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막을 것인가, 다르게 쓸 것인가

불신 사회, 신뢰는 기록에서 시작된다

by 우드코디BJ

호주는 2025년 12월 10일부터 16세 미만 청소년이 주요 SNS 플랫폼에 계정을 만들거나 유지하지 못하도록 하는 ‘최소 연령’ 규제를 시행했다. 이 제도는 아이·부모를 벌주는 방식이 아니라, 플랫폼이 합리적 조치로 연령 확인과 차단을 해야 하며, 반복 위반 시 최대 4,950만 호주달러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미국에서도 SNS를 둘러싼 우려는 커지고 있다. 미시간대 C.S. Mott 아동병원 전국 조사(2025년)는 학부모들이 “미국 아동·청소년에게 큰 문제”로 꼽는 이슈 1~2위에 소셜미디어(75%), 과도한 스크린 타임(75%)을 올려두었다. 영국, 덴마크, 노르웨이, 스페인, 이탈리아 등도 청소년 SNS 금지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운 교훈이 있다. 미국의 금주법은 밀주와 조직범죄를 키웠고, 마약 단속은 유통망을 더 정교하게 만들었고, 성매매 금지는 시장을 더 깊은 음지로 밀어 넣었다. 규제가 늘 실패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금지=해결’이라는 단순 공식이 자주 깨져왔다는 건 분명하다. 우리는 지금 ‘덜 쓰게 할 것인가’만 묻고 있지, ‘어떻게 다르게 쓰게 할 것인가’는 잘 묻지 않는다. SNS를 막는 게 정답이 아니라면, 그다음 질문은 하나다. 용도를 바꿀 수는 없을까.


재혼을 준비하는 50대 남성은 “전 부인이 성격이 안 맞아서” 헤어졌다고 했다. 3개월 만에 퇴사한 20대 신입사원도 “회사 문화가 안 맞아서” 나왔다고 했다. 둘의 대답은 왜 이렇게 닮았을까.


어느 결혼정보업체가 재혼 희망자 536명을 조사했더니, 전 배우자와의 갈등 원인으로 남성은 ‘성격·가치관’을, 여성은 ‘가정 경제’를 1순위로 꼽았다. 그런데 여성도 ‘성격·가치관’을 2순위로 꼽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최근 예비·신혼부부 대상 조사에서도 배우자 선택 기준의 1순위는 압도적으로 ‘성격과 가치관’이었다. 외모나 이미지, 경제력은 뒤로 밀렸다.


과거 ‘선 보고 결혼’하던 시절에는 집안, 직업, 경제력이 결혼의 언어였다. 1990년대 중반 결혼정보회사가 등장하면서 그 언어는 더 정교해졌다. 대기업 사원, 아파트, 자동차, 예물. 조건은 점수로 환산됐고, 스펙은 신뢰처럼 작동했다. 조건이 관계를 대신 설명해 주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 조건들로 결혼한 사람들이 이혼했다. “조건은 완벽했는데 성격이 안 맞더라”는 경험담이 쌓였다. 결국 배우자 선택의 기준이 ‘외모·경제력’에서 ‘성격·가치관’으로 이동한 건, 낭만의 승리라기보다 현실 지능의 상승에 가깝다. 외모와 경제력은 특정 시점의 ‘스냅샷’이지만, 성격과 가치관은 긴 시간에 걸쳐 형성된 인격의 ‘타임랩스’다. 조건은 ‘함께’를 허락하지만, 오래 ‘함께’하는 건 그 사람 속에 오랜 시간 새겨진 삶의 결이다.


묘하게도 비슷한 일이 채용 시장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요즘 채용의 대세는 ‘경력직’과 ‘수시채용’이다. 인사담당자들은 ‘직무역량’과 ‘컬처핏’을 본다고 말한다. 그런데 신입은 그 회사의 ‘직무’를 제대로 본 적도, 조직문화를 체감할 기회도 없다. 구직자 역시 입사 전에 그 회사의 리더십과 일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 길이 거의 없다.


실제로 조기퇴사 사유 조사에서 늘 상단을 차지하는 건 ‘직무 적합성 불일치’이고, 그다음에 빠지지 않는 것이 조직문화다. ‘경직된 분위기’, ‘수직적 위계’, ‘구시대적 관행’, ‘이해할 수 없는 업무 지시’. 결국 문제는 회사가 어떤 인격을 가졌는가였다. 결혼에서 ‘성격·가치관 불일치’가 갈등 원인 상단을 차지하던 구조와 닮았다.


문제는 스펙은 눈에 보이는데 사람의 성격과 가치관, 기업의 조직문화와 리더십은 함께 지내보기 전엔 잘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정보 비대칭이 큰 시장일수록 중개 플랫폼이 커진다. 결혼 시장의 결혼정보회사·데이팅앱, 채용 시장의 채용 플랫폼·기업 리뷰 사이트. 플랫폼이 제공하는 건 대개 정량화 가능한 표지들이다. 프로필, 스펙, 태그, 평점. 핵심은 직접 드러나기보다 이런 지표를 통해 추정될 뿐이다. 결국 인격은 가려지고, 조건만 부각된다. 그래서 미스매치는 반복된다.


ChatGPT Image 2026년 1월 20일 오후 12_48_23.png '정보 비대칭'은 불합리한 선택을 야기할 수 있다


지난 수년간 시장의 변화가 감지된다. 대중의 입에서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가짜와 연출이 일상이 된 시대에 ‘진짜’를 가늠할 근거를 찾는 욕구가 커진 것이다. 그래서 이제 원하는 것도 달라졌다. ‘스냅숏’이 아니라 ‘타임랩스’다. 한 장 짜리 자기소개서, 골라 뽑은 면접 답변, 편집된 기업 홍보 영상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쌓인 말과 태도의 궤적. 꾸민 장면이 아니라 누적된 흔적. 그 흔적이 담기는 대표적인 공간이 바로 SNS다.


SNS를 미화하자는 게 아니다. 도파민을 노린 설계, 편향이 강화되는 알고리즘, 분노를 부추기는 확산 구조, 허위 정보의 속도. SNS가 유해하다는 말이 왜 나오는지도 분명하다. 하지만 그 위험은 대개 SNS를 ‘과시의 무대’로 쓸 때 커진다. 과시는 비교를 부르고, 박탈감을 키운다. 용도를 바꾸면 달라진다. SNS를 나를 설명하는 기록 저장소로 만들면, 명함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질 수 있다. 결국 신뢰는 강한 주장이 아니라 쌓인 기록에서 생긴다. 내가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말할 때보다, 상대가 “너는 어떤 사람이구나”라고 말할 때 믿음이 깊어진다.


기록용 SNS 사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감정을 쏟아내기보다 판단의 근거를 남기면 된다. 주장만 던지지 말고, 그 생각이 어디서 왔고 어떻게 바뀌었는지 과정까지 적는다. 성과를 과시하기보다 일을 대하는 태도와 협업하는 방식을 남긴다. 소유물을 늘어놓기보다 나의 생각과 행동양식을 남긴다. 결국 ‘눈앞의 나’가 아니라 ‘누적된 나’, 즉 인격과 가치관이 기록되게 만드는 일이다.


물론 모든 SNS를 기록용으로만 써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친구들과의 수다와 사적인 순간은 여전히 필요하다. 해법은 간단하다. 계정을 나누면 된다. 사생활용 계정은 비공개로 두고, 기록용 계정은 공개하거나 선택적으로 공유한다. 링크드인으로 커리어를, 블로그나 브런치로 생각의 궤적을, 인스타그램으로 작업 과정을 남길 수도 있다. 어떤 SNS 플랫폼을 쓰든 상관없다. 핵심은 하나다. ‘사회인으로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남기는 것.


누군가는 이 ‘SNS 기록 격차’가 새로운 불평등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반은 맞다. 다만 기록의 격차는 완전히 새로운 불평등이라기보다 혈연·지연·학연, 학벌과 스펙처럼 한국 사회에 이미 존재하던 사회적 평가의 잣대가 디지털로 이동한 모습에 가깝다. 중요한 질문은 ‘불평등을 완벽히 없앨 수 있나’가 아니라, ‘정보 비대칭이 큰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서로를 조금 더 잘 이해하고, 덜 오해하며,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가’다.


기록의 격차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누가 선택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사전에 거르는 학벌·인맥 같은 표지보다는, ‘어떤 인격을 가졌고 삶의 가치관은 무엇인가’를 사후에 확인하는 시스템이 더 공정하지 않을까. 그리고 SNS는 대부분 무료다. ‘기록용 SNS’ 활용은 지금 이 시대에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자기 증명 방식이다.


SNS가 사회를 어지럽히는 원인으로 지목되는 지금이야말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사회적 인프라로 재인식해야 할 때다. 서로를 못 믿는 시대일수록 필요한 건 주장이 아니라 기록이다. 그리고 기록이 쌓이는 사회에서는 사람도 조직도 누적된 기록을 근거로 서로를 선택할 수 있다. 오래 ‘함께’하는 힘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근거가 쌓일 때 생긴다.


기자는 기사로, 작가는 작품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사회인에게도 그런 장치가 필요하다. 이름 그대로 '사회관계망서비스'인 SNS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SNS를 자랑의 무대가 아니라, 근거가 쌓이는 기록의 인프라로 쓰는 시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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