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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주 Oct 18. 2020

내 안에도 살고 있는 ‘시골 사람’_<법 앞에서>

『법 앞에서』(프란츠 카프카/전영애/민음사) 중에서 <법 앞에서> 

  


 법 앞에서 문지기 한 사람이 서 있다. 시골 사람 하나가 와서 문지기에게 법으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청한다. 그러나 문지기는, 지금은 입장하는 걸 허락할 수 없노라고 말한다. 그 사람은 이리저리 생각해 보다가 그렇다면 나중에는 들어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럴 수는 있지만.”하고 문지기가 말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안 된다오.” 문은 언제나 그렇듯이 열려 있고, 문지기가 옆으로 물러섰기 때문에 시골 사람은 문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려고 몸을 굽힌다. 문지기가 그것을 보고 웃으면서 말한다. “그렇게 마음이 끌리거든 내 금지를 어기고라도 들어가 보시오. 그렇지만 명심하시오. 내가 막강하다는 것을. 그런데 나로 말하자면 최하급 문지기에 불과하고, 방을 하나씩 지날 때마다 문지기가 서 있는데 갈수록 막강해지지. 세 번째 문지기만 되어도 나조차 쳐다보기가 어렵다고.” (p.7)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읽고 나니, 이 짧은 소설이 어떤 상황을 그린 것인지 짐작이 간다. 여기서 문지기는 아버지이며, 시골 사람은 카프카 본인이다.      


 이 소설에서 문지기는 ‘그렇게 끌리거든 내 금지를 어기고라도 어디 들어가보라고’ 하며, 자신은 막강하다고 말한다. 그 문지기의 금지를 어기고 들어가더라도 또다른 문지기를 계속 만나며, 갈수로 막강한 문지기를 만난다고도 한다. 심지어 그런 이야기를 무시무시하게 화내면서 하지 않고, 웃으면서 말한다. 그런데도 시골 사람은 선뜻 들어가지 못한다. 웃으며 말하지만, 어기고 들어갔을 때 문지기가 어떻게 나올지가 두렵고, 점차 막강해지는 다음 문지기들이 두렵다. 시골 사람은 그런 금지와 장애를 뚫고 직진할 만큼 강하지 않다.      


 그는 혹시나 문지기가 마음을 바꾸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있다. 문지기 곁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문지기가 허락해주지 않을까 기다리다 죽음 앞에 스러져간다. 법에게로 가고 싶지만, 문지기의 허락 없이 가는 것을 택하지는 않는다. 그는 문지기를 원망하거나 문지기에게 화를 내지도 않는다. 단지 오랜 시간 문지기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문지기를 관찰하고 심지어 문지기의 외투깃에 있는 벼룩에게까지 문지기의 마음을 바꾸도록 도와달라고 말한다. 처절하지만 왠지 비겁해 보인다.      

 

시골 사람이 법에게로 가고자 하는 소망은 진심이며 간절하다. 그렇다면 문지기의 허락을 기다릴 것 없이 성큼 들어가 버리면 될 것을. 그는 기약 없이 기다리다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다. 죽음을 앞두고는 또다시 소용없는 질문을 문지기에게 건네는 시골 사람이 애처롭다. 그의 궁금증은 ‘모든 사람이 법을 얻고자 할 텐데 왜 아무도 들여보내달라는 사람이 없는 것일까?’ 이다. 여기서 법은 이루고자 하는 이상, 삶의 가치, 꿈 들로 추측된다.      


 그러나 문지기가 하는 말은 ‘이 입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오직 너 하나만을 위한 것. 너만이 이룰 수 있는 삶이었고, 나는 너만을 위한 문지기였다, 그런데 너는 그것을 이루지 못했다는 뜻인 듯하다. 문지기의 대답이 허무하다. 문지기의 존재 이유도 시골 사람 하나를 위한 것으로 읽혀진다.      

 

그렇다면 그는 왜 시골 사람을 들여보내주지 않고 막았을까? 문지기는 문을 지키는 사람이므로, 시골 사람의 출입을 막는 게 당연하다. 문지기는 적극적으로 막지도 않았다. 그가 한 일이라곤, 나는 막강한 사람이며 나를 뚫고 들어가도 앞으로 더 막강한 사람을 만날 거라는 말을 했을 뿐이다. 앞으로 더 막강한 사람을 아직은 만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들어가보라는 문지기의 말에 따라 문지기를 제치고 그냥 들어가버렸다면 어땠을까. 결국 법에게 다다르지 못하고 기다림 끝에 죽음을 맞은 책임은 시골 사람에게 있는 게 아닐까. 문지기를 탓할 것도 없어 보인다. 문지기를 제치고 들어갈 만큼의 강한 의지가 없었고, 아직 닥치지 않은 다음 장애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용기가 없었다. 문지기의 눈치를 보며, 그의 허락이 떨어지기를 기약없이 기다리는 시골 사람의 외로움과 좌절이 가슴 아프다.      

 

문지기도 시골 사람도 이름이 없다. 그냥 그들은 보통명사로 쓰인다. 세부묘사도 이름도 없는 그들은 특정한 개인이 아닌, 어떤 부류, 어떤 역할로만 표현된다. 이는 개별성에 의미를 두지 않는 것으로 이해된다. 단순화시킨 소설 속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어떤 상황에 대한 은유만을 목적으로 했다고 추측된다. 보통명사로서의 문지기와 시골 사람은 아버지와 카프카 본인의 은유이면서, 동시에 전제적인 부모와 나약한 자식이라는 또다른 보통명사를 대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많은 부모와 자식들이 이 소설의 문지기와 시골 사람의 모습을 띠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 소설의 초안을 작성한 때는 1914년 7월말이었다고 한다. 같은 달 카프카는 프라하를 떠나 독일에서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자 하는 계획을 밝히고 부모의 동의를 구하고자 편지를 썼다. 물론 그 편지를 전달하지는 않았다. 그는 수차례 그런 계획을 슬쩍 언급했을 것이고, 그때마다 아버지의 반대를 확인했을 것이다. 편지가 부모님께 전달되더라도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할 것임을 알고, 스스로 포기한 듯 보인다. 1919년 율리와의 결혼의사를 밝혔을 때도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다. 아버지의 반대는 생각만큼 격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결혼에 대해 아버지는, 이 소설의 문지기처럼 ‘나는 허락하지 않지만, 어디 하고 싶으면 네 뜻대로 해봐라’라는 태도를 보이셨다. 카프카는 시골사람이 그랬듯이, 아버지의 반대를 거역하고 자신의 결혼을 강행하지 않았다. 그가 결혼을 포기한 이유가 오직 아버지의 반대 때문만은 아니지만, 그가 결혼을 머뭇거린 최초의 이유는 아버지의 반대 때문이다. 


 카프카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쓰고서라도 아버지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강행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막내동생 오틀라 때문이기도 하다. 카프카와 가장 친했던 오틀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고 결혼과 이주를 한다. 오틀라의 연이은 거역 이후로, 아버지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고 한다. 오틀라는 첫관문인 결혼을 뚫고 들어간 이후, 다음 관문인 농장운영과 이주에서 더욱 막강해진 ‘문지기’를 또 한 번 뚫고 들어간다. 결국 ‘문지기’와 오틀라의 관계는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나빠졌다. 카프카는 오틀라의 경험을 지켜보고 난 후, 아버지의 반대를 무릎쓰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데에 더욱 용기를 내기가 어려웠다.      


이 소설에서 시골사람이 소망했던 ‘법’은 카프카에게 ‘결혼의사’였기도 하고 전업작가로서의 삶일 수도 있고, 전업작가로 살기 위해 떠나고 싶었던 베를린이기도 하다. 그것이 무엇이었건 그가 원하는 인생과 계획이 이 소설에서 다다르지 못한 ‘법’으로 표현된다.           


 문지기는 이해도 대화도 베풀지 않는다. 오직 그는 금지를 위한 존재다. 그 커다랗고 변화가능성이 없어보이는 존재 앞에 시골 사람은 막연한 희망만을 품을 뿐, 용기나 의지를 발휘하지 못한다. 이 소설에서 카프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문지기의 무관용이 아니라, 나약하고 어리석은 시골사람에 대한 자책이 아닐까. 폐결핵으로 41세에 생을 마감한 카프카가 본인의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이 한낱 시골 사람에 불과했다는 회한으로 느껴져 이 소설이 더욱 가슴 아프다.      

 

싸워서 쟁취해보지 못한 채, 허무하게 져버린 여리디 여린 자아는 끝내 강인한 어른이 되지 못한다. 소설 속의 시골 사람을 카프카에 국한하지 않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대입해도 크게 어색하지 않다. 어떤 장애를 만났을 때 부딪힐 용기가 없어, ‘적당한 때’만을 기다리다 세월을 보내버린 일.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다. 지레 포기하고, 현실화되지 않은 ‘더 막강한 문지기’가 두려워 문지기의 눈치만 보았던 ‘시골 사람’이 내 안에도 있었다. 어쩌면 아직도 내 안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긴 세월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내 안의 ‘시골 사람’을 찾아봐야겠다.



읽은 때 : 2020.07.21.

기록한 때 : 2020.07.21.

별점 : 4.5/5.0

한줄평 : 짧은 이야기, 긴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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