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에게 글쓰기를 다시 가르치고 있다

AI로 과제하는 시대, 앞으로 들어올 신입사원이 두렵다

by 우드코디BJ

문장은 있는데 사람이 없다


채용 서류를 오래 보다 보면 묘한 순간이 있다. 분명 글은 읽었는데, 정작 누가 썼는지 그려지지 않는 순간. 문장은 반듯하고 구성도 매끄럽다. 성장 과정은 성실하고, 지원 동기는 분명하며, 입사 후 포부도 빠짐없다. 그런데 몇 장을 읽고 나면 공허함이 남는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엇비슷한 문장의 나열이다.


신입 및 저연차 직원을 대상으로 사내 교육을 맡아온 지 4년째다. 입사 초기 적응부터 업무 기록, 문서 작성 훈련까지 함께하다 보니, 채용 서류를 볼 때 느꼈던 그 공허함의 정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자기소개서에서는 매끈하게 감춰져 있던 문제가, 실제 업무를 기록하고 설명하게 하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A4 규격의 종이 양식지로 일일 업무 일지를 받았다. 업무 내용, 업무 시간, 비고를 적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형식은 결국 행위의 나열로 끝났다. '사무실 집기 이동', '생산부 업무 지원', '주문장 작성 교육'. 어떤 일을 했는지는 남지만, 그 일을 하며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이해했는지는 남지 않았다. '전에 알바할 때 비슷한 일을 했었는데', '다음에는 다른 방식으로 해봐야지', '주문장 작성이 참 어렵구나' 같은 생각들이 기록될 자리가 애초에 없었다.


그래서 종이 양식지를 버리고 직원 교육용 네이버 카페를 만들었다. 신입사원이 입사하면 그 직원 이름이나 닉네임으로 카테고리를 하나 열어주고, 매일 경험한 내용을 자유롭게 기록하게 한다. 사진이든 글이든 동영상이든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말하자면 온라인 일일 업무 일지다. 그런데 처음에는 여기서도 여전히 행위를 나열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몇 주 간 읽다 보면 원인이 서서히 드러난다. 생각이 구조화돼 있지 않거나, 어휘가 빈약하거나, 논리적 근거 없이 느낌만 나열하는 식이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문서화' 훈련을 충분히 받지 못한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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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경험을 대신해 줄 수 없다


요즘 자기소개서는 너무 비슷하다. 몇 장을 넘겨도 거기서 거기다. 차별성이 없는 콘텐츠는 읽히지 않는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생성형 AI가 있다. 이제 대학가에서는 리포트, 발표문, 자기소개서 초안까지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문제는 편리함 자체가 아니다. 자기 생각을 더 잘 표현하려는 보조 수단으로 AI를 쓰는 것과, 아직 자기 것이 되지 않은 생각을 그럴듯한 문장으로 먼저 받아 적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후자의 순간부터 고민의 흔적은 지워지기 시작한다.


워드·엑셀·PPT는 도구다. 공장을 짓는 것과 공장을 운영하는 일이 다르듯, 문서를 양식에 맞춰 작성하는 것과 생각을 구조화해서 백지부터 문서를 구성하는 일은 다르다. 그런데 AI는 워드나 엑셀과는 또 다른 도구다. 워드는 생각을 정리하도록 돕지만, 생각 자체를 대신 써주지는 않는다. 반면 AI는 문장까지 만들어준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쓰는 사람의 사고가 충분히 개입되지 않으면, 결과물은 그럴듯한데 정작 자기 것이 아닌 문장으로 채워지기 쉽다. 지금도 신입사원에게 글쓰기를 다시 가르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앞으로 이 문제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AI를 쓰지 말자는 말은 아니다. 나 역시 업무에서 여러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난도가 높은 업무 절차를 수립하거나 문서화가 필요한 일은 부서장인 내가 직접 맡는다. 그 과정에서 AI와 주고받은 대화를 회의록 형식으로 직원 교육용 카페에 남기고, 최종 보고서와 협의문도 함께 게시한다. 직원들은 그 게시글을 읽고 댓글로 소감을 남긴다. 업무가 자연스럽게 학습되는 과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생긴다. 현장 경험 20여 년이 쌓인 사람과 업무 이해도가 낮은 신입사원이 같은 AI를 쓴다고 해서 같은 결과물이 나올 수는 없다. 얼마 전 영상 촬영 업체에서 공장 공간 대관 문의가 들어왔다. 본업이 아닌 일이다 보니, '촬영 협조 업무 절차'부터 서식, 사내 협의 체계까지 새로 정리해야 했다. 공장 안전 규정, 승인 절차, 부서 조율 방식 같은 맥락을 모르는 신입사원은 프롬프트에 그 내용을 담을 수 없다. AI는 문장을 만들어줄 수는 있어도, 사용자가 체화한 맥락은 생성하지 못한다.


결국 AI 활용에서 시니어와 주니어의 차이는 경험치와 암묵지에서 갈린다. 목적과 배경을 설명하고, 결과물을 검토하고, 수정하고, 최종 판단을 내리는 역량이다. 결국 주니어에게 필요한 건 실전이다. 직장 생활을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는 데 집중해야 하는 시기다. 시니어는 여러 AI에 같은 주제를 던져 답을 비교하고, 항목별로 취사선택한 뒤, 마지막 판단을 스스로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회의 참석자만 달라졌을 뿐, 사고의 주체가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경험을 문서화하는 능력은 단지 문서를 보기 좋게 쓰는 기술이 아니다. 생각을 구조화하고, 맥락을 설명하고, 타인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리더십의 차이로 번진다.


화면 캡처 2026-04-03 dsadsgafgfdg.png 기사 큐레이션과 피드백이 오가는 사내 메신저 대화

주어진 일 안에서 얻어내야 할 것


카페에 올려둔 글의 요점을 제대로 짚지 못하는 신입사원들과는 따로 1대 1 멘토링 시간을 갖는다. 때때로 연차별로 작은 업무를 직접 맡겨보기도 한다. 가구학과에서 공장 견학을 요청해 오면 '공장 안내 업무 절차'를 수립하는 일을 맡기는 식이다. 기획부터 실행, 사후 강평회까지 전 과정에 멘토로 참여한다. 매일 사내 메신저로 기사 세 편을 골라 보내는 것도 같은 이유다. 사회 돌아가는 여러 사건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그 맥락을 읽는 훈련을 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면 2년 차, 3년 차에 접어든 직원들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신문 기사가 예전과 다르게 읽혀요. 사회가 조금씩 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단순히 워드나 PPT를 더 잘 다루게 됐다는 데 있지 않다. 문서(documentation)와 설명(presentation)의 본질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문서는 단순 기록이 아니라 사고를 구조화하는 과정이고, 설명은 내용 전달이 아니라 타인과 의미를 공유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게 된 것이다. 그 변화의 핵심은 하나다. 사회 초년생이 수동적 수행자에서 능동적 판단 주체로 바뀌어간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신입사원들은 시키는 일, 주어진 일을 수행하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AI가 바로 그 '시키는 일'을 빠르게 대체하기 시작했다. 단순 수행과 반복적 판단에 기대온 자리일수록 압박은 더 커질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사회를 읽는 안목과, 기회를 포착해 기획으로 연결하는 힘이다. 사고를 AI에 넘겨버린 자리에서는 그 힘이 자라기 어렵다.


문장이 점점 더 반듯해지는 시대다. 그래서 더 중요해진 질문이 있다. 이 반듯한 문장 뒤에 과연 얼마나 치열한 고민이 있었는가. 대학 교육도 이제 이 질문을 피하기 어려워졌다. 학생을 정답에 가까운 답안지를 제출하는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아니면 자기 생각을 기록하고 설명하며, 질문과 피드백 속에서 성장하는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AI는 전자를 돕는 데 이미 능숙하다.


가끔은 대학 수업도 직원 교육용 카페처럼 운영해 보면 어떨까 상상한다. 학생마다 기록 공간을 열어주고, 그날 수업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레포트를 어떤 시행착오 끝에 써나갔는지, 조별 과제에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남기게 하는 것이다. 공개 범위는 전체 공개, 교수만 열람, 조별 공개 등으로 나눠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평가 역시 완성본 점수만 보는 대신, 기록의 충실성, 수정의 깊이, 타인 피드백을 반영한 흔적까지 함께 본다면 달라질 수 있다. 완성본만 평가하는 수업에서는 AI가 가장 유리하다. 학생이 끝내 자기 이해와 판단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괴롭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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