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AAC가 밝힌 한국 성인들의 문해력 위기
같은 언어 다른 생각
수요일 오전, 매장별 매출 분석 회의가 끝났다. "그럼 금일 업무마감 전까지 회의록 작성해서 올려주세요." 팀장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당일 오후 5시, 메신저에 "회의록은 아직인가요?"라는 이영희 대리의 질문이 올라왔다.
회의록 작성을 지시받은 김철수 사원은 당황했다. "금요일까지 아닌가요?"
팀장이 말한 '금일(今日)'은 '오늘'이었지만, 김철수 사원은 '금요일'로 이해했던 것이다. 같은 회의실에서, 같은 말을 들었는데, 이해한 내용이 완전히 달랐다. 이건 단순한 착오가 아니다. 문해력 문제다.
문맹에서 문해력 논쟁까지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한때 한국은 이런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 광복 직후인 1945년 문맹률이 78%에 달했던 나라가, 각계각층의 노력 끝에 1958년 4.1%까지 낮아졌다. 우리는 이 불가능해 보였던 과제를 세계 어느 나라보다 짧은 시간에 해결한 경험이 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국은 OECD에서도 손꼽히는 대학 진학률의 고학력 사회가 되었다. 그런데도 지난 몇 년 ‘문해력’ 논쟁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글자를 몰라서가 아니다. 읽고도 같은 뜻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장면이, 생활과 일터 곳곳에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PIAAC가 보여준 현실
2024년 12월, OECD는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 2주기 결과를 공개했다. 한국 성인의 문해력 평균은 249점이었다. OECD 평균 260점에도 미치지 못했다. 더 당혹스러운 건 10년 전인 1주기(2011~2012년) 조사에서 기록한 273점에서 무려 24점이나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 숫자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10년 만에 한국 성인의 문해력은 급격히 쇠퇴했다. 성인 약 3명 중 1명(31%)은 단순한 텍스트 정도를 겨우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인 '레벨 1 이하'로 나타났다.
반면 복잡한 텍스트를 읽고 판단하고 처리할 수 있는 상위 수준(레벨 4~5)은 6%뿐이었다.
수리력도 10점 떨어졌다. 263점에서 253점으로 주저앉았다. 적응적 문제해결력은 238점으로 OECD 평균보다 낮았다. 상황이 바뀌고 변수가 늘어날 때 계획을 수정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까지 약해진 것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은 세대 간 편차다. 55세~65세는 25세~34세보다 문해력이 55점이나 낮았다. OECD 평균 세대 격차는 30점이다. 한국은 그 거의 두 배다. 문제는 '낮은 점수' 자체가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가팔라지는 '퇴화하는 속도'에 있다.
학교 16년, 직장 30년
왜 한국 성인의 역량은 나이가 들수록 이렇게 가파르게 떨어지는가. '시간의 총량'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사람들은 학창 시절 12~16년을 보내며 성인이 된다. 하지만 졸업 후에는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직장에서 생활한다. 30년, 길게는 40년. 그 긴 시간 동안 무엇을 읽고, 무엇을 쓰고, 어떤 대화를 나누고, 무엇을 학습하느냐에 따라 역량은 발전되거나 퇴보한다.
한국의 고용시장은 양극화되어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연봉 격차는 심각하고,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비율은 매우 낮다. 생애 소득 관점에서 보면,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것보다 대기업에 입사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 결과 취준생들은 취준 기간 내내 오버 스펙을 쌓으며 과잉 경쟁한다. 반면 취업문을 통과한 후에는 학습을 통한 역량 개발의 유인이 급격히 약해진다. 입사 전 과잉 학습, 입사 후 학습 방치. 이 비대칭 구조가 30년간 지속되면 개개인의 역량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국직업능력연구원(KRIVET)이 PIAAC 2주기 자료로 분석한 결과를 보자. 한국 근로자가 가장 크게 부족을 느끼는 역량은 '의사소통 및 발표'였다. 33%가 이 영역에서 부족을 호소했다. 문해력이란 글자를 읽는 능력에 그치지 않는다. 읽은 내용을 이해하고 맥락을 파악하며, 자신의 생각을 글과 말로 표현하는 종합적 역량이다.
결국 한국 근로자 3명 중 1명은 소통 역량에서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한 셈이다. 문해력이 읽기에서 끝나지 않고 이해와 표현까지 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수치는 ‘업무 언어’의 취약함을 시사한다.
조직에서 문해력이 약해지면, 가장 먼저 소통이 흔들린다. 지시의 전제를 놓치고, 계약서의 예외 조항을 지나치고, 보고서는 핵심이 흐려져 다시 돌아온다. 회의에서는 말은 길어지는데 합의는 늦어지고, 끝내 상급자의 판단이나 표결로 정리되는 일이 늘어난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갈등은 남고, 관계는 조심스러워지며, 조직의 대화 방식도 점점 경직된다.
6개월간의 실험
우리 회사는 6개월 전부터 회의 방식을 바꿨다. 회의가 끝나면 직급에 관계없이 참석자 전원이 각자 회의록을 쓴다. 작성된 회의록은 온라인에 올려 공유한다. 쉽지 않았다. 앞서 수년간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공감대를 확산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 대면 회의 빈도는 눈에 띄게 줄었다. 구성원 간 피드백은 오히려 많아지고 빨라졌다.
작동 방식은 이렇다. 많은 비용을 들여 그룹웨어 같은 전산시스템을 설치한 게 아니다. 온라인 카페를 활용했을 뿐이다. 카페에 올린 회의록들 내용 가운데 조금씩 다른 부분이 발견되면, 참석자들이 그 차이를 대조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드러나고 빠진 맥락이 채워진다. 최종 수정본은 다시 카페에 게시해 전 구성원이 읽는다.
이 조직에서 회의록 작성은 막내가 수행하는 말단 업무가 아니다. 회의 참석자들의 상호 이해도가 증진되는 과정이고, 조직 전체에 맥락이 공유되는 통로다.
누군가 발견한 문제가 회의 안건이 되는 순간, 그 사람은 회의 주관자가 된다. 필요한 인원을 소집해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한다. 회의 내용과 문제 해결 전 과정에서 '적응적 문제해결력'이 작동한다. 누군가에게는 역량 발휘의 계기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역량 학습의 기회가 된다.
이런 회의 방식이 기본값이 된 조직에서는 문해력과 적응적 문제해결력이 별도의 학습 대상이 아니다. 일을 통해 자연스레 역량이 쌓이는 구조로 작동한다.
또한 이들이 남긴 기록은 시간이 지나도 꺼내볼 수 있는 지적 자산이 된다. 신입 사원은 앞선 기록들을 따라가며 조직이 문제를 정의하는 방식, 과정을 글로 남기는 방식을 체득한다. 전원이 기록하고 대조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업무가 말로 휘발되지 않고 전수될 수 있는 기록으로 쌓인다.
물론 모든 직장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은 아닐 것이다. 다만 업무를 어떤 방식으로 설계하느냐에 따라, 직장은 역량을 닳게 만드는 공간이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역량이 자라게 하는 교실이 될 수도 있다. 기록이 남고 다시 꺼내 읽을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을 업무의 저장고로 쓰는 발상도 그 연장선에 있다.
예비 사회인을 기르는 대학
직장이 30년간의 교실이라면, 대학은 그 교실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준비 과정이다. 대학이 유능한 예비 사회인을 길러내는 곳이라면, 정답을 제출하고 채점받는 수업만으로 충분한가. 토론하고 쓰고 서로의 글을 읽는 수업이 더 필요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몇몇 대학에서 연달아 화제가 된 'AI 부정행위' 논란은 학생 몇 명의 일탈이 아니다.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정답을 제출하는 형식'에 기대어 교과 과정을 운영해 왔다는 사실을 거꾸로 비춰주는 거울이다.
시험이 '무엇이 정답인가'보다 '무슨 생각을 했는가'를 묻기 시작하면, AI는 리포트 작성을 위한 사고 외주 도구가 아니라 조별과제를 돕는 학우가 될 수 있다. 같은 교재를 보고 함께 강의를 들으며 작성한 리포트가 교수에게만 제출되는 게 아니라 같은 교과목을 듣는 학생들에게도 공유된다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성 함양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대학에서 경험한 토론과 기록, 피드백 문화는 직장에 들어가서도 이어진다. 대학에서 직장까지 이어지는 '역량 개발' 연속성이 확보될 때, 입사 후 30년간의 역량 퇴화를 막을 수 있다.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는 길
한때 이 나라의 과제는 문맹을 없애는 것이었다. 1945년 78%에 달했던 문맹률은 1958년 4.1%까지 낮아졌다. 지금 한국의 문맹률은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제 우리의 도전은 글자를 읽는 데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이제 필요한 건 한글이라는 연장을 어디서, 얼마나 자주 쓸 기회를 만드냐다.
학생과 직장인이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와 회사는, 결국 국민의 역량이 축적되거나 소진되는 현장이다. 수업이 문해력을 다루는 방식과 회의가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이 어떤 차이를 만드는지에 따라, 한 조직의 성과를 넘어 사회의 생산성과 협업 비용까지 달라진다. 그래서 이 이슈는 학교와 기업에 더해 연구기관과 정부까지 함께 풀어가는 산학연관 과제로 삼아도 좋겠다.
학생과 직장인이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와 회사가 역량 강화의 훈련장이 되어야 한다. 수업은 문해력을 키우도록 다듬어야 하고, 회의는 문제 해결력을 높이도록 보완해야 한다. 학교와 기업에 더불어 연구기관과 정부가 함께 풀어 가는 산학연관 과제로 삼아도 좋겠다.
역량 개발은 이제 개인만의 과제가 아니다. 한국은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는 게 미덕이었던 공업사회를 지나, 다자간 협업이 필수적인 네트워크사회로 향하고 있다. 수준 높은 역량은 효율적인 소통을 낳고, 원활한 소통은 화합을 만든다. 건강한 조직 문화도, 단결된 국민 통합도 결국 국민 역량에 달려 있다. 이것이야말로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