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가 지니 사람이 떠났고, 브랜드가 되니 사람이 몰렸다
동대문 의류상가는 한때 한국 패션 산업의 심장이었다. 밤새 불이 꺼지지 않았고, 트렌드는 이곳에서 만들어져 전국으로 퍼졌다. 빠른 기획, 소량 생산, 즉각적인 반응. 'K-보세'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소상공인과 제조 기반이 맞물려 돌아갔다.
그런데 지금, 그 상가는 텅 비어 있다. 사람들은 흔히 경기 침체나 온라인 전환을 이유로 드는데, 그것은 원인이라기보다 결과에 가까운 설명이다. 경기가 나빠진 것은 동대문만의 일이 아니고, 온라인 유통은 이미 10년도 넘게 확산돼 왔다. 문제는 언제부터 비기 시작했는가가 아니라, 왜 회복되지 못하는가에 있다.
동대문은 매출을 잃은 것이 아니라, 플랫폼의 자리를 잃었다. 과거의 동대문은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이었다. 디자이너, 봉제 공장, 도매상, 소매상이 느슨하게 연결된 연대형 생태계였는데, 플랫폼의 기준이 바뀌는 순간 그 연대는 강점이 아니라 족쇄가 되었다.
지금의 시장은 묻는다. 누가 더 싸게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누가 취향을 설계하고 경험을 제안할 수 있는가를.
이 질문에 가장 먼저 조직적으로 반응한 쪽은 대기업 유통이었다. 백화점은 물건을 파는 장소라는 정의를 내려놓고, 공간 자체를 실험의 대상으로 삼았다. 층마다 역할을 부여하고, 동선을 설계하며, 소비자의 반응을 보고 다시 고치는 방식을 택했다.
반면 동대문은 이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누가 결정할 것인가, 누가 손해를 감당할 것인가, 누가 실패를 책임질 것인가. 조직화된 대기업 유통은 공간을 바꾸고, 반응을 살피고, 다시 고칠 수 있지만, 연대형 구조의 산업은 합의와 손실 분담이라는 현실 앞에서 좀처럼 움직이기 어렵다. 그 차이가, 지금의 풍경을 갈라놓았다.
동대문에서 빠져나간 소비자는 어디로 갔을까. 온라인 쇼핑몰로만 이동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사람들은 여전히 오프라인을 찾고 있다. 다만, 소비의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성수동이나 연남동 같은 지역이 붐비기 시작한 것도 그 변화의 한 단면이다. 이곳에서 소비자는 더 이상 특정 매장을 목표로 움직이지 않는다. 동선을 따라 걷고, 우연히 들르고, 머물다 나온다. 구매는 목적이 아니라 경험을 따라오다 남는 결과에 가깝다.
하지만 취향을 앞세운 소규모 공간들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팬데믹을 거치며 빠르게 늘어났던 소품숍들 가운데 일부는, 지금 새로운 국면 앞에 서 있다.
소비자가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직접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단순 사입과 가격 차별에 기대던 공간들은 자신만의 이유를 다시 설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문제는 경쟁력이 사라졌다는 데 있다기보다, 그 공간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더 이상 말해주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갈림길이 생긴다. 어떤 곳은 흐름에 맞춰 다시 형태를 바꾸고, 어떤 곳은 조용히 자리를 정리한다.
그리고 드물게, 처음부터 유행과 다른 속도로 걸어온 공간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모두가 변신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정반대의 전략으로 살아남는 공간들이다. 오래된 평양냉면집, 지역의 빵집, 특정 음식 하나로 수십 년을 버텨온 가게들이다. 이들은 바꾸지 않는다. 메뉴도, 방식도, 태도도 쉽게 바꾸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고집이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누군가는 그곳을 '성지'라 부르고, 방문 자체를 '순례'에 빗댄다. 이런 공간이 특별한 이유는 트렌드를 이겨서가 아니다. 그들은 주변의 변화에 한 눈 팔지 않고, 제 갈 길을 갔다. 아주 오랫동안 걸음을 멈추지 않은 그들을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했다. 결국 그들은 트렌드를 넘어 브랜드가 됐다.
성지는 업종이 드러나는 단계를 넘어 하나의 세계관을 구축한 브랜드가 점유한 물리적 영토다. 대전의 성심당이 단순한 빵집이 아니라 도시의 자부심을 파는 공간이 되었고, 부산의 삼진어묵이 어묵을 베이커리의 문법으로 재해석했듯, 이들은 시간을 견디며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빅데이터가 설명할 수 없는 신뢰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성지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화려한 연출이 아니라, 무엇을 추구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다.
모두가 변신해야 산다는 말은 아니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바뀌며 살아남고, 누군가는 자기 색깔을 짙게하면서 남는다. 다만 어느 쪽에도 서지 못한 공간들은 변화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자신의 이유를 증명해야 하는 순간을 가장 먼저 맞는다.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상가와 일부러 찾아오는 공간을 지켜보다 보면, 그 질문은 어느 순간 나에게도 칼끝을 겨눈다. 이건 대기업이나 유명 상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오래 몸담아온 산업의 현장에서도, 같은 갈림길이 반복돼 왔다.
1986년 창립된 유림목재. 나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나무를 제재하고, 건조해서 만든 목재를 가공해 국내 여러 공사 현장에 공급해왔다. 유행과는 거리가 먼 산업이고, 플랫폼이라는 말과도 잘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영역이다.
돌이켜보면 목재 산업 현장에서도 지난 십수 년간 여러 변화가 있었다. 원목마루가 대중화되며 마루 시장에 목재회사가 너나없이 뛰어든 시기도 있었고, 둘레길 조성 붐 속에서 목재데크 시장이 급팽창한 적도 있었다. 수제 원목 가구 열풍이 불었던 시기, 우드슬랩 테이블 인기가 치솟았던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수많은 목재 관련 업체들이 생겨나고 사라졌다.
우리 역시 매번 선택의 갈림길 앞에 서 있었다. 그때마다 트렌드를 좇아 변신하기보다, 우리가 축적해온 시간과 현장, 나무를 다뤄온 생각과 방식을 드러내는 쪽을 선택해왔다. 그 선택들이 늘 옳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선택들이 쌓여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1990년대 초반 준공한 예재관과 이후 꾸준한 증·개축을 거친 목재문화원은 국내외 100여 종에 가까운 목재 수종을 각부 용도에 맞게 시공한 종합 목재 실용 전시장이다. 연간 수백 명의 건축·인테리어 전문가, 건축주, 목수와 목공인, 관련 학과 학생들이 이 공간을 찾았다. 그들이 남기고 간 방명록은, 우리가 어떤 현장에 서 있었는지를 조용히 증명하는 기록이자 회사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후 2010년대 초반 공식 블로그를 열고, 목재 실용 매거진 『우드플래닛』 후원을 시작했다. 우리는 블로그를 통해 목재 상담부터 납품·시공·완공에 이르는 전 과정을 기록해 왔고, 『우드플래닛』은 나무가 목재가 되고, 목재가 제품과 작품이 되는 과정을 대중의 언어로 전해왔다. 현재 『우드플래닛』은 온라인 매체로 전환해 지금도 그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지금도 늘 생산 현장에 있다. 숫자보다 나무의 상태를 먼저 보고, 계절과 수분, 시간의 변화를 더 민감하게 읽는다. 그런 우리가 지금 ‘우드’라는 정체성을 중심에 두고, 현장 안에 또 하나의 작은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원목으로 만든 소품과 오브제를 통해 목재의 아기자기한 쓰임을 찬찬히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 공간 한켠에는 책장을 마련해 서가를 꾸미고, 테이블과 의자를 두어 창간호부터 마지막 발행호까지 74권의 우드플래닛 잡지를 누구나 꺼내어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목재 산업의 현장과 사람, 쓰임과 기술을 기록해온 시간들을 한 자리에서 마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이런 선택들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지난 40년 동안 트렌드를 좇아 취급 품목을 바꾸며 방향을 틀지 않았다. 대신 우리가 축적해온 시간과 현장, 나무를 다뤄온 방식 자체를 그대로 드러내왔다. 이제까지는 목재 도슨트처럼 공장을 안내하며 설명했다면, 앞으로는 방문객이 스스로 기록과 물성을 오가며 자유롭게 머물 수 있도록 만들려 한다.
물론 이게 정답이라는 확신은 없다. 이건 성수동식 변화도 아니고, 백화점식 리모델링도 아니다. 오히려 무엇을 추구할 것인가를 의식적으로 선택한 결정에 가깝다.
모든 기업이 대형 플랫폼이 될 수는 없다. 모든 상권이 리모델링되기도 어렵다. 중요한 것은 우리만 제공할 수 있는 경험과 가치는 무엇인가, 그 질문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가다. 그리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이번에는 무엇을 바꿀 것인가의 문제다.
어쩌면 동대문이 잃은 것은 고객이 아니라 바로 이 질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시장은 계속 변해왔다. 소비자의 취향은 더 잘게 나뉘고, 트렌드의 수명은 더 짧아졌다. 그럴수록 정체성이 분명한 브랜드는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입소문과 SNS를 타고 더 멀리까지 도달한다.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는가. 무엇을 끝내 지켜야 하고, 무엇을 지금 바꿔야 하는가. 그 선택과 변화의 여정에서 우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마주치게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