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질 수 있는 말이 조직의 신뢰를 만든다
친애하는 식구 여러분께,
새해를 맞아, 우리가 함께 일하는 이 공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이곳이 우리 각자의 삶에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잠시 멈춰 돌아보고 싶습니다.
회사는 단순히 일하고 월급을 받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이 모여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거나 잃어가는 작은 사회입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는 신뢰가 빠르게 소진되고 있습니다. 갈등은 커지고, 서로에게 기대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사회 전체보다, 우리가 매일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실제로 최근 국내 연구기관이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은 한국 사회의 갈등 수준이 심각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경영자와 노동자 사이,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갈등 인식이 가장 높게 나타났습니다. 더 걱정스러운 점은, 이런 환경 속에서 사람들이 점점 공동체보다 개인의 생존을 먼저 고민하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곤경에 처했을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우리나라 국민 다수는 2~5명이라고 답했습니다. 청년 세 명 중 한 명은 번아웃(극도의 정신적 탈진)을 경험했고, 자신의 소득에 만족한다고 말한 비율은 30%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곤경에 처했을 때 기댈 사람이 줄고, 타인을 쉽게 믿기 어려운 사회에서 개인화는 더 이상 취향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우리가 매일 몸담고 있는 직장에서 가장 직접적인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제 많은 직장에서 녹음은 선택이 아니라 기본값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말은 왜곡될 수 있고, 책임은 부정될 수 있으며, 위계가 있는 쪽이 유리하다는 경험을 사람들은 이미 학습했기 때문입니다.
신뢰가 흔들릴수록 사람들은 더 이상 참고 견디지 않습니다. 대신 기록을 남깁니다. 공무원은 민원인에게 인사를 건네기 전 녹음기를 먼저 켜고, 메신저 서비스를 통해 나눈 대화나 녹취록을 통한 폭로가 일상적인 사회상이 됐습니다.
문제는 이 방어적 기록 문화가 개인의 불안을 줄이는 대신, 사람 사이의 관계를 점점 방어적이고 사무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점입니다. 말 한마디, 지시 하나가 언제든 증거로 남을 수 있다는 전제는 대화를 조심스럽게 만들고,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기 어렵게 만들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가로막습니다.
이렇게 쌓인 긴장은 결국 조직의 에너지가 성과가 아니라 갈등을 관리하는 쪽으로 소모됩니다. 일의 방향을 잡고 성과를 쌓아야 할 자원이 관계를 진정시키는 데 소모되면서, 조직은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제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결국 냉랭한 분위기와 무뚝뚝한 대화가 근무 일상을 채우고, 회사의 활기와 생명력은 서서히 쇠잔해져 갑니다.
점점 더 많은 기업이 이중의 긴장 속에서 활기를 잃어가고 있습니다. 한쪽에는 자신의 권리와 요구를 분명히 말하지만 조직에 대한 신뢰는 낮은 젊은 구성원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변화보다 자리를 지키는 데 익숙해져 책임은 피하면서 권한은 유지하려는 중장년 구성원이 있습니다.
이런 긴장이 누적될수록, 조직은 사람을 설득하고 조정하는 방식에 점점 피로를 느끼게 됩니다. 내부의 갈등을 다루는 대신, 구조 자체를 단순화하려는 유혹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지점에서 로봇이나 인공지능(AI)을 통한 '자동화'와 '무인화'가 답이라는 대안이 설득력을 얻습니다.
2025년은 ‘인공지능(AI)’와 ‘희망퇴직’이라는 단어가 유난히 자주 들린 해로 기억될지도 모릅니다. AI는 이제 단순한 생산성 도구를 넘어, 인력 재편을 ‘불가피한 혁신’으로 설명하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경기 침체와 비용 압박, 구조조정의 필요가 먼저였고, 인공지능(AI)은 그 흐름을 설명하고 정당화하는 언어가 됐습니다.
그 결과 조직은 하나의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어떤 사람을 내보내고, 어떤 사람을 붙들어야 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일자리는 점점 더 선별적인 것이 되고, 사람들의 일자리 불안이 그만큼 커지고 있는 게 지금 현대 사회가 마주한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최우선 가치로 두고 노력을 집중해야 할까요?
우리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은 사회의 축소판입니다. 새로운 규칙을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적용해 볼 수 있는 최소 단위이기도 합니다. 과거의 잘못된 선택들이 쌓여 오늘의 ‘신뢰가 사라진 사회’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그와 반대의 선택을 조금씩 반복하면 신뢰를 회복해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가오는 시대에 실무자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할 줄 아는가’보다 ‘어떤 태도로 일하는가’입니다. 앞으로 점점 더 많은 일은 AI가 대신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지금 우리가 해결할 문제를 함께 정의하고,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창의력을 발휘하고, 소통하며 협동해서 마무리 짓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입니다.
성실함과 인성은 이제 개인의 태도를 넘어, 공존하며 상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자 시대가 요구하는 생존력이 되고 있습니다. 신뢰가 가장 희소한 자원이 된 사회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그 어떤 자격증보다 확실한 대체 불가능성을 갖는 일입니다.
반면 직장의 책임자들에게는 실무 역량보다 성숙한 어른의 품격이 더 요구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품격은 인격의 높낮이가 아니라, 권한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사람을 다그치는 '꼰대' 관리자가 아니라, 젊은 세대를 인재로 키워내며 함께 성장하는 지도자. 지금 조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은 바로 그런 어른입니다.
저는 작년 초부터 회의나 면담을 할 때, 시작하기 전에 각자 스마트폰으로 녹음을 권하는 일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증거를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말과 태도를 스스로 점검하기 위해서입니다. 녹취를 다시 들으면 말의 뉘앙스와 힘의 방향이 훨씬 또렷해집니다. 책임 소재가 모호한 지시나 상대에게 부담을 떠넘길 수 있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한 번 더 돌아보게 됩니다.
이 방식을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갑니다. 큰 변화가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여전히 실수도 하고, 녹취를 다시 들으며 얼굴이 달아오르는 순간도 많습니다. 다만 분명히 달라진 점이 하나 있다면, 말을 꺼내기 전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이제 녹취는 저에게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의 의미가 됐습니다. 식구들의 반응 역시 처음엔 어색해했지만, 이제 대화 시작 전 녹음 앱을 켜고 스마트폰을 책상 위에 올려두는 게 익숙해졌습니다. 녹음한 회의 내용을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 서비스로 식구들끼리 주고받기도 하고, 종종 글로 옮겨져 온라인 공개 게시물로 올라오기도 합니다.
요즘 젊은 세대가 분노하는 건 권위 그 자체가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명령과 고압적인 태도입니다. 오늘날의 현실에서 네가 아랫사람이니까 받아들이라는 말보다, 내가 책임자니까 먼저 나서겠다는 태도가 어른이라는 말에 좀 더 가까워 보입니다. 우리 사회에 그런 솔선수범이 조금씩 늘어날수록, 위에서 흐르는 물도 서서히 맑아지고, 청년들의 표정 역시 점점 밝아질 거라 믿습니다.
회사(會社)와 사회(社會)는 순서만 다를 뿐 같은 글자로 이뤄져 있습니다. 사람이 모여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죠. 그래서 수많은 회사들은 각각 크고 작은 사회입니다.
사회를 바꾸자는 말은 자칫 막막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유림목재의 문화만큼은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스스로 더 나은 방향으로 가꿔갈 수 있습니다. 지위 고하를 논하기 전에, 같은 사회인으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신뢰를 두텁게 하고,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작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2026년 새해, 유림목재 안에서 애정 어린 시선과 속정 깃든 대화가 오가는 다정다감한 문화가 한층 더 깊어지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우리 가슴에 새겨진 다짐처럼, 올 한 해도 서로를 '밝은 마음'으로 대하며 화목한 한 해로 만들어갑시다.
2026년 1월 12일
조직문화연구실장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