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과 학생들이 목재 창고에서 발견한 것
며칠 전, 건축공학과 학부생 네 명이 유림목재를 찾아왔다. 본관에서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방문 배경을 물으니, '건축 자재의 물성'을 조사하는 과제가 있다고 했다.
"콘크리트나 철은 학교에서 자주 다루는데, 목재는 오히려 생소해서 직접 보고 싶었어요."
건축을 배우는 학생들이 인류가 가장 오래 써온 재료를 가장 낯설어한다는 역설. 어디서부터 설명을 시작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목재는 말보다 눈으로 보는 게 빠르다.
학생들과 함께 본관 앞 HQ-1동 숙성창고로 향했다. 열기건조(kiln dried) 된 목재를 숙성시키는 공간이다.
창고에 들어서자, 목재 특유의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양옆으로 목재 번들이 높이 쌓여 있는 광경에 학생들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곧바로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나무는 종류가 뭔가요?"
"이탈리아산 참나무입니다. 국내에 주로 알려진 참나무는 북미산 레드오크와 화이트오크죠. 인테리어 마감재나 가구재로 씁니다."
"오크는 외장재로도 쓸 수 있나요? 레드오크와 화이트오크는 뭐가 다른가요?"
레드오크와 화이트오크. 이름도 비슷하고 겉모습도 비슷한 이 두 나무는, 사실 완전히 다른 운명을 타고났다. 그 차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도관'이라는 미세한 구조에 있다.
화이트오크는 도관 안에 '타일로시스(tyloses)'라는 얇은 막이 발달해 있다. 이 막이 물을 차단한다. 덕분에 예전부터 위스키 오크통, 선박재, 실외 구조재로 쓰였다.
레드오크는 도관이 뚫려 있다. 빨대처럼 물이 그대로 빨려 들어간다. 비를 맞으면 수분이 내부까지 스며들고, 시간이 지나면 변색이 시작된다.
학생들에게 "레드오크도 외장재로 쓸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예전 공장 전시실의 한 공간이 떠올랐다. 지금은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그곳에는 같은 시기에 시공한 레드오크 벽과 문이 있었다. 햇빛과 빗물 노출 정도에 따라 어떤 부분은 밝은 나무색 그대로인 반면, 어떤 부분은 짙은 갈색으로, 심하게는 거무스름하게 변해 있었다.
몇 년간 매일 그 공간을 지나며 레드오크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목격했다. 하자는 아니지만 얼룩덜룩한 색상 변화는 미관상 좋지 않다. 같은 오크라도 수분 반응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레드오크는 주로 실내용으로 권한다.
학생들은 쌓여 있는 원목들을 보며 또 물었다.
"이런 나무들은 구조용으로도 쓰이나요?"
우리가 다루는 특수목은 주로 인테리어 마감재나 가구재로 쓰인다. 구조재는 별도 규격의 침엽수(SPF, 더글러스퍼 등)를 사용한다고 대답했다. 아니나 다를까, 목재 회사에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이어졌다.
"목재는 변형되지 않나요?"
"네, 변형됩니다."
솔직하게 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런데 그건 목재의 약점이 아니라 성질입니다."
철과 콘크리트는 온도에 반응한다. 여름 열기에 팽창하고 겨울 냉기에 수축한다. 단순한 물리학이다. 그리고 그 변형은 모든 방향으로 일정하게 일어난다.
목재는 다르다. 목재는 습도에 반응한다. 나무는 거대한 '목섬유(Wood Fiber)의 다발'이기 때문이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가늘고 긴 빨대 같은 섬유 세포들이 빽빽하게 뭉쳐 있는 구조다.
이 섬유 조직은 수분을 만나면 마른 국수가 물에 젖듯 반응한다. 길이는 거의 그대로인데 통통하게 불어난다.
철이 열을 받아 사방으로 늘어나는 것과 달리, 나무는 섬유가 묶인 길이 방향(나뭇결 방향)으로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대신 섬유가 겹쳐 있는 폭과 두께 방향(나이테 방향)으로만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른다. 이것이 목재가 가진 고유의 '이방성(Anisotropy)'이다.
100mm 넓이의 오크 판재가 겨울철 건조한 날씨에 3~4mm씩 줄어드는 건 예사다. 마루를 깔면 겨울마다 판 사이에 틈이 벌어지는 것도 이 미세한 섬유들이 수분을 뱉어내며 홀쭉해졌기 때문이다.
이 현상은 고장이 아니다. 무기질 재료가 열에 반응하듯, 목재라는 유기체가 주변 수분과 평형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숨 쉬는 자연스러운 호흡이다.
숙성창고는 바로 이 시간을 견디는 장소다. 갓 제재된 생재는 수분이 너무 많아 수축과 뒤틀림이 크게 일어난다. 그래서 건조와 숙성을 반복하며 수분 함유량을 낮추고, 다시 이곳에서 온도와 습도에 천천히 적응시킨다.
오랜 세월 숲에 서 있던 나무가 이제 집과 가구의 일부로 살아가기 위해 두 번째 생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목재는 움직이는 재료다. 이 특성 앞에서 인간은 두 가지 선택지를 가질 수 있었다. 억지로 고정시키거나, 움직임을 품도록 구조를 설계하거나. 억지로 고정시키니 목재는 터지고 휘었다. 인류는 두 번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세대를 거치며 한국의 목수들은 나무의 수축과 팽창, 뒤틀림을 정확히 이해했고 그 움직임을 흡수하는 '결구(結構)' 기법을 발전시켰다. 장부맞춤, 이음맞춤, 주먹장맞춤, 연귀맞춤, 쪽매맞춤. 못 하나 쓰지 않고도 목재가 계절 변화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드는 공간을 남기면서 전체 구조는 단단히 유지되도록 고안된 기술이다.
특히 주먹장맞춤은 나무가 마를수록 오히려 더 단단히 조여지는 구조다. 나무의 수축을 억제하는 게 아니라 그 에너지를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한옥의 들보와 기둥이 수백 년간 계절 변화와 상관없이 버텨온 이유다.
서양도 비슷한 길을 걸었다. Mortise & Tenon(장부 촉이음), Dovetail(주먹장 이음), Lap Joint(턱 이음), Finger Joint(손가락 이음), Floating Panel(부유 패널) 등 다양한 조이너리(Joinery) 기법을 사용해 목제품을 제작했다.
모든 기술의 핵심은 하나다. 변하지 않는 목재를 만들려 하지 말고, 변하는 목재를 구조 자체가 받아낼 수 있게 하라. 목공 기술은 재료의 한계를 극복하는 손재주가 아니다. 재료의 본성을 이해한 사람들이 만든 지혜의 총합이다.
학생들과의 대화를 마무리하며 물었다.
"인류 역사에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는 있는데 왜 '목기시대'는 없을까요?"
학생들은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나무는 썩어서 남지 않으니까요?"
맞다. 돌은 남고, 청동은 남고, 철은 녹슬어도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나무는 부패하고 분해되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그래서 목기(木器)는 시대 이름으로 채택될 기회를 잃었다.
사실 1990년대 독일 쇠링겐 갈탄 광산에서 40만 년 전 것으로 추정되는 목재 창들이 발굴된 적이 있다. 석기시대보다 훨씬 이전에 인류가 이미 정교한 목재 가공 기술을 보유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이런 발견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목기는 시간 속에서 사라졌고, 그래서 우리는 '목기시대'라는 이름을 역사책에서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그 사실이 목재의 존재감을 약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인류가 만든 가장 오래된 도구는 돌보다 나무였을 가능성이 크다.
돌과 금속은 시대를 구분했지만, 나무는 시대를 가로지르며 인간을 감싸왔다. 불을 피우고, 집을 짓고, 배를 만들고, 음식을 저장하고, 악기를 만들고, 아이를 요람에 재우고, 목관에 누워 세상에 이별을 고하는 순간까지. 나무는 인류의 삶 깊숙한 곳에 있었다.
생각해보면 목기시대는 한 번도 끝난 적이 없다. 오히려 너무 오래 계속되어 '시대'라는 이름을 붙이기 어려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기후위기가 일상이 되고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이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된 지금,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앞으로 무엇으로 지어야 하는가.
돌과 철, 플라스틱과 콘크리트는 채굴과 가공, 폐기 과정에서 탄소를 막대하게 배출한다. 특히 시멘트 산업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7~8%를 차지한다. 하지만 나무는 자라는 동안 이산화탄소를 저장하고, 집과 가구로 사용되는 동안 그 탄소를 붙잡아 두며, 다시 숲으로 순환할 수 있는 유일한 재생 가능 건축 자원이다.
목재 1m³는 약 250kg의 탄소를 저장하는 살아 있는 창고다. 이는 대기 중 약 900kg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 것에 해당한다. 그리고 잘 관리된 숲은 베고 다시 심을수록 어린 나무들이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인다.
유럽은 2040년까지 공공건축물을 목재 우선으로 짓겠다고 법을 만들고 있고, 일본은 3층 이상 목조 건축을 전면 개방했으며, 한국도 올해 30층 목조 실증건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CLT(Cross-Laminated Timber) 같은 공학목재의 등장은 목재가 고층 건축물을 비롯한 더 넓은 영역에서 사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CLT는 목재 판을 여러 겹 교차로 접착해 층마다 다른 방향으로 변형을 상쇄시키는 구조로, 개별 목재의 약점을 극복하면서도 탄소 저장 기능은 그대로 유지한다.
물론 목재는 화재나 해충에 취약하다는 오랜 편견이 있다. 하지만 현대 목조 건축은 방화 처리와 내화 설계로 콘크리트 못지않은 안전성을 확보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목재는 전통의 재료가 아니라 가장 현대적이고, 가장 지속 가능한 재료가 된다.
견학을 마무리하며 학생들에게 말했다.
"앞으로 여러분이 열어갈 시대야말로 진짜 목기시대가 될 겁니다. 지속 가능한 숲을 만들고, 그 숲에서 얻은 자원을 다시 순환시키는 방식으로 지어야 다음 세대가 숨 쉴 수 있을 테니까요."
학생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이는 재료, 목재를 앞에 두고 현재와 미래가 말없이 이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학생들을 배웅한 뒤 다시 숙성창고로 발길을 돌렸다. 높이 쌓인 목재 번들 사이를 지나 사무실로 향하며 40만 년 전 창을 깎았던 사람들을 잠시 상상해 본다.
목기시대는 끝난 적이 없다. 다만 너무 오래 계속되어 우리가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