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지 않은 성실함은 검색되지 않는다
만나기 전에 SNS부터 확인한다
소개팅 상대가 정해지면 이름을 검색한다. 인스타그램 계정을 찾고, 피드를 훑고, 얼굴과 취향을 먼저 읽는다. 예의 없는 호기심이 아니라, 이미 너무 익숙해진 예비 확인 절차다. 사람을 만나기 전, 먼저 흔적을 읽는 것이 일상이 됐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소셜미디어(SNS)를 쓰는 방식이다. 일상을 올리고, 취향을 공유하고, 상대를 미리 확인한다. 유희와 관계의 공간이다.
그런데 같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정책을 발표한다. 기자들이 그 게시물을 받아쓴다. 일론 머스크는 소셜미디어에 사업 계획을 올린다. 주가가 움직인다. 미국 정부는 외국인 비자를 심사할 때 5년 치 소셜미디어 기록을 검토한다.
우리는 소셜미디어를 가볍게 쓰고 있다. 그러나 권력과 자본과 국가는 이미 그것을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우리가 남긴 기록이 AI를 가르쳤다
2007년 아이폰이 등장했다. 컴퓨팅이 책상 위에서 손 안으로 옮겨왔다. 인간은 24시간 네트워크에 연결된 존재가 됐고, 2010년대 소셜미디어의 폭발적 확산은 그 위에 얹혔다. 우리는 일상을 기록하고, 생각을 올리고, 관계를 공개된 공간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이 왔다. 인류는 모든 업무를 온라인으로 옮겼다. 회의는 녹화됐고, 지시는 메신저에 남았고, 보고서는 파일로 저장됐다. 선배 옆에 붙어 몸으로 익혀야 했던 암묵지(暗黙知)가 실시간으로 기록되어 서버에 쌓이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그렇게 축적된 회의록, 매뉴얼, 실적 데이터를 업무용 AI에 연결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회의록을 쓸 때 AI는 보고서의 구조를 익혔다. 당신이 메신저로 협의할 때 AI는 업무 패턴을 배웠다. 소셜미디어에 올린 일상도 예외가 아니었다. 취향과 관계, 소통 방식과 반응 패턴이 데이터로 전환되어 AI의 학습 재료가 됐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AI는 충실히 배웠다. 플랫폼 기업들은 우리의 기록으로 광고 시장을 키웠고, AI 기업들은 그 기록으로 노동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올해 초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고용영향 사전평가-2025 AI·디지털전환' 보고서는 이 현실을 수치로 확인했다. 글로벌 AI 추론 비용이 최근 2년간 최대 900배 가까이 하락했다. 보고서는 이를 증기기관, 전기에 이은 세 번째 기술특이점이라 불렀다.
AI는 이제 단순 자동화 도구가 아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업무를 완결 짓는 에이전트다.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겼던 귀납적 사고, 비정량적 판단까지 AI가 수행하기 시작했다. 2007년부터 2025년까지, 20년에 걸쳐 쌓인 변화다.
AI는 진입 경로를 먼저 무너뜨린다
아이폰이 처음 등장했을 때, 휴대폰 업계의 강자들은 그것을 찻잔 속의 태풍쯤으로 여겼다. 노키아는 키패드의 촉감을 내세웠고, 블랙베리는 보안을 자랑했다. 그러나 아이폰은 더 나은 전화기가 아니었다. 전화기라는 카테고리 자체를 해체한 사건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가 AI 고용 충격을 바라보는 시선도 그때와 닮아 있다. 더 나은 도구가 등장했다고 생각하는 사이, 일자리라는 카테고리 자체가 조용히 재편되고 있다.
산업연구원 보고서는 조용하지만 명확한 신호를 포착했다. IT 업계와 방송제작, 상업디자인 분야에서 2023년 이후 20대 고용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신입과 저연차가 진입하며 숙련을 쌓던 자료 조사, 초안 작성, 데이터 정리, 이 일들을 AI가 처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산업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방송 인터뷰에서 AI 도입 이후 주니어 일자리가 줄고 신입 채용도 감소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신입을 뽑아 교육하는 비용과 시간에 비해, 급격히 낮아진 AI 활용 비용은 기업의 계산을 바꾸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가르쳐야 할 신입 대신, 검증된 경력직을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데려오는 방식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25년 상반기 민간 채용 플랫폼 공고를 분석한 결과, 경력직만을 대상으로 한 공고가 82%, 신입만 뽑는 공고는 2.6%였다.
1차 파동은 시작에 불과하다. AI는 이제 신입의 초급 업무를 넘어, 중견 경력자의 암묵지를 향하고 있다. 10년간 쌓아온 판단 기준, 조직 내 협의 방식, 예외 처리 노하우가 회의록과 메신저 속에 구조화되어 다음 학습 재료가 되고 있다. 실리콘밸리의 대규모 감원 흐름은 그 방향을 보여주는 예고편처럼 보인다.
보고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인공지능 고용 파급효과는 구조조정형 충격과 유사한 방식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적하며, "고용위기는 여러 촉발 조건이 누적되며 지진과 같은 이벤트로 급작스럽게 발현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지금은 조용하다. 그러나 기업이 위기에 처하는 순간, 인간을 AI로 대체하는 결정은 단칼에 내려질 수 있다.
숙련자를 대체하기 전에, AI는 먼저 숙련으로 오르는 계단을 지우고 있다.
기록은 AI가 가질 수 없는 시간의 타임스탬프다
AI가 결과물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시대에, 기업이 인간에게서 확인하고 싶은 것은 결과물이 아니다. 그 결과물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이다. 시행착오와 고민의 흔적, 협업 속에서 쌓인 신뢰, 조직 안에서 버텨온 시간. 소셜미디어에 남겨진 꾸준한 기록은 그 과정을 증명하는, AI가 끝내 가질 수 없는 시간의 타임스탬프다.
입직의 통로는 좁아졌고, 숙련의 경로는 불투명해졌다. 소셜미디어는 이 현실을 비껴가지 않는다. 그 안에 쌓이는 기록 하나하나가 사람을 읽고, 고르는 데이터가 되고 있다. 유희의 플랫폼이 판독의 인프라가 된 시대다.
당신의 소셜미디어는 지금 무엇을 기록하고 있는가
기업이 놓아준 계단이 사라진 지금, 새로 나타날 계단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다리를 직접 놓아가는 방식이 필요하다. 계단은 정해진 방향으로만 올라가지만, 사다리는 내가 기대고 싶은 벽에 새로 놓을 수 있다. 사원으로 입사해 계단처럼 승진하며 정년을 맞는 평생직장이 사라진 시대, 내가 갖춘 역량과 그 역량이 쓰일 곳을 잇는 사다리가 필요하다.
지금껏 가벼운 일상을 나누는 공간으로 소비되는 소셜미디어는 그 사다리의 재료가 된다. 방향도, 속도도, 높이도 누군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쌓아가는 기록 속에서 비로소 생겨난다. 글이든 영상이든 소셜미디어는 주제에 제한이 없고 비용도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사생활을 직업시장에 바치라는 뜻은 아니다. 한 사람이 평생 하나의 계정만 써야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취미와 일상을 나누는 계정, 업력과 직무를 기록하는 계정, 내면을 정리하는 계정은 서로 다른 역할을 가진다.
실제로 우리 회사 직원들의 명함은 앞면에 회사 정보를, 뒷면에 개인 소셜미디어 링크가 담겨 있다. 회사원이기도 하고 기록자이기도 한 두 정체성을, 명함 한 장으로 동시에 소개하는 방식이다. N잡과 부캐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요즘, 역할에 따라 자신을 다양한 모습으로 시각화하는 것, 그것이 지금 시대에 걸맞은 자기소개 방식이 아닐까.
스마트폰이 촉발한 모바일 컴퓨팅 시대는 우리의 행동을 언제 어디서든 기록 가능하게 만들었다. 소셜미디어는 그 기록을 세상을 향해 공개 가능하게 만들었다. 내용이 좋으면 지구 반대편까지 퍼져나간다. 기록이 곧 도달 범위가 되는 시대다. 그런데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무엇을 찍고, 어떤 글을 올리고 있는가.
AI는 이제 채용 현장에도 들어왔다. 한 사람이 수백 장의 이력서를 내면 인간 면접관은 검토가 불가능하지만, AI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업은 AI로 지원자를 걸러내고, AI는 온라인에 남겨진 기록을 읽는다. 내 재능과 역량이 필요한 누군가가 AI를 통해 나를 발견하려면, AI가 읽을 수 있는 디지털 족적이 먼저 있어야 한다.
우리는 20년 동안 스스로 AI의 교사가 되었고, 이제 그 수업료를 받기는커녕 일자리에서 내몰리며 공포에 떨고 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보자. AI가 검증의 도구이자 검색의 도구라면, 우리가 할 일은 기록을 멈추는 것이 아니다. 기록을 기획하는 것이다.
이미 채용 플랫폼들은 AI 도입을 서두르며 구인기업과 구직자 간의 AI 매칭 시스템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제 문제는 단순히 이력서에 스펙 한 줄 넣는 것이 아니다. 어떤 기록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하고, 얼마나 성실하게 기록할 것인가 다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