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듯, 좋은 목재도 가격순이 아니다

제재소에 견학 온 리빙가구디자인과 학생들이 던진 질문

by 우드코디BJ

오랜만에 회사 앞마당이 청년들로 북적였다. 리빙가구디자인과 학생들이 현장학습차 찾아온 날이다. 처음 날아든 질문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어떤 나무가 좋은 나무인가요?"


나는 잠시 학생들 뒤편에 쌓인 목재 더미를 바라봤다. 어떤 것은 테이블이 되고, 어떤 것은 계단이 된다. 제재소에 온 많은 분들이 먼저 '좋은 나무'를 찾지만, 이야기가 끝날 즈음에 '나에게 좋은 나무'를 만난다.


나는 다시 학생들을 보며 되물었다.


"무엇을 만들 건가요?"


좋은 원목, 기준이 뭐예요?


1989년,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있었다. 37년이 지났지만, 제목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AI시대가 시작된 지금, 성적 하나로 '우수한 학생'을 서열화하던 평가 방식에 대한 논의가 뜨겁다.


'좋은 원목'도 그렇다. 가격은 희소성과 수입 과정, 규격과 수율을 반영하지만, 쓰임까지 대신해주진 않는다. 강도, 색상, 결 등 한두 가지 장점으로 '좋음'을 단정하기보다는, 어디에 쓰느냐(용도)에 따라 기준을 달리 세우는 편이 더 현실적이다. 같은 수종이라도 어느 결을 따라 켰는지, 두께가 얼마인지, 건조 정도는 어떤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보통 목재를 선택할 때 건조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언급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어느 환경에서 어떤 목적으로 쓰이느냐를 따지는 게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바닷가 해변에 데크길을 조성한다면 우선 햇빛·비·바람 같은 기후변화에 잘 견디는 능력인 내후성을 갖춘 수종 선택이 우선이다. 보행자들의 하중도 견뎌야 하고, 구둣발 등 마모·찍힘에 저항성도 좋은 수종인지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함수율 10% 내외까지 인공건조된 목재를 꼭 써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충분히 자연건조된 목재면 충분하다.


그럼 필요한 물성을 갖춘 수종을 적절한 단계까지 건조한 목재를 쓰면 끝일까. 아연 등으로 도금처리가 되지 않은 철재와 철물로 기초를 만들고 목재를 시공했다면, 얼마 안 가 염분 때문에 부식이 발생해 데크길이 주저앉고, 최악의 경우 안전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목재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좋은 목재를 골라도 결과가 틀어지기 쉽다. 철물, 시공 방식, 환경까지 함께 봐야 한다. 정확히는 건조·보관·현장 순응이 목재의 하자 확률을 결정한다. 좋은 목재에 대한 정의는 쓰임에 따라, 환경에 따라, 누가 생산하느냐에 따라, 누가 제작·시공하느냐에 따라, 누가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건조 '실패'는 뭐가 실패죠?


나무는 뿌리부터 잎사귀까지 버릴 게 없다. 목재도 그렇다. 다만 역할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건조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원목을 켜서 얻은 넓고 좁은 판재들을 층층마다 산대를 놓고 가지런히 쌓으면 적당한 크기의 나무더미가 만들어진다. 바람이 너무 세지도, 아주 약하지도 않고, 직사광선을 적절히 차단할 수 있는 장소로 나무더미를 옮긴다. 이제 나무가 목재로 생산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인 '건조'가 시작된다.


계절이 바뀌면 판이 바가지처럼 휘고(컵핑), 활처럼 휘며(보우), 때로는 꼬여버리기도 한다(트위스트). 나무가 한때 살아있던 생명체였음을 보여주는 치열한 물리적 저항이다. 이런 변형이 발생하는 가장 큰 원인은 나무는 방향마다 수축하는 힘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이방성(Anisotropy)'이라고 부른다. 나이테를 따라가는 접선 방향은 힘이 강하고, 중심에서 바깥으로 뻗는 반경 방향은 그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수축률의 불균형이 판재의 폭을 바가지처럼 굽게 만들고, 판재 양면의 건조 속도가 어긋날 때 목판을 활처럼 휘게 만든다. 때로는 나무가 자라며 품었던 나선형의 결이 건조라는 인고의 시간을 견디다 못해 꼬여버리기도 한다. 결국 건조란 나무가 제 몸속의 습기와 고집을 털어내며 목재라는 두 번째 삶을 받아들이는 과정인 셈이다.


그 과정에서 어떤 목재는 원래 잡아두었던 역할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지만 그걸 '실패'라고만 보지 않는다. 특정 역할에 어울리지 않더라도, 다른 배역이 기다리고 있다.


예컨대 옹이가 빠진 구멍이 있다면 에폭시로 메워 그대로 쓰거나, 옹이 부분을 잘라내어 짧은 도마로 만든다. 양 끝의 갈라짐이 심하면 길이 방향으로 켜내어 가구 다리나 문짝틀 내부재로 바꾸는 것도 한 가지다. 청변 같은 색변화가 있는 목재는 스테인 착색으로 덮고, 부러진 목재는 다듬어 우든펜이 된다. 톱밥까지는 압축해 목재펠릿으로, 겨울철 난로 연료로 인기가 많다.


연극에서 한 배우가 작품마다 배역을 바꾸며 제 자리를 찾듯, 목재도 그렇다. 중요한 건 그 목재에 맞는 자리를 주는 일이다. 그게 제재소가 하는 일이다.


KakaoTalk_20260124_110741366_16.jpg 제재소로 공장견학을 나온 리빙가구디자인과 학생들


어떤 수종이 제일 까다로워요?


영업을 하면서 배운 게 있다. 가장 어려운 상대는 까다로운 고객이지만, 그 고객을 피하면 제품과 서비스는 더 나아지지 못한다. 인류 역사에서 목공 기법과 기계가 발전을 거듭한 데는 다루기 까다로운 수종들도 큰 몫을 했을 테다.


다만 먼저 한 가지 전제를 못 박아 두고 싶다. 가구 제작을 위한 우드워킹에서 느끼는 난이도와, 제재와 건조, 규격 생산이 중심인 제재소에서 말하는 난이도는 다를 수 있다. 우리는 얼마나 예쁘게 깎이느냐보다, 얼마나 안정적으로 생산되고 건조가 균질하게 되며 쓸 만한 부재가 얼마나 많이 나오느냐(수율)에 훨씬 더 민감하다.


그 전제 위에서, 제재소가 말하는 까다로움은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싱커라고 불리는 나무들이 있다. 물에 뜨지 않고 곧장 가라앉을 만큼 무겁고 단단한 나무들이다. 이페(Ipe)가 대표적이다. 내구성은 뛰어나지만, 현장에서는 공구가 금세 무뎌지고 작업 난이도가 높아진다. 그래서 이페를 다룰 때는 한 번에 깊게 베어내기보다 여러 번 나누어 가공하는 인내가 필요하다.


겉모습은 곱지만 속은 까다로운 나무도 있다. 브라질 오크(Tauari)가 그렇다. 밝은 색감과 고운 질감 덕분에 '순한 나무'처럼 보이지만, 건조 조건을 조금만 잘못 잡아도 표면에 잔금이 가거나 뒤틀림이 생긴다. 작업대에 올려놓으면 또 다른 성격이 드러난다. 톱날이 예상보다 빨리 무뎌지고, 공구를 자주 갈아야 한다. 치밀한 조직 안에 실리카 성분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 오크를 다루는 날은 늘 공구 관리에 더 많은 시간을 쓰게 된다.


결이 뒤엉켜 손을 타는 나무도 있다. 웬지(Wenge)가 그렇다. 목리가 꼬여 있어 대패나 루터를 대면 섬유가 결을 따라 쉽게 뜯겨 나간다. 그래서 욕심내어 한 번에 밀어붙이기보다, 조금씩 나누어 가공하는 편이 안전하다. 작업이 끝난 뒤에도 스크레이퍼로 뜯긴 자리를 정돈하고, 거친 사포에서 고운 사포까지 단계를 차근차근 밟아야 한다. 손은 더 많이 가지만, 조건만 맞추면 웬지만의 칠흑 같은 깊은 질감은 다른 수종이 따라올 수가 없다.


일상적으로 쓰일 목제품이라면, 굳이 가공 난이도가 높은 수종을 선택할 이유가 없을 수도 있다. 반대로 어떤 목적을 위해 그 수종이 꼭 필요한 프로젝트라면, 그 까다로움은 피할 문제가 아니다. 그때 제재소와 함께하는 게 도움이 된다.


초보가 제일 후회하는 선택은 뭔가요?


나는 영업 현장에서 이런 비유를 자주 쓴다. 양식을 좋아하는 분에게 홍어를, 한식을 좋아하는 분에게 블루치즈를 권하면 실패하기 쉽다. 하지만 그 음식 없이는 못 사는 사람도 많다. 나무도 그렇다.


초보가 가장 후회하는 건 '나쁜 나무'를 고른 게 아니다. '자리에 맞지 않는 나무'를 고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나는 우리나라 소나무와 비슷한 결과 물성을 가진 북미산 더글러스 퍼(Douglas fir)를 좋아한다. 가격도 비교적 합리적이라 실내 인테리어용으로는 자주 추천하는 편이다. 다만 야외 데크처럼 비·햇빛을 직접 맞는 곳에는 절대 권하지 않는다. 그런 용도에는 남미산 이페나 파푸아뉴기니산 크윌라(Kwila)처럼 천연 내구성(썩음·벌레에 버티는 성질)이 강한 수종이 훨씬 낫다.


반대로, 이페로 원목문을 만든다고 하면 나는 말리고 싶다. 나쁘다는 뜻이라기보다, 초보자에게는 무게(하드웨어 하중), 가공 난이도(공구 마모·예비 타공), 마감과 관련된 난이도가 한꺼번에 너무 올라서 '만들 수는 되는데 고생이 너무 큰' 선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완성된 이페 원목문의 무게를 견딜 경첩이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고, 그 원목문을 매일 열고 닫는 사용자에게도 결코 좋은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늘 당부한다. 수종부터 고르지 말고, 먼저 '무엇을 만들지'와 '어디에 둘지'를 정하라고. 그게 분명해지면 나무는 저절로 좁혀진다. 제재소가 하는 일은 그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다.


가구용 목재와 내장용 목재, 뭐가 달라요?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우리의 처지를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기른다.'


국민교육헌장에 나오는 문장이다. 이 대목을 떠올리면, 사람에게도 저마다 기질과 소질이 다르듯 목재에도 타고난 성향, 물성(재료의 성질)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향적인 사람은 영업직에 적합하지 않고 외향적인 사람은 연구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목재 역시 같은 수종이라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평가 기준이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종종 임진왜란 시기 군함 이야기를 꺼낸다. 조선 수군의 판옥선은 소나무를 주재료로 삼아 튼튼한 구조를 만들었고, 거북선도 충격을 받는 부위에는 더 단단한 재목을 보강했다. 반대로 일본 수군은 속도와 기동성을 위해 삼나무나 전나무 같은 가벼운 재료를 썼다. 중요한 건 조선은 좋은 나무, 일본은 나쁜 나무가 아니라, 각자가 가진 자원과 해역 환경, 전술이 재료 선택을 이끌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작은 고기잡이배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혼자 조업을 나가는 어부에게는 가볍고 손질하기 쉬운 삼나무가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닌 어촌의 일상에서는 일본이 고기잡이배를 만들기엔 더 좋은 조건을 가졌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같은 배라도 역할이 달라지면 최적 재료가 달라지는 것처럼, 가구와 내장도 그렇다.


가장 큰 차이는 오차가 드러나는 방식이다. 가구는 서랍을 열고 닫을 때마다 눈이 본다. 문짝이 아주 조금이라도 비틀리면 잘 닫히지 않는다. 내장은 반대로, 벽면이 아주 약간 벌어져도 손이 먼저 느낀다. 둘 다 민감하지만, 민감한 방향이 다르다.


가구는 조립 구조 자체가 부재간 변형을 어느 정도 잡아준다. 그래서 건조가 균질하게 되었는지가 먼저 중요하다. 내장은 다르다. 부재 하나하나를 벽이나 바닥에 고정하는 방식이니, 변형을 잡아주는 구조가 없다. 그래서 목재가 현장 환경에 먼저 익숙해져야 한다. 이를 '기후순화(acclimation)'라고 부른다. 목재가 현장에서 며칠간 온도와 습도에 적응하는 과정이다.


옷차림에도 코디네이터가 필요하듯, 목재도 용도와 환경에 맞춰 선택을 돕는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 회사에서 직원들이 스스로를 '우드코디'라 부르는 이유도 그 지점에 있다.


38084.jpg 공장 견학 중 목재숙성창고에서 학생들과 함께 찍은 단체사진


회사가 지키고 싶은 가치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사람들의 일상에 목재가 제대로 쓰이게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늘 잊지 않으려 한다. '목재가 좋다'는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건조 상태와 함수율, 쓰임새에 맞는 수종 선택, 하자 가능성까지 함께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유림목재가 앞으로도 계속 지키고 싶은 단 하나의 가치를 꼽으라면, '人(사람 인) + 木(나무 목) = 休', 곧 인간과 자연의 근원적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돕는 일이다.


내가 이 생각을 더 또렷하게 붙들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제목부터 도발적인 『콘크리트 주택에 살면 9년 일찍 죽는다』라는 책이다. 책은 인공재료가 만든 공간의 편리함 뒤에, '차갑고 건조한 생활'이 남길 수 있는 스트레스를 문제로 제기하고, 목재 공간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안정의 가능성을 여러 사례로 소개한다. 나는 그 책을 계기로, 사람이 오래 머무는 공간에는 몸이 편안해지는 재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재차 확인하게 됐다.


폭염, 폭설, 혹한, 산불. 해를 거듭할수록 탄소 배출량이 늘어나고,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 재난의 파괴력이 커지고 있다. 나무는 자라는 동안 탄소를 흡수하고, 목재로 쓰이는 동안 그 탄소를 일정 기간 저장한다. 이런 점에서 목재가 사람에게는 더 편안한 생활환경을, 환경에는 탄소를 줄이는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더 많은 우드 디자이너와 우드 메이커가 새로운 영감을 얻고, 소비자가 바라는 '좋은 목제품'을 만들 수 있도록 연대를 늘려나가는 것. 그리고 '나무 벌목 = 자연 훼손'이라는 고정관념이 '목재 이용 = 자연 회복'이라는 본질로 바뀌게 돕는 것.


Believe in Wood. 우리는 그 길이 살기 좋은 환경을 우리에게 선물하고, 살기 좋은 지구를 후손에게 물려주는 방향으로 이어진다고 믿는다.


오늘 학생들이 꼭 하나는 느끼고 갔으면 하는 점이 있다면?


마을 골목마다 있던 목공소가 사라진 시대다. 철물점이나 문방구처럼 아무나 들어가서 한 가지라도 물어볼 수 있었던 그런 공간이 사라진 셈이다.


제재소가 그 자리를 완전히 대신할 수는 없다. 규모도 다르고, 위치도 다르다. 그렇지만 숲의 나무를 도시의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고, 누군가는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매일 아침 8시에 문을 연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나무를 좋아하거나, 목재에 관심이 있거나,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이라도.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도 곧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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