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 공장 다니는 우드코디의 일상]
일요일 아침부터 모녀 둘뿐인 집이 들썩들썩하다. 학업 스트레스에 잔뜩 치여있는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이 친구들을 모아 현장 학습을 간단다. 평소 늦잠 자는 버릇 때문에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딸은 꼭두 새벽부터 일어나 돗자리며 야외용 테이블을 챙긴다고 부산을 떤다. 그러더니 늦었다며 자기를 약속 장소까지 태워다 달라고 성화다. 서울 은평구에 있는 진관사 계곡이란다.
목재 상담을 하면서 진관동 언저리에 있는 '은평 한옥마을'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었던 터라 내심 한 번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엄마로서 큰 호의를 베푸는 듯 유세를 부리며 아이와 함께 차에 짐을 옮겨 실었다. 목적지를 검색해 보니 길 안내와 함께 대략 1시간 정도의 소요시간이 내비게이션 창에 나타났다. 다행히 날씨는 콧노래가 나올 정도로 맑고 쾌청하다.
앞 차와의 간격이 점점 좁아지고 가다 서다를 반복하던 중, 어느새 아파트 숲은 사라지고 너른 하늘이 시야를 꽉 채웁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넓게 드러누운 북한산이 보이고 그 아래로 옹기종기 기와지붕이 눈에 띈다. 아직 오전 10시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미 한옥마을 주차장은 가득 들어찼고, 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쏟아지듯 내린다.
여유 있게 둘러보기는 글렀다 싶어 잘 다녀오라는 인사와 함께 아이만 내려주고 차로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본다. 조성된 지 그렇게 오래지 않았는지 한옥집들도 말끔해 보이고, 거리도 깔끔하게 느껴졌다. 카페도 한옥이고 서점도 한옥이다. 마을회관도 한옥이고 가정집도 한옥이다. 어딜 봐도 석회를 반죽한 회벽과 흙으로 구운 기와 그리고 목재뿐이다.
건축설계 일을 하는 C 소장님은 유달리 나무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가끔 일이 없어도 회사로 찾아와 한참 동안 목재를 둘러보고 점심까지 함께 한 후에야 자리에서 일어날 정도다. 어느 더운 여름날 수박 한 통을 들고 사무실에 들어선 C 소장님이 책 한 권을 건넨다. 콘크리트 주택에서는 9년 일찍 죽는다. 대담하면서도 도발적인 제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태어난 후 20일째. 목재로 만든 사육 상자에서는 새끼 생쥐의 약 90%가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렇지만 금속제에서는 생존율이 약 50%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다. 콘크리트 사육 상자를 빼내 본 연구자들은 놀라 숨이 막힐 정도였다. 고작 10% 미만 밖에 살아남지 못한 것이다. _ p.25 "
책의 주요 내용은 근대 이후 널리 쓰인 건축의 주재료인 콘크리트의 성질과 특성을 자세히 기술하면서 나타나는 폐해들에 관한 분석이다. 한 여름 대낮에 건물 옥상에 있으면 콘크리트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로 체온이 빠르게 상승하는데 이러한 현상을 '열 복사'라고 한다. 반대로 그리 춥지 않은 날씨에도 실내에서 콘크리트 벽에 손을 대면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데 이는 한기가 신체에 스며드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벽이 우리 몸에서 열을 빼앗아 가는 '냉 복사' 현상 때문이다. 이렇게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가정집, 학교, 사무실 등에서 현대인들이 쾌적함보다는 '냉열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 '사람(人)'이 '나무(木)'에 기대면 '휴식(休) 한다'라는 글자가 된다. 사람은 나무와 함께 생활하게 됨에 따라 심신을 쉬게 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숲(森)'은 영어로 'forest', 즉 'for rest'이다. '휴식의 장소'라는 의미이다. 동서의 말이 모두 '나무'와 '인간'의 생활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_ p.56 "
또 하나의 문제점으로는 콘크리트는 '습도 조절'이 불가능한 재료라는 점을 꼽는다. 우리가 콘크리트 건물의 실내에서 때때로 느끼게 되는 서늘하고 눅눅한 느낌은 바로 콘크리트뿐만 아니라 석유화학물질이나 합성수지류의 마감재들은 공통적으로 습기를 흡수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다. 이렇게 건물이 스스로 실내 습도를 조절하지 못하는 동시에 휘발성 유기화합물의 농도까지 상승하면 '새집 증후군(병든 건물 증후군, sick house syndrome)'이 발생하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 집은 '생활의 터전'이라고 불린다. 인간은 집에서 삶의 대부분을 지낸다. '집'은 사람이라고 하는 생물에게 있어서는 '사육 상자'와 같은 것이다. '사육 상자'의 소재에 따라 생쥐의 수명에 10배 이상의 격차가 나타난다는 시즈오카 대학의 실험에 대해 우리는 매우 놀랐다. _ p.62 "
책의 한 구절을 옮기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덧붙여 C 소장님께 문자 메시지를 남겼다. 30년이 넘는 세월을 '콘크리트 집'과 '목재 회사'를 오가며 살았다. 항상 느껴왔지만 왜인지는 정확히 몰라 못내 가려웠던 부분이 조금은 시원해진 기분이다. 흙과 나무로 만든 한옥으로 이사하면 몇 년을 더 살 수 있으려나 새로운 궁금증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