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오면 종종 우편함을 확인한다. 내용물은 늘 똑같다. 매번 같은 고지서들이다. 사람들은 더는 편지를 주고받지 않는다. 손 편지를 마지막으로 썼던 적이 언제인지도 모르겠다. 집 앞 도로 건너편에 있던 우체통도 사라진 지 오래다. 공중전화와 우체통이 동네마다 있었는데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90년대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다들 카드를 주고받았다. 연말연시가 되면 약속처럼 연하장을 보냈다. 명절이 오면 친척들에게 새해인사를 담은 편지를 썼다. 한자로 쓴 근하신년이나 입춘대길 같은 문구가 인쇄된 편지지는 학이나 호랑이가 그려져 있었다. 좋은 소식은 편지로 제일 먼저 전하던 시대였다.
우편함을 확인할 때의 설렘은 각별했다. 30년이 훌쩍 넘은 과거의 기억인데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감정이 깃든 기억은 퇴색되거나 변색되지 않는다. 감정은 천연방부제다. 우편함에서 소중한 사람이 보낸 손 편지를 발견했을 때 느꼈던 벅찬 감정을 오랜만에 다시 느껴보고 싶다.
구겨지거나 찢어질까 봐 손 끝으로 조심스럽게 편지봉투를 뜯는다. 두툼한 두께의 편지지를 꺼내서 읽는 동안 느꼈던 행복은 사랑의 감정이 깃든 추억이 됐다. 떨리는 손길로 우편함을 열어 볼 때마다 만났던 감정은 지금은 추억이 됐다. 마음을 담은 편지들의 보금자리였던 우편함은 지금은 고지서들의 무덤이 됐다.
편지가 품고 있었던 기다림의 미학은 택배가 대체해 버렸다. 사람들은 택배는 기다리면서 편지는 기다리지 않는다. 몇 주는 지나야 확인할 수 있는 편지는 불편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메신저가 편하다는 상식이 세상을 지배한다. 사람들은 불의나 부정보다 불편을 몇 배는 더 싫어한다.
편리하고 빠른 것은 좋은 것이라는 공고한 공감대는 흔들리지 않는다. 속도가 편리함의 새로운 기준이 된 순간부터 편지는 입지를 상실하게 된 것 같다. 기술의 발전은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어줬지만 삶에서 감성을 빼앗아버렸다. 느리고 손이 많이 가는 시절이었지만 아날로그가 미움의 대상이 되는 일은 없었다.
디지털이 주는 스마트한 맛은 없었지만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 밥 같은 편안함이 있었다. 손으로 쓴 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의 기억은 그대로 남아있다. 인터넷이나 핸드폰이 보급되지 않았던 90년대는 공중전화와 손 편지가 소식을 전하는 전령사였다. 학교 수련회라도 가는 날에는 집에 전화하려고 꼭 동전을 챙겨갔다.
천 원을 내고 980원짜리 한솥콩나물 밥을 사면 20원이 남았다. 든든하게 밥 챙겨 먹고 나서 소중한 사람에게 안부전화를 하라는 배려가 마케팅이었던 시절. 그때는 인정이 상식으로 통했다. 방학식을 하면 친구들끼리 편지하라는 말을 인사말로 건넸다. 짝사랑했던 선생님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고 기뻐했던 기억도 있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기다림도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90년대는 기다림이 일상이었다. 일주일 걸려서 편지를 받았다. 계절이 지나서 도착한 엽서를 들고 설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통화를 하려면 서로 타이밍이 맞아야만 했다. 집에 없는 친구 대신 친구의 가족들에게 할 말을 남기는 일도 흔했다.
엇갈리거나 기다리게 되더라도 사람들은 불평을 늘어놓지 않았다. 기다림 끝에 반가움을 만나면 전부 괜찮았다. 진심을 주고받는데 시간은 문제 되지 않았다. 마음을 전하고 마음을 담는데 정성을 들였다. 느린 걸음으로 돌아가더라도 도착하면 두 팔 벌려 반갑게 맞이해 줬다. 그때는 모든 것들이 불편함이 아니라 기다림이었다.
편지 속 꼭꼭 눌러 담은 마음을 확인하고 따뜻한 진심을 담아 답장을 보냈던 시절이 그립다. 생각난 김에 손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책상 서랍을 열고 오래된 엽서를 꺼냈다. 다 쓰고 나면 만안구청 안뜰에 있는 우체통에 넣어야겠다. 11월이다. 이제 막 겨울의 초입을 지났다. 맑고 찬 가을바람이 분다. 낙엽이 추억과 같이 흩날렸다.