한 게 아니다. 미국의 앤절라 홉스가 경험한 것처럼, 잘못 지은 나무집은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재료 자체의 등급과 품질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재료에 대한 이해다.
나는 상담할 때마다 손님들에게 말한다.
"비싼 나무가 좋은 나무가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 정작 나무를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합니다. 100점짜리 만족을 원하시면 50점은 '자재', 나머지 50점은 '시공'을 꼼꼼히 챙기셔야 합니다."
좋은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되면 독이 되듯, 좋은 자재를 바르게 쓰지 못하면 독이 된다. 올바른 자재가 유익한 공간을 만들고, 정직한 음식이 건강한 육신을 만든다. 하지만 그 올바름과 정직함은 재료 자체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루는 방식에서 크게 좌우된다.
집 짓다 앓아눕는다'는 말도 이제 옛말
서해안 데크를 보고, 서울 현장을 보고 나서 이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미국 드라마 속 그 집은 정말 우리가 꿈꾸는 치유의 공간일까.
그 집을 지탱하는 구조와 현실을 들여다보면, 그곳 역시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은 나무가 썩는 문제와 싸우고, 한국은 콘크리트가 갈라지는 문제와 싸운다. 재료는 달라도, 자본의 논리가 주택의 품질을 결정하는 구조는 똑같다.
우리가 어떤 집에 살지의 문제는 어쩌면 취향이 아니라 현실일지 모른다. 미국인은 아파트에 살고 싶어도 그렇게 짓는 인프라가 없고, 한국인은 제대로 된 목조주택을 짓고 싶어도 시공 생태계와 유지관리 비용이 받쳐주지 못한다.
그러니 중요한 건 환상을 좇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환경 속에서 최적의 선택을 찾는 일이다. 목조주택을 포기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제대로 지으면 콘크리트보다 나을 수 있다. 문제는 그 '제대로'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고, 그것을 시공사에게 요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비싼 자재를 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물건은 다이소에도 있는 법이다. 중요한 건, 세상에 나쁜 재료는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불합리한 선택과, 부적절한 시공이 있을 뿐이다.
실제로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서울 공원에서 찍었던 사진 몇 장을 AI에게 보여주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장면이었다. 자재는 좋았고, 강재 구조도 보기엔 단정했다. 그러나 AI는 사진을 보자마자, 숨을 고를 틈도 없이 이렇게 말했다.
“자재가 문제이기 전에 구조적 실패가 이미 예정돼 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거의 감정 없는 판정문이었다.
“데크 하부 공간 7~8cm. 이는 천연 하드우드 19mm 기준 통풍 최소치(30~40cm)의 1/4 수준입니다. 이 간격에서는 비가 한 번만 와도 수증기가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진 한 귀퉁이, 흙과 구조재가 맞닿을 듯한 1cm 틈을 확대해 분석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흙과 구조재 간격이 10mm 이하인 지점이 있습니다. 이 상태라면 장선과 뒤판은 2~3년 안에 습기로 인해 푸르게 변색되는 ‘청변(Blue Stain)’과 목재가 물러지는 ‘연부후(Soft Rot)’가 동시에 진행됩니다.”
나는 AI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내 눈을 의심케 했던 그 '얇은 두께'에 대해서였다.
“이 현장, 공공시설인데 판재 두께가 19mm야. 이거 문제 있는 거 아니니?”
녀석은 기다렸다는 듯 팩트를 쏟아냈다.
“정확합니다. 19mm는 주거용(Residential) 뒷마당 규격입니다. 다중 이용 시설물인 공공 데크(Commercial Boardwalk)의 국제 표준은 최소 25mm(1인치) 이상입니다. 공공시설에 가정용 스펙을 적용했습니다. 내구연한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마지막은 거의 최종 선고 같았다.
“이 구조라면 나무가 먼저 썩는 것이 아니라 ‘구조 전체가 숨을 못 쉬어’ 실패합니다. 자재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시공 디테일의 문제입니다.”
나는 화면을 잠시 바라보다가 웃음이 나왔다. 17년 동안 현장 경험을 통해 익혀온 내용들을, AI는 사진 몇 장에서 즉시 추출해 냈다.
이게 얼마나 큰 변화인지 아는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집에 데크를 설치하려는 일반인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목재 업계에 아는 사람이 없으면, 인터넷에서 업체를 검색해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데크 설치 얼마 정도 하나요?" "어떤 나무가 좋은가요?"
업체는 친절하게 답한다.
"이 나무 좋습니다. 두께는 19mm면 충분하고요. 하부 공간? 그냥 10cm 정도만 띄우면 됩니다."
그 말이 맞는지 틀린 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주변에 물어봐도 모른다. '집 짓다가 앓아눕는다'는 속담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정보 비대칭 앞에서 일반인은 무력하다.
그런데 시대가 바뀌었다. 이제는 다르다. 시공 전에 AI에게 물어볼 수 있다. 집 데크를 만들 때 뭘 확인해야 하는지, 하부 공간은 얼마나 띄워야 하는지, 19mm 두께면 충분한지. AI도 완벽하진 않다. 가끔 틀린 답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대화를 나누다 보면 기본 지식이 생긴다는 것이다. 하부 공간이 뭔지, 왜 통풍이 중요한지, 목재 두께가 하중과 관련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상태로 업체와 통화하면 달라진다.
"알아보니까 하부 공간이 중요하던데, 여기는 어떻게 시공하시나요?"
"목재가 19mm 두께면 공공시설엔 좀 얇다고 하던데, 괜찮은 건가요?"
질문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전부다.
업체가 "원래 다 이렇게 합니다"라고 얼버무리면, 그 업체는 거른다. "아, 하부 공간 말씀이시죠? 최소 30cm는 확보합니다"라고 구체적으로 답하는 업체를 찾는다. 거짓말하는 업체만 걸러낼 수 있어도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의심스러우면 찍어 물어보라. 업체의 말이 찜찜하면 AI에게 확인해 보라. AI가 항상 옳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당신에게 물어볼 상대는 생겼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당신은 조금씩 알아간다.
아무리 주변에 수소문하고 인터넷을 검색해도 '정직한 업체'를 찾는 건 운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AI와 대화하며 기본을 익히고, 그 지식으로 업체를 검증할 수 있다. '집 짓다가 앓아눕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최소한 무방비 상태로 당하진 않아도 되니까.
데크목재는 말이 없다. 하지만 그냥 맥없이 썩는 법은 없다. 사람이 썩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지금, 그 정직함을 확인해 줄 도구는 이미 당신 손안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