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한 흔적이 없는 문장들의 시대

AI로 과제 작성하는 시대, 대학 교육은 학생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가

by 우드코디BJ
첫 번째.png AI가 써준 비슷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가 많아 지원자의 역량 평가에 대한 인사담당자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채용 서류를 오래 보다 보면 묘한 순간이 있다. 문장은 반듯하고 구성도 매끄럽다. 성장 과정은 성실하고, 지원 동기는 분명하며, 입사 후 포부도 빠짐이 없다. 문법도 안정적이고 표현도 제법 세련됐다. 처음 몇 줄만 읽으면 "참 잘 썼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몇 장을 읽고 나면 이상한 공허함이 남는다. 분명 글은 읽었는데, 정작 누가 썼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문장은 있는데 사람이 없다.


요즘 대학가에서 벌어지는 풍경을 떠올리면 이 낯선 공허감은 그리 우연이 아니다. AI는 이제 학생들의 리포트와 발표문, 자기소개서 초안을 너무도 손쉽게 만들어낸다. 주제를 던지면 개요가 나오고, 논지를 넣으면 문장이 정리되며, 어설픈 표현은 금세 매끈하게 다듬어진다. 문제는 편리함 자체가 아니다. 문장을 고쳐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생각의 초안까지 대신 써주기 시작할 때다. 학생은 자기 생각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 AI를 쓰는 것이 아니라, 아직 자기 것이 되지 않은 생각을 먼저 그럴듯한 문장으로 받아 적게 된다. 그리고 그 문장은 다시 자기 생각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 떠오르는 것이 '반향실 효과'다. 반향실은 원래 인간의 인지적 편향에서 비롯된다. 사람은 본래 자기 생각을 확인해 주는 정보에 더 쉽게 안도하고, 불편한 반론보다 익숙한 동조에 더 빨리 끌린다. 오늘의 AI는 이 오래된 편향을 더 빠르고 더 매끈하게 증폭시키는 장치가 되고 있다.


최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스탠퍼드대 연구는 주요 AI 11종이 기만이나 불법 상황에서도 일반 사용자보다 평균 49% 높은 비율로 사용자 행동을 정당화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를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AI 개발사가 만든 '왜곡된 보상 구조'의 산물로 진단했다. 반향실은 이제 인간의 편향에서 비롯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개발사가 설계한 구조다. 그 결과 이용자는 자기 생각이 검증됐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되울림 속에서 확신만 강화된다. 밖의 소음은 지워지고, 내 안의 소리만 점점 커진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오늘의 대학 교육이 여전히 결과물 중심으로 학생을 평가할수록, AI는 더욱 유리한 도구가 된다. 매끈한 결과물을 빨리 만들수록 높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커진다면, 학생은 당연히 과정이 아니라 완성본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그러면 대학은 생각하는 사람을 길러내기보다, 잘 정리된 답안을 제출하는 사람을 선발하는 곳이 되기 쉽다. AI 시대의 역설은 여기에 있다. 도구는 더 똑똑해졌는데, 교육은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교육의 초점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AI가 만들어내는 반향실 속에서 학생을 더 매끄러운 답안 작성자로 키울 것인가, 아니면 자기 생각을 공론장에 내놓고 질문과 반응 속에서 다시 다듬는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그 해답은 공론장형 교육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은 사적 생각이 공적 토론과 검증을 거치며 확장되는 공간이다. 반향실과 정반대의 구조다. 하버마스가 말한 공론장은 사적 생각이 공적 토론과 검증을 거치며 확장되는 공간이다. 오늘의 대학 교육도 학생의 생각을 그 자리로 끌어내야 한다.


Copilot_20260401_154321.png 교수들은 AI 활용으로 과제나 리포트의 수준은 높아졌지만, 학생들의 문제 해결 의지나 사유 능력은 반비례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오늘 대학생의 손에는 이미 그 공론장의 도구가 쥐어져 있다. 스마트폰이 있고, 블로그가 있고, SNS가 있다. 부족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방향이다. 많은 학생이 타인이 올린 영상을 보고, 남이 쓴 글에 공감하고, 누군가의 의견에 분노하거나 동의하는 데는 익숙하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생각을 바깥에 꺼내 검증받는 일에는 인색하다. 생산자보다 소비자로 머무는 편이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 안전함이 사고의 성장을 막는다.


가령 대학생이 학기마다, 과목마다 하나의 기록 공간을 운영한다고 생각해보자. 네이버 블로그도 좋고 별도의 SNS 계정도 좋다. 리포트 완성본만 올리는 것이 아니라, 왜 이 주제를 골랐는지, 초안에서 무엇이 흔들렸는지, 끝내 납득하지 못한 쟁점은 무엇이었는지를 꾸준히 남기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전시용 결과물이 아니라, 흔들린 초안과 수정 이력까지 남기는 사고의 기록이다. 그러면 그 기록은 단순한 게시물이 아니라 사고의 이력이 된다.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이 드러나고, 완성본이 아니라 형성 중인 생각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공개된 기록은 자기검열이나 평가 불안, 악성 반응을 부를 수 있다. 그래서 더 필요한 것은 침묵이 아니라 설계다. 이 구조가 작동하려면 세 가지가 맞물려야 한다. 학생은 완성본이 아닌 과정 기록을 남기고, 교수는 그 기록을 평가의 일부로 읽어야 하며, 대학은 이 활동을 학점 외 이력으로 공식 인정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작동하지 않는다. 학생 혼자 기록해도 평가와 무관하면 지속되지 않고, 교수가 의지가 있어도 제도가 받쳐주지 않으면 개인 실험에 그친다. 공론장은 구조가 만든다.


그 구조 안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 있다. AI는 완성된 문장을 대신 만들어줄 수는 있어도, 한 학기 동안 한 학생이 어떤 질문에서 출발했고 어떤 시행착오를 거쳐 어떻게 생각을 바꾸어왔는지까지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바로 그 차이가 사유의 흔적을 남긴다.


공개된 글은 예상 밖의 반응을 부른다. 바로 그때 생각은 독백을 벗어난다. 이 기록은 졸업 뒤에도 남는다. 면접관 앞에서 엇비슷한 자기소개서를 반복하는 대신, 대학 4년 동안 공부 과정과 생각의 변화를 이렇게 기록해 왔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은 미사여구가 아니라 축적의 증거가 된다.


오늘의 대학에서 공론장은 정해진 수업 시간, 교실 안 서로 말을 교환하는 것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 글과 게시물, 댓글과 공유, 업로드와 수정이 반복되는 디지털 공간 역시 중요한 공론장이다. 그렇다면 대학 교육도 학생을 더 잘 대답하게 만드는 데서 멈출 것이 아니라, 자기 생각을 기록하고 공개하며 수정할 수 있는 사람으로 길러내는 쪽으로 옮겨가야 한다. 정답을 빠르게 생산하는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사고의 흔적을 남기고 그것을 공적 검증 속에서 다시 다듬을 수 있는 능력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초중고 시절에 통과한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디지털 공론장은 단순한 소통 채널이 아니다. 타인과 생각을 나누고 반응을 받아내는 경험 자체가 결핍된 발달을 채워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문장이 점점 반듯해지는 시대다. 그래서 더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이 반듯한 문장 뒤에 얼마만큼의 치열한 사유와 고민의 과정이 있었는가. 지금 대학 교육이 답해야 할 질문도 바로 그것이다. 학생을 정답에 가까운 답안지 제출자로 키울 것인가, 아니면 자기 생각을 세상 앞에 꺼내고, 타인의 피드백 속에서 소통하며 성장하는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AI는 전자를 돕는 데 이미 능숙하다. 그러나 사회는 후자를 기다리는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고령화·인력난 시대, 공장 소방안전 이대로 괜찮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